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문제가 심상찮다. 정치 입문 후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 안철수 전 의원은 입을 다물고 있고 당은 우왕좌왕하면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당의 존립 근거가 상실되는 수순으로 사건이 움직이고 있다.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복기가 필요해 보인다.

문준용 씨 채용 의혹 조작 사건에 대한 국민의당의 입장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유미 씨의 단독범행이라는 것이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이유미 씨 사이에 오고 간 SNS 대화를 공개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이준서 전 최고위원도 적극적인 언론 대응을 통해 자신들 모두가 속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했다.

과연 그런 것인지는 검찰 수사가 더 진행돼야 알 수 있다. 검찰은 이유미 씨와 그의 동생은 물론 이준서 전 최고위원까지 피의자로 특정한 상태다. 국민의당 주장대로라면 사건은 이들 중 이유미 씨와 동생만 처벌을 받고 끝이 날 것이다. 물론 당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결합한 증거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사건의 실체와 별개로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되돌아보는 일도 필요하다. 현대의 선거전에서 이뤄지는 흑색선전은 대개 과장과 맥락의 왜곡 정도 수준에서 이뤄지기 마련이다. 비유하자면 솥뚜껑 보고 놀란 사람에 대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며 자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할지언정 솥뚜껑을 자라라고 하진 않는다는 거다. 더군다나 전국적 규모에서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다. 아예 제보 자체를 만들어 내는 사례는 흔치 않다.

국민의당 창당을 준비중이던 안철수 의원이 지난 2016년 1월 15일 창당 준비 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30대 벤처 창업가인 이준서씨를 처음으로 영입한 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트위터에 게재한 사진 (연합뉴스)

일각에서 후보는 몰랐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럴 수 있다. ‘공작’이라는 것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 혹여라도 들통이 날 경우까지 생각해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선거전에서 후보를 보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언론은 국민의당의 대응을 두고 ‘꼬리 자르기’라고 하지만 오로지 선거전의 문법으로만 보면 잘릴 꼬리를 먼저 준비하는 건 상식이다.

가장 큰 의문은 ‘공작’의 내용이 매우 어설펐다는 점이다. 국민의당이 녹취를 공개한 당시에도 지적된 바다. 문준용 씨와 함께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다닌 한국인의 숫자 자체가 많지 않다. 발언 당사자를 찾아내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당시부터 제보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의당이 제시한 제보자의 신상 등 조건에 들어맞는 사람은 1명 뿐 이었는데, 이 사람은 자신의 제보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니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당 지도부의 당시 행동은 그래서 의문이다. 제보자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의혹 제기를 강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이유미 씨가 나눴다는 SNS 대화를 보면 이들도 이런 문제를 모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는 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언론에 며칠째 등장하고 있는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자기가 생각해도 한심하다는 정도의 말밖에 못하는 건 그런 이유다.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선거 조직이라면 이 정도의 사안을 가볍게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대선 당시 국민의당 선대위가 과연 정상적으로 운영됐는지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당시 안철수 후보의 대선 대응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TV토론에서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는 후보 본인이 본인의 의혹을 언급한 대목 등이 그렇다. “제가 MB아바타 입니까”라는 발언은 선거전에서 미디어전략이 실패한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선거 벽보나 각 가정으로 배달된 공보물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들이 선거를 치러본 사람이라면 결코 승인하지 않았을 디자인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안철수 후보 캠프 측은 ‘광고천재 이제석’을 언급하며 유야무야 넘어가는 전략을 택했다. 그러나 ‘광고천재 이제석’은 그야말로 수사일 뿐, 실제로 그 공보물 디자인의 실무를 이제석 씨가 맡았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 명백하다.

이런 사례를 종합해보면 당시의 문제는 선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내리지 않았을 결정을 누군가 반복해서 내렸고, 이 결정이 캠프의 공식라인보다 우위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철수 전 의원은 정치 입문 이후 반복적으로 ‘비선’논란에 시달려왔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문제가 윤여준 전 장관이나 금태섭 의원 같은 최측근들을 이탈하게 만든 한 원인이기도 했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 사건이 당내의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일부 언론은 당장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원외인사들과 총선을 3년 남겨 놓은 원내인사들 간의 온도 차가 크다는 진단을 전하고 있다. 이 얘기를 정파적 관점으로 해석하면 안철수 전 의원에 가까운 쪽과 호남을 기반으로 한 중진 의원들에 가까운 쪽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자종합시장을 방문해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이 사건에 대해 해명하면서 연일 반복해서 “당 해체”를 언급하고 있다. 만일 지도부가 이 사건에 조직적으로 연루됐다면 국민의당은 존립 근거를 잃게 된다는 취지다. 그런데 당의 대표급 인사가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 드러났다고 할지라도 앞장서서 ‘해체’란 단어를 언급하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적어도 당내에 그런 주장을 내놓는 흐름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당장 눈앞에 닥친 8월 전당대회가 문제다. 이 사건 때문에 위에 언급된 양쪽의 정치노선이 극적으로 대립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진지하게 국민의당을 ‘해체’하자고 한다는 것은 결국 더불어민주당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상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을 ‘친정’으로 여기는 인사들은 이런 극단적 결정도 하나의 선택지로 놓을 수 있다. 이미 동교동계 인사들이 더불어민주당 복귀를 주장한 바도 있다. 한국 정치의 문법으로 봐도 야당보다는 여당에 소속된 정치인이 더 행복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전부터 국민의당과의 통합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이 구도가 전당대회에 반영될 수 있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국민의당에 몸을 담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최대 장애물은 안철수 전 의원의 정치적 영향력이다. 이대로라면 2022년 대선에 재출마할 것이다. 안철수 전 의원의 존재는 국민의당이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존립 근거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2022년까지의 구심력을 없애버릴 수도 있는 파괴력을 갖추고 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최대의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국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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