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 크리스토퍼 리브에 이어 헨리 카빌, 배트맨이 마이클 키튼에 이어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것에 질세라 스파이더맨 역시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의 바통을 이어받아 톰 홀랜드라는 새로운 배우를 이식한다. 3세대 배우를 맞이하는 스파이더맨의 이번 새 시리즈 타이틀도 ‘귀향’을 뜻하는 ‘홈커밍’으로 세대교체를 이뤘다.

세 번째 시리즈라고 해서 다시 거미에 물리는 광경을 재연한다면 토비 맥과이어부터 시리즈를 보아왔던 관객의 입장에선 이래저래 피로감이 부채질될 것을 감안해서인지, 이번에는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에서 이미 보아왔던 기시감은 과감하게 삭제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소니픽쳐스

대신 이번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아이언맨의 편에 서서 캡틴 아메리카와 대결한 바 있는 청소년 스파이더맨의 이야기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그치지 않고 ‘스파이더맨: 홈커밍’으로 이어진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야기의 시발점이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한 시리즈의 처음처럼 거미에 물림으로 야기되는 게 아니라,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과의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것이 이번 시리즈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차이점은 이외에도 더 있다. 토비 맥과이어가 주연한 2000년대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요한 화두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였다. 토비 맥과이어나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한 피터 파커는 이 명제를 깨닫기 위해 사랑하는 삼촌을 잃어야 하는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이 명제를 이번 시리즈까지 포함해서 도합 세 번이나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이어간다면 관객의 피로감은 상당해질 터.

더군다나 토비 맥과이어가 연기한 2000년대와 달리 지금은 SNS와 영상 매체의 비중이 커지며 활자 매체 및 심오한 화두가 이전처럼 먹히지 않는 시대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와 같은 굵직하면서도 엄숙한 명제를 15년 이후에 또다시 반복한다는 건 어쩌면 고리타분한 명제 대물림이 될 것임을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각본가와 감독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소니픽쳐스

그렇다고 해서 철없는 중학생 스파이더맨이 쫄쫄이 수트를 입고 아무 문제의식 없이 거리의 자경단 역할을 수행한다면 히어로가 막강한 힘을 떠안았을 때 가져야 할 ‘책임 의식의 부재’라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된다.

질풍노도의 철부지 십대에게 주어진 스파이더맨이라는 초능력의 저력이 샷건도 아닌 AA12가 쥐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아챈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그를 통해 피터 파커가 단련되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기존 엄숙주의적인 방식의 무거운 깨달음이 아니라 토니 스타크라는 ‘유사(類似) 아버지’를 통해 피터 파커 스스로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단 점에서 이전 스파이더맨과의 차이점을 갖는다.

토니 스타크라는 히어로가 피터 파커라는 어린 히어로에게 초능력의 엄중함을 깨닫게 만든다는 설정은 기존 시리즈의 엄숙주의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누군가의 목숨과 맞바꾸지 않더라도 주인공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는 설정이다. 동시에 아버지가 없는 피터 파커에게 있어 토니 스타크와 피터 파커의 관계가 ‘유사 부자(父子)’ 또는 ‘사부와 제자’의 관계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소니픽쳐스

기존 시리즈와 차이점 하나 더. 기존 시리즈에서 수트는 수트일 따름이었지 수트가 스파이더맨에게 전투력을 향상시킨다는 의미는 거의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수트는 토니 스타크가 디자인하고 제작한 576가지의 신기능을 장착한 최첨단 수트다.

이는 이번 스파이더맨이 배트맨이나 아이언맨과 맥락을 같이 하는 히어로로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갖는다. 이전 시리즈가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가진 것이지 수트와는 상관없는 초능력이라면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거미인간은 미니 드론과 첨단 거미줄 기능을 빌린 히어로다. 이는 스파이더맨이라 해도 수트가 없으면 보통 인간으로 전락하는 배트맨이나 아이언맨과 맥락을 같이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토니 스타크는 왜 초능력을 가진 피터 파커에게 날개를 달아줄 최첨단 수트를 제공했을까. 토니 스타크 덕에 최첨단 기능으로 무장한 스파이더맨은 수트 없이도 영웅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를 피터 파커에게 되묻게끔 만든다. 피터 파커가 첨단 기능을 장착한 수트 없이도 영웅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때에야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음을 묻는다는 점 역시 기존 스파이더맨과의 차이점이 될 수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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