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블록버스터는 이상하리만큼 누가 누가 영화를 더 망칠 수 있을까, 혹은 누가 누가 영화를 더 못 만들까 내기 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품성이나 영화적 완성도에 있어 조악한 경쟁을 하고 있다.

톰 크루즈의 ‘미이라’, 조니 뎁의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스칼렛 요한슨의 ‘고스트 인 더 쉘’ 등 일련의 블록버스터들은 관객의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는 이 기대감을 순식간에 분노로 바꿔치기하는 데 있어 일가견이 있는 망작이었다. 오늘 언급하는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같은 경우에는 올해의 망작 대열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고 안달이 난 영화라고 평가할 만하다.

영화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스틸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시리즈가 더하면 더할수록 퀄리티가 나아지기는커녕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퍼레이드 영화다. 1편에서 2편으로 시리즈가 이어질 때 영화적 완성도가 너무나도 다운그레이드 되는 바람에 시리즈가 언제쯤이면 나아질까를 염려했지만 시리즈 2편과 3편은 시리즈 전체적으로 보면 그나마 나은 열대 과일 ‘두리안’ 수준. 공룡 로봇이 날뛰는 4편이 2편과 3편보다 못한 스웨덴 청어 통조림 ‘수르스트뢰밍’ 수준의 졸작이었다면 이번 시리즈는 마이클 베이가 투입되었음에도 썩는 악취가 진동하는 시체꽃 ‘’라플레시아’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필자는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의 완성도적인 결함을 조목조목 짚어내는 모두까기 역할은 자제하도록 하겠다. 대신 다른 관점으로 마이클 베이의 이번 졸작 블록버스터를 바라보도록 하겠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에이리언 커버넌트’, ‘블레이드 러너’, ‘엑스 마키나’, ‘에이리언’과 공유점을 갖는 영화다.

이들 일련의 영화들은 피조물이 창조주의 뒤통수를 가격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영화 속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오래전에 휴지통에 버리고 만다. 되레 인공지능을 만든 창조주인 인간에게 피조물인 인공지능이 반기를 들고 창조주인 인간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는 피조물의 반역이 관찰되는 영화가 이들 SF 영화다.

영화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스틸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참고로 이들 영화에는 창조주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피조물을 제어하지 못하고 피조물에게 어이없이 당하고 마는 창조주의 무력함도 내포돼 있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의 옵티머스 프라임이 창조주인 쿠인테사의 편을 들었다가 범블비를 통한 각성을 통해 창조주에게 각을 세운다는 설정은 앞에서 언급한 이들 SF영화에 빚진다.

그런데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각을 세운다고 해서 옵티머스가 앞에서 언급한 인공지능과 전적으로 같은 궤를 같이 하는 것도 아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에이리언 커버넌트’, ‘블레이드 러너’와 ‘엑스 마키나’, ‘에이리언’에는 결여된 ‘휴머니티’가 옵티머스 안에는 담겨 있다. 트랜스포머를 만든 창조주를 배신하면서까지 옵티머스가 최우선적으로 견지한 가치관은 지구인이 창조주보다 중요하다는 ‘휴머니티’가 담겨 있다.

SF영화 속에서 묘사된 인공지능이 휴머니티를 배제한 채 창조주에게 반기를 들었다면 옵티머스는 반대로 휴머니티 때문에 창조주를 저버린다. 반기를 든 이유인 휴머니티의 있고 없고의 차이가, 옵티머스와 인공지능이 창조주에게 반기를 든 동기가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자 확연한 차이점이다.

영화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스틸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의구심이 드는 건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에서 옵티머스가 휴머니티 때문에 자신의 창조주에게 등을 돌릴 만큼 인간이 최우선적으로 가치 있는 종인가 하는 점이다.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기는 하지만 지구라는 생태계 최대의 적은 바로 인간이 자행하는 극심한 자연 파괴다.

급격한 기후 변화와 인구 증가 등으로 말미암아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생존할 수 없는 별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주장하는 스티븐 호킹이 인간은 30년 안에 지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경고를 날릴 만큼 인간이라는 종이 자행하는 자연 파괴의 만행이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옵티머스가 자신의 창조주를 버릴 만큼의 가치가 과연 인간에게 상존하는 것일까를 영화관을 나오며 스스로 묻게 된다. 가이아(Gaia)의 관점으로 본다면 지구 최대의 적은 인간임에 분명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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