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경기가 펼쳐졌다.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기아와 SK의 창의 대결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초반 1-12로 완벽하게 무너졌던 기아가 5회 무려 12득점이나 올리며 역전하는 그 과정 하나만으로도 최고의 경기였다.

전설로 남을 화려한 타격쇼, 승패마저 의미 없게 만든 경기

이 경기를 직접 관람한 야구팬들이라면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야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준 경기였다. 마운드에 오른 투수들에게는 악몽의 시간이었겠지만, 타자들은 이 세상 그 어떤 투수가 나와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기세로 타격을 했다.

경기 초반은 완벽하게 SK의 몫이었다. 전날 경기 패배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초반부터 기아 선발 팻딘을 공략했다. 팻딘이 홈런을 많이 내주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이번 경기가 불안하기는 했다. SK는 1회부터 연타석 홈런을 쳐내며 팻딘을 상대로 4점을 뽑았다.

수비도 조금 불안했고 이런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동민과 김동엽에게 홈런을 내준 것은 아쉬웠다. 워낙 파워가 좋은 SK 타선을 넘기에 팻딘은 분명한 한계를 보인 듯도 하다. 여기에 포수가 주전 김민식이 아닌 한승택이었다는 점도 문제로 다가왔을 수 있다.

SK 와이번스 나주환. [연합뉴스 자료사진]

팻딘은 2회를 잘 넘기기는 했지만 3회에도 홈런 포함한 6개의 안타를 내주며 추가 4실점을 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팻딘은 3이닝 동안 71개의 투구수로 10피안타, 3피홈런, 2탈삼진, 8실점을 하고 조기 강판을 당했다.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팻딘이었다는 점에서 본인에게도 충격적인 상황이었을 듯하다.

팀이 7연승을 하며 대승을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무너진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마지막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팻딘이 느꼈을 부담과 안타까움은 컸을 듯하다. SK 타선은 팻딘이 내려간 후에도 식지 않았다. 4회 마운드에 오른 김종훈을 상대로 홈런 포함 4개의 안타와 2개의 사구를 묶어 추가 4득점을 하며 4회까지 12득점을 올렸다.

나지완의 2루타와 한승택의 적시타로 4회 1점을 뽑기는 했지만, 1-12라는 상황은 도저히 뒤집을 수 없는 점수 차였다. 아무리 대단한 타격감을 보이는 호랑이들이라 해도 초반 이렇게 무너지면 복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모든 예상을 뒤집는 만화 같은 이닝이 만들어졌다.

기아의 5회 공격 시간은 어쩌면 한국프로야구가 이어지는 동안 영원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11점이나 뒤진 상황에서 기아 타선은 4이닝 동안 잘 막고 있던 다이아몬드를 상대로 융단 폭격을 가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바로 5회 펼쳐졌다.

KIA 타이거즈 최형우 (연합뉴스 자료사진)

1-12로 뒤지고 있던 기아는 다이아몬드를 상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공격력을 선보이며 역대급 경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언제나처럼 최형우였다. 선두 타자로 나선 버나디나가 볼넷으로 나가자 최형우는 다이아몬드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뽑아냈다. 최형우 개인적으로 5년 연속 20개 이상 홈런을 쳐낸 기록적인 홈런이기도 했다.

이건 시작이었다. 안치홍의 내야 안타에 이은 나지완의 안타 후 이범호는 3점 홈런을 쳐내며 6-12까지 추격해 갔다. 이범호에겐 개인 통산 1,000타점을 올리는 의미 있는 홈런이기도 했다. 아웃 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한 채 무참하게 무너진 다이아몬드를 힐만 감독은 그대로 교체했다.

기아 타선이 얼마나 무서운지 충분히 경험한 감독의 선택이었다. 다이아몬드는 4이닝 동안 99개의 공으로 10피안타, 2피홈런, 2탈삼진, 3사사구, 6실점을 하고 물러나야 했다. 4회까지 1실점을 하며 승리 투수를 예약한 상황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스스로도 상상 못했을 것이다.

SK는 채병용을 올렸지만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3실점을 했고, 뒤이어 나선 문광은마저 4실점을 하며 5회에만 12실점을 하고 역전을 내주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기아 타선은 신종길의 2루타에 이어 대타로 나선 최원준이 적시 2루타를 치며 타점을 이어갔다.

주전 중 유일하게 올스타에 뽑히지 못한 이명기는 이 한을 풀듯 투런 홈런을 날렸다. 김주찬의 안타에 화답하듯 버나디나 역시 투런 홈런을 만들며 미친 타선의 더 미친 타격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한 이닝에 12득점을 하며 11점 차이로 지고 있던 경기를 뒤집는 기아의 힘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KIA 타이거즈 이명기 [연합뉴스 자료 사진]

5회 기아는 11타자 연속 안타를 쳐내며 종전 최다 기록이었던 8타자 연속 안타를 훌쩍 넘어 신기록을 세웠다. 11타자가 출루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모두 안타를 쳤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기존 최다 연속 출루 기록은 2014년 5월 29일 한화전에서 NC가 세운 12타자 연속 출루였다. 이 기록 역시 11타자 연속 안타에 12타자 연속 출루를 겸하며 모든 기록을 다시 기아가 세웠다.

기아가 5회 한 이닝 동안 뽑은 12점 역시 팀 최다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2010년 7월 29일 사직에서 롯데전을 포함해 6차례 한 이닝 10점을 뽑은 바가 있지만 12점을 뽑는 동안 안타 11개(4홈런 포함)기록은 KBO 리그 타이이기도 하다. 기아가 하면 모든 것이 기록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경이롭기만 하다.

8회 6실점을 하며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9회에도 나지완의 투런 홈런이 나오며 1점 차로 압박하는 경기를 보였다. 마지막 타자로 나선 대타 서동욱은 분명 사구였지만 이 판정이 제대로 내려지지 못하며 역전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비록 1-12 경기를 역전으로 이끌기는 했지만 부실했던 불펜이 문제였다. 아쉽게 1점 차 재역전패를 했지만 기아의 기록과 타격은 전설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날 기록으로 기아는 8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이미 KBO와 일본 기록인 4경기 연속은 넘어선 지 오래다. 1929년 뉴욕 자이언츠(현 SF)가 기록한 메이저리그 6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 기록도 지난 SK와 경기에서 깨버린 상태였다. 현재로서는 이 기록이 두 자릿수로 옮겨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놀랍다.

KIA 타이거즈 선수들 [연합뉴스 자료 사진]

기아는 최근 8경기에서 130개의 안타를 몰아쳤다. 이 130개 안타 중 홈런도 18개나 된다. 한 달 기록이 아니라 단 8일 동안 세운 기록이라는 사실이 엄청나다. 이 과정에서 상대 팀 투수들이 모두 팀 내 에이스급이었다는 점에서 이 기록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엄청난 타격으로 승리를 이끌기는 했지만 투수들의 실점 역시 많았다는 점은 아쉽다. 단적으로 이번 같은 경기는 잡아야 했다. 그래야 그 의미가 더해질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역전을 이어갔지만 불펜에서 허무하게 경기를 내주면 모든 이들이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2군으로 내려갔던 임창용은 여전히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다. 임창용이 제대로 해주었다면 기아는 엄청난 대기록과 함께 연승 분위기를 지속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쉽다.

기아 타선은 말 그대로 미쳤다. 이 정도면 그 어떤 투수가 나온다고 해도 막기 어렵다. 최형우를 중심으로 정점을 이룬 타자들의 폭주는 주전 비주전을 가리지 않는다. 초반 대량 실점 후 휴식을 취한 주전들만이 아니라 몇몇 선수들까지 교체되었지만, 그 타격감은 모두의 몫이었다.

문학구장 마지막 경기는 정용운과 문승원이 선발로 나선다. 두 선발 투수들이 의외의 호투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번 경기에 터진 양 팀의 타선을 생각해보면 기아의 대기록은 목요일 경기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KBO 역사상 가장 화려한 타격을 보여준 양 팀의 경기는 전설이 되었다. 진기명기라고 해도 좋을 기아vsSK의 2017년 7월 5일 문학구장 경기는 영원한 전설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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