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 선거전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모든 것이 영 마뜩치가 않다. 선두를 달리는 이명박 후보는 ‘BBK스캔들’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좌파정권종식'을 내걸고 설사 그가 대권을 쥐더라도 역대 최대의 약체정권을 모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왜냐 하면 도덕성을 접어둔 유권자들에게 이 후보 임기 중 특히 경제부문에 있어 놀랄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할 경우, 이미 없는 도덕적 권위에다 국정실패 책임까지 다 함께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것이고 이 때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것은 순식간일 게다. 설사 전국토를 운하공사판으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현재 나라 안팎의 조건을 살펴 볼 때 박정희식 개발독재가 부활하고, 80년대의 3저 호황이 다시 오지 않는 다음에야 이명박 후보가 약속한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 총선과 그 뒤를 잇는 지자체선거 일정 등을 고려한다면 범여권에서도 이명박 후보에게 일단 최대의 상처를 입혀 놓는 것이 유리하다고 계산할 만하다.

보수적 경제·성장 프레임에 갇힌 대선

1990년대 초 구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한 다음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한 마디로 당시 국방, 안보 등 메인컨셉에서 헤매던 부시를 몰아 부쳐 정권교체에 성공한다. 그런데 2007년 한국에서는 일치감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외치며 아랫목을 차지한 것은 이명박 후보였다. 그래서 정동영 후보는 노무현의 부정적 이미지를 계승한 데다, 개성, 평화, 가족행복 또 최근에는 다시 일자리 등 도무지 산만한 이미지만 나열할 뿐 무언가 '한 방'이 없다. 정권을 교체할 이유는 분명한 데, 정권을 연장해야할 이유는 보이지 않는 말이다. 노무현 학습효과 탓인지 '왜 정권을 또 잡아야 하는지' 설사 제시해도 거의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 경향신문 12월1일자 1면.
문국현 후보야말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시대정신의 반사적 수혜자이다. 그러나 갈수록 콘텐츠가 기근이다. 불명확한 정체성도 문제다. 진보인지, 보수인지 아니면 흔해 빠진 '제3의 길'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한미FTA가 그렇고, 대북 정책이 그렇고 또 대미정책이 그렇다. 이명박 후보에 비해 사안이 아주 미미하나, 도덕성이 생명줄인지라 최근 불거진 문 후보의 딸과 관련된 입방아는 그로서 몹시 아플 수 있다.

'스페어 후보' 이회창의 수구보수화는 분명 틈새를 노린 전략적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지지기반도 그렇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라는 데 이회창 후보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대구 경북 지역의 '전근대적 근대화세력'에 기대고 있고, 내놓는 공약도 시대정신과 동떨어져 있다. 철지난 안보이슈를 가지고 대세를 장악하기는 어렵다.

이슈만 놓고 본다면 이번 대선은 희한하다. 1위 후보인 이명박 대 군소후보에 불과한 문국현, 범여권 후보인 정동영 대 이회창 사이에 대립각이 서있는 형세이다. 이는 선거정치의 양대 축인 경제와 안보를 놓고 범여와 범야 모두가 분열되어 있는데 원인이 있다. 진보후보 권영길의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화두를 내건다손 치더라도, 앞줄이 너무 길어 한참을 기다려야 목소리가 들린다. '코리아연방공화국'등의 공약으로 봐서 권 후보로서는 '바보야, 문제는 통일이야'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듣는 이가 없다. 권영길 후보의 극심한 부진은 진보정치의 내일을 우려하게 만든다.

문국현 후보의 주장처럼 이번 대선이 '진짜' 경제 대 '가짜' 경제의 대결이든 아니든, 보수적 경제프레임 혹은 성장프레임에 갇힌 선거임에는 분명하다. '나머지는 다 부차적이야!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각 후보들이 내세우는 성장률과 일자리 창출, 가능할까

후보들 마다 '저성장'의 극복을 외쳐대면서 자신이 집권하면 6-8%성장에 일자리는 300만개-500만개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명박 후보는 이른바 '747'공약 즉 연 7%성장, 소득 4만달러, G7국가 진입을 내세운다. 그리고 매년 7% 성장에 따른 60만개의 일자리창출, 그 중 대운하 건설을 통해 4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한다. 반면 정동영 후보는 6% 성장, 5년간 250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고 있다. 문국현 후보는 8% 성장, 500만개의 일자리를 공약함으로써 양으로는 최대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지는 다른 문제이다.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잠재성장률은 1990년대 6.1%에서, 2001년-2004년에는 4.8%로 감소되었고, 2010년대 중반 2014년 까지 4.6%정도(중립적 전망)가 될 것이라 한다. 그런데 그 또한 비관적 전망은 4.0%에 불과하고, 낙관적 전망은 5.2% 정도이다. 그런데 여기서 각 요인별 기여도를 함께 보자. 1990년 잠재성장률 6.1%중 각 요소별 기여도를 보면 노동이 1.0%, 자본이 3.3%, 생산성이 1.8%를 차지한다. 그런데 2000년 전반에 들어가 기여도는 노동이 0.9%, 자본이 2.3%, 생산성이 1.6%로 감소한다.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노동의 기여도가 1.0%에서 0.9%로 단지 0.1%하락한 데 반해, 자본의 기여도는 3.3%에서 2.3%로 1%로 대폭 하락한 데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이른바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체감한 까닭이 크다. 즉 자본축적의 고도화와 더불어 자본의 생산성이 갈수록 감소한 것이다. 그렇지만 글로벌경제의 출현과 함께 자본의 해외진출과 해외현지생산이 가속화되고, 수출 또한 고용 및 생산유발효과가 낮은 IT업종이 주도하는 것 또한 중요한 원인가운데 하나이다. 또 수출경제는 현재 실익이 감소하고 물량 위주 성장은 점차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 추세가 정권이 바뀐다고 역전되리라 보이지는 않는다.

잠재성장률이 4% 대로 추정되는 조건에서 과연 6%-8% 성장이 가능하고, 또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당장 의문이다. GDP 1조달러를 눈앞에 둔 한국경제의 규모에서 개발독재 시대를 연상하는 고도성장은 분명 성장 포퓰리즘이다. 또한 GDP 1%당 고용유발효과가 현재 일자리 약 7,5000개인 수준에서, 설사 성장률이 예컨대 문국현 후보의 주장처럼 연 8% 성장한다 하더라도 일자리는 연60만개, 임기5년을 다 합해도 300만개에 불과하다. 더욱이 잠재성장률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노동의 그것보다 훨씬 높은 조건에서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교육, 훈련을 통한 성장률 제고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성장률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빈곤, 사회적 양극화, 고용불안이 곧바로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양적 성장의 신화를 넘어서는 질적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비정규직 확산만을 초래할 불량한 일자리 창출 공약보다는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성장일변도 보수적 경제담론 … 질적 성장과 삶의 질에 대한 담론 소외케 해

성장일변도의 보수적 경제담론이 주도하는 조건에서 질적 성장, 삶의 질, 내수/수출의 균형성장, 지속가능한 성장 등과 같은 담론은 설 자리도 없다. 그 어떤 후보에게서도 성장의 한계와 그것의 사회적 결과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찾아 볼 수 없고, 단지 물량주의적 성장론만 난무한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경제의 현 수준은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경천동지할 일은 거의 없다. 특히 글로벌 경제의 조건에서 일국 경제의 정책 공간(policy space)은 이미 현저히 축소되어 있고, WTO, FTA등으로 인해 앞으로 이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글로벌경제차원에서 구조화된 바로 이 신자유주의 프레임을 손대지 않고서는 별로 할 일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바로 이 신자유주의 프레임의 개혁 없이 '좋은 경제'가 없다는 것이 문제의 진정한 핵심이다. '바보야, 문제는 좋은 경제야!'

젊은 시절 운동권 주변을 '대충' 서성댄 기억이 있는데, 아직도 손을 못 씻었다. 태어나 한 일이라고는 읽기, 쓰기가 다이고, 여태 모자라 아직도 계속한다. 그래서인지 학문적 오지랖이 꽤나 넓다. 주특기가 정치사상사이고, 누가 보든 말든 통일문제, 한미관계, 국제통상도 오래전부터 계속해오고 있다. 스크린쿼터 때문에 한 10년 가까이 영화인들과 손발을 맞추어 왔고, 한미FTA 때문에 너무 자주 TV에 등장했다고 핀잔도 많이 먹었다. "불신(不信)만이 살 길이다"를 모토로, 불신의 정치철학을 세워보는 프로젝트를 혼자 추진 중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