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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해리 '입' 막고, 이다해 '옷' 입히는 더러운 세상[하재근의 TV이야기]
하재근/문화평론가 | 승인 2010.02.10 15:46

국가가 하이킥 해리 입 막는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빵꾸똥꾸’, ‘루저’, ‘막장 드라마’ 등으로 대표되는 막말방송 근절을 위한 규제 공론화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참으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소식입니다.

한나라당 정책조정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는 9일 오전 국회에서 ‘방송의 품격 향상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막말·저품격 프로그램의 법적·자율적 규제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 주요 인사들은 방송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규제가 불가피하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선 "방송의 품격은 국가의 품격이고 나라 미래의 품격"이라든가, "(방송의 저질화와 선정성 문제가) 이제는 거의 극에 달한 것 같다"라든가, "방송심의 규제 강화를 위한 입법 활동에 적극 동참 하겠다" 같은 말들이 나왔다고 하네요.

무섭습니다. 국가권력에 의해 도덕 검열의 철퇴가 방송에 가해지는 형국입니다. 김구라 막말부터 문제 삼기 시작하더니 점점 일이 커지고, 압박이 구체적으로 변해가고 있네요. 이제 방송에서 뭐라고 입을 뻥끗하기 전에 국가의 허락부터 맡아야 하는 세상으로 가는 것인가요?

얼마 전에도 황당한 일이 있었죠. <추노>의 선정성 논란이 한창일 때 방통위가 <추노>에 의견제시 조치를 취했던 사건 말입니다. 국가가 이렇게 나서면 할 말도 못하게 됩니다.

작품이 방영이 되면 시청자든 평자든 입 달린 사람은 그 작품에 대해 누구나 한 마디씩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백가쟁명식으로 서로 떠들어대며 소통하는 것이 공론장의 당연한 역할입니다. 그 속에서 비판도 나오고 찬사도 나오고 하며 문화가 역동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비판이 좀 나왔다고 즉각 국가권력이 개입해 물리적인 조치를 취하면, 공론장에 공포분위기가 형성됩니다. 말로만 떠들 때야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지만, 말 한 마디가 국가에 의한 제재로 연결된다면 무서워서 말 하겠습니까, 어디?

   
 

국가가 섣불리 나서는 건 공론장의 소통 기능, 한국 대중문화의 자정기능을 죽이는 우가 될 수 있습니다. 명백한 범죄에 대해서는 공론장이 아닌, 경찰의 물리력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지요. 하지만 문화적 현상에 대해서는, 물리력보다는 공론장 중심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작품활동과 토론활동이 모두 우리 사회 문화의 수준을 형성합니다. 이 사이에 물리력이 끼면 자유로운 문화의 흐름에 단절이 생깁니다.

더 큰 문제는 창작자들이 겪을 심리적 위축이지요. 사실 <지붕 뚫고 하이킥> 해리의 ‘빵꾸똥꾸’가 무슨 대단한 욕설입니까? 그런 정도의 말에까지 국가가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건, 아주 사소한 표현에까지 권력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21세기는 문화 창조성의 시대, 지식경쟁의 시대라면서요? 창작자, 제작자들을 이렇게 겁박해서 무슨 문화가 발전합니까? 물론 지나친 막말, 막 나가는 막장 드라마 문제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공론장의 토론으로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국가권력의 섣부른 개입으로 인한 창작자들의 위축은, 막말로 인한 문제보다 더 큰 문제를 우리 사회에 안겨줄 것입니다.

현재 방영되는 주요 프로그램들 중에 국가까지 나서서 우려할 정도로 반사회적 성격이 심각한 프로그램은 한국의 망국병인 입시경쟁을 부추기는 <공부의 신> 하나 정도밖에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국가가 겁을 줄 정도는 아닙니다. 비판을 해도 시민들이 하고, 개탄을 해도 시민들이 하도록 놔둬야 합니다.

정 막말 막장 방송 풍토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낀다면, 표현 하나하나를 규제하는 것보다 방송언론 시장화 자체를 막아야 합니다. 방송이 시장화 돼서 모든 방송국이 이윤 극대화에 몰두한다면, 아무리 표현 규제를 해도 방송의 상업화 저질화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가 할 일은 사소한 표현 규제가 아니라, ‘방송 시장화 저지 - 방송 공공성 확립’에 있습니다. 그 기본 구조만 서면 사소한 문제들은 시민사회 공론장의 자정작용에 의해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니 해리의 ‘빵꾸똥꾸’같은 것에 신경 꺼주시란 얘깁니다. 국가가 시트콤 아역을 퇴출시키겠다고 나서는 모양새이니, 이 얼마나 찌질한 구도입니까? 얼마 전 <추노> 선정성 문제 때는 국가가 이다해의 옷을 입혀주겠다고 나선 모양새여서, 참으로 변태적인 구도였습니다. 부디 국사로 바쁘신 분들께선 이런 일들일랑 털어버리시고, 보다 근본적인 방송 공공성 문제에나 집중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하재근/문화평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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