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준상 기자]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21일 연세대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 방송저널리즘연구회 세미나에서 소위 ‘문빠(문재인 지지자)와 ‘한경오(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라는 호명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을 동일한 이념과 가치의 집단으로 부르기에는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채 교수는 사회문화적 가치와 언론과 공중이라는 두 주체의 상호작용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채 교수의 발제문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우파집단들은 조중동 보수언론과의 대척점에 있는 진보 진영의 언론을 비판하기 위해 ‘한경오’라는 호칭 사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과 서거 이후 한경오란 명칭의 사용 주체는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로 바뀌었다. 노 전 대통령을 자살 배경에 검찰조사와 언론의 비난과 비판적 보도가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채 교수는 발제문에서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문재인 정권의 등장 이후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이 ‘한경오’란 호칭이 다시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채 교수는 문재인 지지자들은 소위 진보 진영의 ‘한경오’가 문 대통령에 대해 공정하지 못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고 온라인상에서 지속적으로 지적해왔고, ‘한경오와 문빠의 갈등’이란 논란까지 빚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가 지난 21일 오후 연세대 빌링슬리관 202호에서 한국방송학회 소속 방송저널리즘 연구회 주최로 열린 ‘변화의 시기, 언론과 공중의 역할과 관계의 성찰 : ’한.경.오‘ 논란을 계기로’란 주제의 세미나에서 발제 중이다. (사진=한국방송학회)

채 교수는 문재인 지지자들을 ‘문빠’라고 호명하게 되면 이들의 정치적 발언이나 행위를 ‘비정상적’이라고 해석하게 되기 때문에, 이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과 결정에 대해 사회적 자격을 박탈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채 교수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문재인 지지자들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자신들의 동질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하면서도 이성적인 수준의 운영방식을 표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이번 논란은 사회문화적 변화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실현하는 시민(Actualizing citizen)이 진보와 보수 언론이 아닌 제3의 진영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분석했다. 새롭게 등장한 시민들은 전통적인 언론이 독점한 역할과 권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고, 주체적으로 팟캐스트,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등 네트워크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대안적인 공간을 만들어 그들만의 미디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채 교수는 "‘한경오-문빠’ 갈등은 진보 언론과 특정 정치지지 세력 집단과 갈등 관계가 아니라 기존 언론과 새로운 미디어 진영 간의 갈등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세미나 토론자로 참석한 언론학자들은 이번 논란에 대해 약간의 시각차를 보였다. 이기형 경희대 교수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진보 언론을 한경오 또는 가난한 조중동이라고 부르며, 이들 언론의 기사에 문제점들을 찾아내 ‘적폐 인증’이라고 말하는 상황”이라면서 “이들은 그동안 진보언론이 수행했던 역할에 대해서는 말하고 평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방송학회 소속 방송저널리즘 연구회가 지난 21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연세대 빌링슬리관 202호에서 ‘변화의 시기, 언론과 공중의 역할과 관계의 성찰 : ’한.경.오‘ 논란을 계기로’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한국방송학회)

한윤형 시대정신연구소 부소장은 “공중들이 소셜미디어와 팟캐스트 등에 관심을 보이는 현상 자체가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이 힘을 활용해 자신들이 싫어하는 한경오를 타격하는 경향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 부소장은 “문재인 지지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자신들이 원하는 서사를 쓸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을 탄압했다는 편집된 증거를 집어넣으면 된다”면서 “공중들을 이해하는 자세는 취해야 하지만 그와 별개로 뉴스를 편집·조작하는 것은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이번 사태는 주류 언론과 비판적 공중 간에 관계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는 “최근 논란을 ‘한경오-문빠의 대립’이라고 논의하는 것은 좌파 지식인들을 프레이밍”이라며 “공중은 민주화 이행 이후 자기 진화를 해왔지만 언론은 구태의연하다”고 지적했다. 최진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논란의 한 주체인 공중을 ‘문빠’로 볼 것인지 ‘전략적 파트너’로 볼 것인지에 따라 언론 매체의 경쟁력이 결정될 것”이라며 “언론은 말을 걸어오는 고객에게 일관성과 신뢰성을 보여주며 소통을 해야 하는 전략이 필요하게 됐다”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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