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 뒷심이 무섭다. 공효진의 흔들리지 않은 연기와 버럭 마초의 오해(?)를 벗은 이선균의 안정적인 애정행각이 시청자 시선을 무섭게 빨아들이고 있다. 동시에 시작된 공부의 신의 독주에 영 빛을 못 볼 것 같았던 초기와는 달리 지금은 언제라도 추월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덕분에 본래 16회 예정이었던 것이 20회로 연장되었다. 보통의 경우 드라마의 급작스런 분량 늘리기는 무리를 가져오기 마련인데, 파스타의 경우는 무난히 이음새를 들키지 않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이식하는데 성공한 듯싶다.

사실 11,12회 스토리의 중심 주방보조 정은수의 난은 부주방장의 갈등과는 달리 굳이 없어도 되는 부분이다. 과연 이것이 처음부터 기획된 것인지 추가된 것인지의 확인은 다음 스토리와의 연결을 보고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정말 자잘한 분량으로 겨우 숨만 쉬고 있는 라스페라 해고 요라시 3인방의 파스타 가게 개점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아는 것이 병이라고 분량이 늘었다는 소식에 자꾸만 이것이 본래 살인지 붙인 살인지 의심을 하게 된다.

아주 어설퍼서 그 접합부분이 금새 표가 나면 싱거운 일이 되겠지만 시청자 조련에 익숙한 면을 보여 온 파스타 작가의 밀고 당기기는 좀처럼 숨은 그림을 드러내주지 않는다. 어쨌거나 라스페라의 머슴 정은수의 난은 결과적으로 이선균을 더욱 더 멋진 존재로 만드는데 최대한의 불쏘시개로 사용됐다. 마치 서유경이 조르고, 보조 없이 고생하는 애인이 안쓰러운 셰프가 체면 구기고 주방보조 정은수를 찾은 것 같지만 이런저런 떡밥을 채에 거르면 남는 것은 두 가지 내용이다.

주방 보조라 할지라도 요리사라는 점에 대한 셰프의 대단히 인간적인 존중은 정은수와의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고, 애인 유경에 대한 찌질남스러운 질투와 삐침 그리고 눈키스보다 더 감각적인 손 만지기는 서두르지 않는 연애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곧이어 등장한 은수와의 극적인 화해는 그대로 파스타의 대단원이라 해도 하등 이상할 것 없는데, 묘한 것은 대단히 교과서적인 갈등해소법인데도 불구하고 파스타에 채용되어서는 왠지 달라 보이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정은수의 난은 어쨌거나 무사히 하루 한번 아침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것으로 합의. 해결됐지만 우리의 유경, 현욱 커플은 여전히 철없는 애정 행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전에 파스타의 시청자 조련이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알렉스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삐친 현욱을 찾아간 유경은 실랭이를 한다. 삐친 현욱이 "다 때려 칠까?"하니 유경은 "한 게 뭐 있는데?"하고 반문한다.

그러자 현욱이 "아니 대체 뭘 하고 싶은데?"하고 또 반문한다. 그러자 유경이 "별 거 별 거 다"라고 대답한다. 현욱에 "그래 그냥 다 하자"한다. 그러고 유경이 갑자기 화제를 은수를 돌려버린다. 좋게 말하면 감칠맛이고 성격대로 말하자면 감질나게 한다. 그 이유는 이 리뷰를 쓰는 시청자가 남자인 탓이다. 같은 말이지만 유경의 '별 거 별 거 다"와 현욱의 "그냥 다"는 말만 같지 분명 다르다.

호텔 레스토랑을 찾은 11회, 현욱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남들 다 하는 거"를 할 거라고 하자 유경이 두려움 반 수줍은 반으로 뒷걸음치는 것의 연장선의 대화인데, 연애를 할 때 분명 남자의 '그것'과 여자의 '그것'은 다르다. 매번 결론 없이 간만 보고 마는 이 두 남녀의 연애 쌍곡선은 결국 12회 정은수의 난을 정돈하기 전 남자가 보기에도 가슴 쿵쾅거릴 로맨틱한 손 애무로 정리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 정은수의 방일까? 럭셔리한 현욱의 차도 있고, 얼마든지 근사한 곳 다 두고 하필 정은수의 방에서 그 둘은 또 다시 시청자들 가슴을 간지르는 애정신을 벌인 것일까? 그러고 보면 이들은 항상 시장에서 라면 먹다가, 항구 구멍가게, 주방 그리고 총각냄새 질펀한 은수의 방 등에서만 감정이 오가고 있다. 라스페라라는 고급 식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의 사랑은 참으로 소박한 풍경으로 그려진다.

지난주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향을 끌어낸 눈키스보다도 개인적으로는 더 감각적인 절제와 설렘이 담겨진 것이 은수방에서 유경을 손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신이다. 그것을 미리 확정시켜준 것은 현욱 옆에 누운 유경이 또 혼잣말처럼 "오길 잘 했다"라는 말이었다. 그 말 뒤에 유경을 손을 고이 끌어다가 어루만지고 머리칼을 톡톡 쓸어주자 유경은 스르르 아기처럼 잠든다.

이제 이들의 애정신이 왜 은수방이어야 했는지 의문이 풀렸을 것이다. 아무리 착한 남녀라도 방 안에서 함께 눕다보면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방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사고 칠 수 없다. 다행이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다. 또한 길과 박정아가 김제동의 집에서 첫 키스를 한 것처럼 남의 집이라는 묘한 긴장감이 연애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충동과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두 번째 애정행각마저 목격하게 된 은수지만 처음과는 달리 이미 '더럽게 맛없는' 자기 파스타를 남기지 않고 다 먹은 셰프의 말없는 존중에 감동한 이후라 문제될 수가 없다. 빈 접시는 요리사에 대한 최대의 찬사라고 하지 않던가.

11.12회 파스타는 이선균 케릭터의 완성판이었다. 주방 보조에게 보인 요리사로서의 진정성 담긴 존중과 애인의 오해를 받으면서도 변명하지 않고 묵묵히 두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적인 모습과 진정으로 한 여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보여준 것이 그렇다. 이제 늘어난 4회 분량의 나머지는 해고 요리사 3인방의 파스타점 개업과 얽힐 가능성이 있다. 그것을 통해 궁금증을 듬성듬성 심어놓았던 여자 요리사들의 진면목을 보여주게 될지 궁금해진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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