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강경화 후보자에게 18일 외교부장관 임명장을 수여했다. 후보자로 지명된 지 28일만의 일이다. 강경화 장관에게는 많은 상징이 부여됐었다. 최초의 외교부 여성장관, 비 외무고시 장관, 그리고 누구보다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원칙대로 처리할 실무적 장관. 그 상징은 다른 말로는 기대라 할 수 있다. 또 지난 정권이 국민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남긴 상처에 대한 보상이라고도 할 것이다.

신임 강경화 장관에게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역시나 일본군 위안부 합의 재협상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에게 안긴 커다란 상처이기 때문이다.

강경화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가을부터 시작해서 겨울이 끝나 봄까지도 시민들의 분노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위안부 협상처럼 슬픔의 정서가 촛불을 지탱했기 때문이다. 위안부 합의의 경우 할머니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연대가 우선이겠지만 10억엔에 국격을 팔아먹은 것 같아 자존심에 상처를 더 크게 받은 부분이 있었다. 강경화 장관 임명 소식에 “한일전에서 이긴 기분”이라는 한 누리꾼의 장난스러운 소감이 꼭 장난스럽게 들리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강경화 장관 임명에 대해 야당의 반발과는 달리 시민들은 뜨겁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치권에 분열을 부추기는 듯한 기사에 재치 넘치는 댓글로 긴장을 풀게 하고, 스스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고도의 정치행위를 보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정치권 급랭 예상이라는 기사에 “폭염에 급랭 내려주신 대통령 찬양해”라고 한다. 웃고 넘기기에는 심오한 정치 의사가 담겨 있다.

야당으로서도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무리수와 막말도 연이어 터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강동호 서울시당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해댔고, 정우택 대표는 대통령이 국민여론조사를 따르겠다는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간인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과 의원들이 14일 의원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강행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과 2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 헌법은 그대로 잘 있었다. 야당은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는 대통령에게 반헌법적이라고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이는 수준의 정치를 하고 있다.

야당이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는 고유의 단어인 독선이 지금이라고 다를 리 없다. 다만 보통이라면 그런 독선적인 정부가 민심을 무시한다고 해야 하는데 지금의 야당에게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야당무시’ ‘협치파괴’ ‘일방통행’ 등의 자유한국당의 피켓시위 패널 어디에도 국민이 없다. 야당이 더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동시에 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야당이 다수의 특권을 만끽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이 아무 말 잔치를 벌이는 동안 언론들은 익명을 인용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익명은 근거 없음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언론이 찌라시와 익명을 두고 경쟁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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