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1박2일 시청자 투어 일곱 팀이 각자의 특장점을 살린 소개가 있었다. 11남매라는 요즘 정말 드문 대가족의 모습도 있었고, 여자 럭비부, 10년간 같은 반으로 자란 영월 고등학생들, 30년 우정을 지켜온 역도부원들 등등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개개인으로 놓고 보자면 아주 평범하지만 그들이 모이면 참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중 내 눈에 가장 크게 밟힌 팀은 바로 유니버셜발레단이다. 발레리나의 늘씬한 요정몸매 때문은 결코 아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격세지감을 느꼈던 탓이다. 그 이유를 밝히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 발레단에 대한 간단한 배경 설명이 있어야 할 듯하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순수 예술의 시장은 대단히 좁고 허약하다. 특히 단체를 구성해야 하는 연극, 무용 등은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이들 무대종목들은 모두 세트를 설치해야 하는 까닭에 같이 무대에 서더라도 오케스트라보다 제작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게 된다.

그런 이유로 해서 보통은 국립이란 형태가 아니면 제대로 작품을 만들기 어렵다. 물론 국립이라 해도 작품제작비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민간단체에 비하면 훨씬 풍족한 환경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쪼들린다 할지라도 국립단체는 꾸준히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때문에 지속적인 트레이닝이 필요한 배우나 무용수들에게 가장 선호하는 단체가 되기도 한다.

특히 발레는 더욱 그렇다. 발레의 특성상 하루도 클라스(쉽게 설명해서 몸풀기)를 거를 수 없고, 고전발레가 대부분인 한국발레 경향 속에서 발레리나라면 누구나 오데트, 지젤의 꿈을 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던발레와 달리 고전발레는 출연진도 그렇거니와 세트와 의상 제작비가 엄청나게 소요된다. 게다가 고전발레는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와 함께 해야 제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단체는 어지간해서는 고전발레를 무대에 올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유니버셜발레단(단장 문훈숙)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전발레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유니버셜발레단은 분면 민간발레단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국립단체도 부러워 할 정도로 수준 높은 고전발레를 무대에 올려왔다.

자연 유니버셜발레단은 모든 발레 하는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보통 한국 3대 발레단으로 국립발레단. 유니버셜발레단 그리고 서울발레시어터를 꼽는다. 과거 한국 발레가 성했던 광주가 그 빛을 발하면서 3대 발레단이 모두 수도권에 몰려 있다. 국립 외에는 모두 민간발레단이다. 그중 특별한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모든 제작비를 충당해야 하는 서울발레시어터의 경우 앞서 설명한 제작비의 압박 때문에 고전발레보다는 주로 모던발레를 중점적으로 무대에 올리고 있다.

같은 민간단체이면서 유니버셜발레단이 고전발레를 꾸준히 무대에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종교단체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그 지원이 전과 같지 않아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속에 유니버셜발레단이 1박2일 시청자투어에 참가한다는 소식은 깜짝 놀랄 일이었다. 젊은 단원들이야 충분히 그럴 수 있다지만 그것을 허락한 배경이 의아스러운 것이다.

수석무용수들부터 솔리스트까지 이번 1박2일에 참가한 단원들은 유니버셜의 최정예들로 구성되어 있다. 참가팀 소개에는 빠졌지만 유니버셜의 스타 황혜민도 포함되어 있어 발레에 관심 있었던 독자라면 충분히 흥분할 만한 사건임에 분명하다. 발레를 조금 본 필자도 유독 유니버셜과의 친분은 적었지만 몇몇 참가자는 대학생 때 만난 기억이 있어 남다른 감회를 주기도 한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유니버셜발레단이 예능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한다는 사실에 정말 큰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물론 과거에도 유니버셜발레단 전혀 예능에 비쳐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송사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고 이번엔 스스로 참여했다. 과연 왜 그들은 스스로 예능으로 투신하고자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역시나 홍보이다. 4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1박2일을 통해 발레단의 모습을 각인시킬 수 있다면 홍보효과는 돈으로 쉽게 계산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강호동이 저렴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스스로 망가진 이유는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한 진실한 몸부림이다.

이제 순수예술조차 대중문화, 그것도 가장 말초적인 텔레비젼 예능의 힘을 빌고자 몸을 낮추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현상에 대해서 섣불리 좋다 나쁘다 소감을 밝히긴 어렵다. 그러나 어지간한 대중스타보다 더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로 여겨졌던 유니버셜발레단의 예능 프로그램 대거 참여가 놀라운 것만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유니버셜발레단의 파격적 변신을 우선 반긴다. 대중과 멀리 떨어진 예술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연예인만아니라 순수예술인도 얼마든지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인기와 부를 얻을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예능이라는 낯선 곳으로 떨리는 첫발을 뗀 그들이 충분한 성과를 거두어 그들의 본업인 발레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1박2일읕 통해서 본 그들의 무대 위 진정한 모습이 궁금해진다면 다음달 3월 26일에 어찌 보면 유니버셜의 대표 레파토리라고 볼 수 있는 백조의 호수가 공연되니 한번 관람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아직 본격적으로 그들의 예능 적응기가 보여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엄재용, 황혜민 두 사람의 모습을 무대에서 보는 것은 또 다른 흥분을 줄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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