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류된 원손을 모시고 제주를 무사히 빠져나온 송태하 일행은 뜻을 같이 하는 과거 훈련원 부하들을 만나기로 한 운주사로 향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들은 운주사에서 거사의 첫 회동을 갖기로 한 것일까? 송태하 일행이 원손을 그리도 극진히 받드는 이유는 분명 모종의 거사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이마에 노비의 자자를 입히고 있는 그들의 원한과 충성의 오랜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 첫 장소는 분명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상징성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는 동학혁명을 다룬 송기숙의 소설 녹두장군과 황석영의 장길산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발표 시기는 황석영의 장길산이 빠르지만 운주사 천불천탑의 전설에 대해서 먼저 연구를 했던 이는 송기숙 작가였다. 어쨌거나 유명한 화엄사, 송광사 등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운주사는 이 두 소설로 인해 일약 전남의 대표 사찰로 유명세를 얻게 됐다.

장길산과 녹두장군은 어쩌면 추노의 인물들을 설정하는데 배경이 됐을 가능성이 있는데, 녹두장군의 우직한 노비출신으로 주인에게 절대복종하던 만득이란 인물이 빼어난 미인인 아내를 지방 아전이 탐내어 신변을 위협하자, 마침내 그 아전의 집에 불을 지르고 아내와 함께 운주사로 도망친다. 거기에 모인 미륵불들을 보면 "여기 보게, 부부하고 자식들 같지 않은가?"며 만득이는 비로소 신분의식에서 벗어나 종이 아닌 참된 인간으로 서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한편 일반에게는 녹두장군보다 좀 더 친숙한 황석영의 장길산은 운주사에서 소설의 끝마무리를 한다. 이 부분은 신문에 연재될 당시에는 없었던 것이었는데, 장길산은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장산곶매 이야기로 열었다가 후일 작가의 역사인식의 변화, 발전 된 형태로 운주사 이야기가 추가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운주사 이야기의 내용은 녹두장군에서 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고 미륵불을 세우던 노비들이 "닭이 울었다"는 누군가의 말에 완성하지 못했지만 와불은 언젠가 반드시 일어설 것이라는 확신과 염원을 담은 내용이다. 이렇듯 운주사는 일찍이 문학작품을 통해서 강력한 혁명의 상징으로 채용됐었다. 그런 배경을 통해서 추노가 자세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억울하게 죽은 소현세자의 아들을 새로운 군주로 옹립하려는 송태하 일행이 운주사 와불에서 모이기로 한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고 적절한 지역적 상징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운주사는 2002년에 마지막으로 가봤는데 아마 지금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천년고찰치고는 유일하게 담장도 없고 으리으리한 대웅전도 없다. 현대미술가의 작품 같은 느낌을 주는 미륵불들과 탑들만 여기저기 놓여져 있을 뿐이다. 한편 운주사 남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중장터는 승려들이 물물교환을 하던 곳인데, 이곳의 위치가 흔히 장이 설만한 번화한 곳이 아니다.

조선시대에 백정이나 노비 등 천민 취급을 당한 승려들이 왈패나 포교 등의 횡포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은밀한 장소를 택한 것으로 이 중장터의 장은 매달 보름에 섰는데, 밤을 통해 산길을 타고 모였다가 흩어졌기 때문에 밝은 달빛을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이 중장터는 사방 어디로든 관가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곳으로 동학농민항쟁이나 빨치산들이 타던 길이기도 하다.

이렇듯 운주사는 전해지는 전설도 그렇거니와 실제로도 체제의 질서를 뒤바꾸려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메카 역할을 담당했다. 송태하 일행이 도모하는 거사의 성격이 이런 전통적인 운주사 미륵불의 의미와 같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부조리하고 부패한 권력에 항거하고자 하는 것이기에 전혀 다르다고 하기엔 야박한 일이다.

긴장을 담은 눈속임의 이완

한편 추노 11회는 지금까지의 숨 가빴던 전개에서 발을 살짝 빼서 대길패가 처음 만난 인연을 회상하고, 돈이 떨어진 최장군과 왕손이가 여염집 아낙을 홀리는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런가 하면 송태하 일행이 운주사 와불에서 만나는 동안 한양 반노(反奴)들의 계속된 양반암살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대길패를 놓고 본다면 다소 한가한 듯한 진행을 보였지만 송태하와 한양 반노들 그리고 연쇄 살인사건에 임하는 부패한 포교들의 만행은 중요한 단서들로 서로 연결된다. 서로 동기는 다르지만 송태하 일행과 반노들은 결국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게다가 사건 해결의 능력을 갖지 못한 권력은 엉뚱하게 죄 없는 민초들을 닥달하기만 한다. 이런 구도 속에서 추노의 주역들이 권력에 항거하는 모습들은 자연스럽게 정당성의 합치를 이루게 된다.

때문에 느닷없을 수 있는 대길패의 회상과 왕손이의 난봉질은 일종의 트릭으로 보이기도 한다. 극도의 긴장을 담은 눈속임의 이완이라고 할 수 있는 11회는 그야말로 태풍의 눈같은 고요함이 엄습했다. 스토리가 농익어가는 이 즈음의 추노는 어쩌면 반노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중장터에 대한 이야기는 돌베게 출간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남5>의 본문을 수정.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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