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하던 상황이 오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의 거듭된 대화의지 천명에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을 강행해 대치국면을 만들어 내고야 만 것이다. 북한은 4일 조선중앙통신의 특별중대보도를 통해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친필 명령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발사에 성공했다며 이런 사실을 밝혔다.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의 미사일이 40여 분 간 고도 2300여 킬로미터 정도를 상승했고 930여 킬로미터를 날아간 것으로 파악했다. 북한의 주장에 의하면 이 미사일은 최대 고각발사체제로 진행됐다. 정상각도로 쐈을 경우 최대 9000킬로미터 이상 비행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이는 미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있는 하와이는 물론 알래스카까지도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수치다.

청와대는 북한이 이 같은 사실을 밝히기 이전부터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북한이 ICBM급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을 가능성이 미리 언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와 만나 “북한이 한미정상이 협의한 평화적 방식의 레드라인을 넘어서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북한의 ICBM 발사 성공 주장을 검증해봐야 한다며 최대한 제재와 압박을 하면서도 대화를 이어간다는 기조에는 변함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의 이런 태도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작용했던 걸로 보인다. 첫째는 실제 북한의 주장을 검증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며 둘째는 미국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소집, 자료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직후 트위터에 “북한이 방금 또 다른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사람은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라고 적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이 이것을 더 견뎌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마 중국이 북한을 더 압박해 이 난센스 같은 상황을 끝내야 할 것”이라고도 썼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응과는 별개로 애초 미군은 북한의 미사일을 ICBM에 이르지 못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 북한의 주장이 사실인지, 어느 정도로 위협이 되는지를 판단하려면 사거리, 대기권재진입 및 단 분리 기술 확보 여부, 핵탄두 장착 가능성 등 세 가지 측면을 평가해야 한다.

북한이 이번 미사일 발사 시험을 통해 이중 사거리라는 면에서 걱정거리를 만들었다는 건 명백하다. 애초 미국은 북한이 사거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던 듯 하다.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커진 것은 5일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대기권재진입 및 단 분리 기술을 시험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시험을 진행했다고 밝힌 이후이다. 북한은 해당 미사일에 대형중량핵탄두를 장착 가능하다는 설명도 함께 내놨다. 이는 북한이 ICBM의 핵심 기술을 시험한 것이며 도발 목적이 명백하다는 걸 스스로 밝힌 걸로 볼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소형화 경량화 된 핵탄두의 공개와 6차 핵실험 등의 수순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 역시 북한의 ICBM 관련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 국무부는 성명을 통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면서 “북한 노동자를 초청하거나 경제적·군사적 혜택을 주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를 이행하지 않는 나라들은 위험한 정권을 돕고 방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사적 옵션까지 거론하진 않았으나 북한의 ICBM 발사 시험 관련 주장을 일정 정도 인정한 걸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이러한 입장 표명에 발맞추어 한미 군 당국은 5일 현무-2와 ATACMS 지대지미사일을 동시 사격해 북한의 군사시설을 타격하는 탄도미사일 훈련을 실시했다. 이러한 내용의 군사훈련은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직접 지시해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5일 “북한의 엄중한 도발에 우리가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며, 우리의 확고한 미사일 연합대응태세를 북한에게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도 발언했다.

한미 양국은 군사적 대응 이외에도 중국의 대북제재 강화를 압박할 걸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을 방문했던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혼수상태로 송환된 뒤 사망하자 그간 중국의 대북압박이 불충분했다며 인신매매국 규정, 단둥은행 제재,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계획 승인,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 작전 강행 등 일련의 조치를 시행했다. 앞서 인용한 미 국무부의 성명 역시 중국을 겨냥한 부분이 적지 않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요청으로 우리 시간으로 6일 새벽 북한의 ICBM 발사 시험에 대응하는 비공개 긴급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이후 정세가 달라질 수 있다. 만일 중국이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미국은 의회에서 이미 승인한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를 강행할 가능성이 커진다.

국제공조라는 측면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문재인 대통령의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독일 방문이다. 애초 문재인 대통령은 6일 독일에서 새로운 대북정책 기조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그간 반복해서 대화를 요구해온 문재인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이런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G20 정상회의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연쇄적인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북한의 ICBM 발사 시험 대응 문제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논의될 것이라는 점은 매우 명백하다.

북한이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사진은 쌍안경으로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한국과 미국 등 주변 국가들의 노력과 별개로 북한이 이에 호응하지 않으면 상황의 개선이 어렵다는 점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도발 행위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할 경우 남한을 타격할 수 있다는 방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과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보도한 것은 이번 ICBM 발사 시험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군사훈련 축소-핵동결 및 비핵화’라는 2단계 해결법을 언급한 것에 대한 대응인 셈이다. ‘한미군사훈련 축소-핵동결 및 비핵화’가 아니라 ‘미군철수 및 평화협정-핵 보유국 인정’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재론하고 이를 통해 한미 양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행보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은 사실상의 전쟁을 각오하는 것이거나 돌고 돌아 대화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은 아직 대화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은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 더해 미 국무부가 “미국은 평화적인 방식만으로의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위협적 행동에 대한 종식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힌 점 등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적어도 북한이 ICBM 발사 시험을 강행한 상황에서는 임기 내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일정 정도 이상의 ‘각오’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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