연일 매력적인 이야기들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파스타>. 14회에서는 셰프와 유경의 사랑을 눈치 챈 그들과 이기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일과 사랑을 균등하게 엮어서 담아내는 그들의 특징이 오늘도 여실히 드러나며 '역시'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눈키스를 넘는 버스 정류장 키스

1. 이기심, 믿음 그리고 기회

그 어느 때보다 발걸음이 가벼운 셰프. 일찍 와서 기다리던 유경은 그런 셰프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셰프룸에 들어선 현욱은 세영의 책상 위에 올려 진 레시피 노트를 보며 잠시 이태리 시절을 떠올립니다. 뒤늦게 들어선 세영은 자신의 노트를 모두에게 공개 할 생각이라며 현욱에게도 동참하라합니다.

요리사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레시피 공개는 불가능에 가까운 보루입니다. 자신이 오랜 시간동안 이뤄 놓은 모든 고급 정보들을 나누겠다는 것만큼 요리사에게 대단한 일은 없습니다. 좋은 레시피 한 권이면 레스토랑을 차려도 성공할 수 있다고 할 정도이니 세영의 이야기는 대단한 자신감이자 모두 함께 라는 상생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호남이 들어서 '파스타' 파트에서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좋은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언제 셰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가장 많이 찾는 파스타를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파스타를 좋아서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하겠다는 호남의 제안이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을 무시할 수도 없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파스타 라인이 이제 손발을 맞추기 시작했는데 이동은 안했으면 좋겠다는 세영과, 발전을 위해서는 주방에서 다양한 일들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현욱의 입장은 모두 일장일단을 갖춘 이야기들입니다. 솔로몬의 해법을 내려야 하는 현욱은 쉽지 않은 길이지만 정도가 될 수 있는 길을 유경이 걷기를 원합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파스타를 사랑하고 만들고 싶고 그래야만 하는 이유마저도 가지고 있는 유경은 생업을 위해 파스타가 필요하다는 호남에게 자리를 빼앗깁니다. 반발하고 화도 나지만 셰프는 진정한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요리를 만들 줄 알아야만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셰프의 마음을 단순히 연애를 들켜서 입막음하기 위한 행동으로만 생각하는 유경과 주방 식구들. 바뀐 파트에서 실수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가혹한 세프의 지적은 눈물이 나올 정도입니다. '주방에서 최현욱은 없다'는 셰프의 말과 각오하라는 신신당부에도 유경이 현실에서 받아내야 하는 힘겨움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독한 셰프의 지도에 몸도 마음도 아픈 유경은 작은 다툼을 하다 '당당하게 유경을 좋아한다고 주문을 내라'고 합니다. 독설로 강하게 다그치는 방식이 아닌 조근 조근 차분하게 가르쳐달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는 유경에게 셰프는 고심 끝에 자신의 파스타 레시피를 건넵니다.

일과 사랑을 분리하기 힘들어 하는 유경에게 자신의 사랑과 일을 담은 그래서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레시피를 건네는 것은 무한한 믿음과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2. 시소 같은 사랑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셰프에게 전해 줄 초콜릿을 사러 들어 간 전문점에서 유경은 여성 삼인방에게 노출되고 맙니다. 유경의 동선을 주목하며 지켜보던 그들은 현욱이 들어서며 유경과 함께 하자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초콜릿을 받고 행복한 현욱 앞에 나타 난 '사신' 같은 여성 삼인방에 놀란 건 유경이 더 심했습니다.

다그치는 그녀들에게 피해가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셰프. 긍정이든 부정이든 뭔가 답을 원하던 여성 삼인방에게는 심증은 있지만 확신을 가지기 힘든 상황에서 호남에게 연락을 합니다. 그렇게 '라스페라' 주방은 현욱과 유경이 사귄다는 소문이 자자해집니다.

셰프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짝사랑하고 있으며 자신의 감정은 그저 자신에게 맡겨 달라며 상황을 모면합니다. 그 시간 이후 모든 이들은 현욱과 유경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게 되고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는 셰프와는 달리 유경과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막내마저 왜 눈치 없이 그러냐고 야단입니다.

사랑과 일을 구분해서 진행하는 셰프로서는 호들갑스러운 그들이 이상할 뿐이었습니다. 모시조개를 잘못 관리해 혼내려던 그에게 눈치를 주는 그들은 잘못된 재료 관리에 대한 벌을 받습니다. 벌을 받으며 유경이 웃을 수 있었던 건 주방에서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것 보다는 이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일과 사랑을 구분하기 힘든 유경으로서는 셰프의 구분법이 낯설고 힘겹기만 할 뿐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연애에 서툴기만 하던 사장 김산은 본격적으로 전쟁을 선포합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자신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겠다는 김산의 다짐은 현욱에게도 경쟁으로 다가옵니다. 상대인 김산은 드러내서 잘해주겠다고 합니다. 자신은 드러내 놓고 꾸지람을 해야 하는 상황이 현욱에게는 아이러니하면서도 조바심 내게 만듭니다.

낯선 파트에 대한 부담과 자신 능력의 한계를 느낀 유경은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따뜻함과 냉철함으로 자신을 감싸는 현욱에게 모진 이야기를 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유경입니다. 자신이 잘못해 혼나는 것이 서러운 것이 아닌 '자꾸 좋아하는 남자에게 혼나는 여자의 마음이 앞서서 서럽다'는 유경이 안쓰러울 수밖에 없는 현욱은 어느 순간 시소의 무게 중심이 자신 쪽으로 넘어오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들리는 소문을 뒤늦게 접하고 현욱에서 소문의 진상을 묻자 "내가 더 좋아한다. 서유경"이라는 말을 냉철하게 세영에게 건넵니다. 그런 현욱의 말을 듣고 무너지는 세영에게는 일과 사랑이라는 한꺼번에 이룰 수 있는 토끼는 찾아오지 않나 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자신의 소중한 레시피를 건네며 파스타를 만들게 하겠다는 현욱에게 유경은 이야기합니다.

"싫어요. 제 힘으로 돌아갈 거에요. 아직 전채 파트도 형편없는데 셰프빽으로 돌아가기 싫어요 전. 안돌아 갈레요. 파스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주방에서 당당하게 서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눈에서 하트가 쏟아지는 현욱의 마음은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존심이라는 것은 지금처럼 내세우는 거야"라는 말처럼 어설픈 자존심이 아닌 자신을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승부할 수 있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유경의 그 한마디는 현욱을 완전히 사로잡고 맙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아하는 소리는 서유경이 나한테 "네~솁"이라며 키스를 하는 현욱은 낭만이 넘치는 남자였습니다. 마침 정차 한 버스 안 승객들의 동작으로 충분히 그들의 애정 행각을 볼 수 있는 이 장면은 '눈키스'를 능가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들의 키스는 그저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닌, 같은 일을 하는 동지로서 느끼는 끈끈한 동질감도 함께였습니다. 버스 정류장의 키스가 의미 있었던 것은 한층 성숙해진 유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부 연장을 하지 않았다면 <파스타>는 다음 주면 마무리되었겠지요.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선과 성공이라는 가치를 모두 구현하기 모호한 상황이었을 듯합니다. 물론 사전 조율을 했기에 그런 느낌을 받았겠지만 말이죠. 숨기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김산의 다짐에 대꾸라도 하듯, 이젠 드러내놓고 사랑을 하자는 세프의 말은 앞으로 그들이 어떤 식으로 상황을 헤쳐 나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거친 듯하지만 언제나 딸의 앞날을 걱정하는 유경의 아버지는 딸이 능숙한 주방장이 되었을 때 맛을 평가하기 위해 난생 처음 파스타를 맛보기 시작합니다. 성격이 유하고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로 시작한 '파스타'에만 머물던 유경은 위기 같은 상황 속에서 던져진 기회를 잡습니다.

더 이상 나약한 자신이 아닌 단단해져 가는 자신을 느끼게 만드는 세프가 사랑스럽지 않을 이가 있을까요? 사랑하기에 상대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셰프.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다독거리는 현욱의 모습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유는 유경이 현욱이 원하듯 올바른 자존심을 세움으로써 보답해주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이 찾아오면 그들을 바라보던 또 누군가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는 없습니다. 사랑은 그렇지만 그들이 '라스페라' 주방에서 펼치는 경쟁과 대결은 어느 한 쪽으로 급격하게 기우는 시소가 아니라 균등하게 혹은 서로 놀이를 하듯 옮겨 다니는 시소의 무게 추처럼 자연스럽게 변화합니다. 매 회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하는 제작자들은 14회에서도 놓칠 수 없는 재미를 던져주었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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