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의 작은 욕심이 큰 것들을 잃고 있다. 드라마 흐름과 관계없는 장면들로 관심을 끌고자 했던 충동을 이제 고공의 안정권에서도 버리지 못함이 안타깝다. 10회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절벽 위의 키스신은 그 자체로만 떼어놓고 본다면 지미짚의 활용의 아주 적절한 예가 될 정도로 화면의 미학은 뛰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키스는 더 기다렸어야 했다. 당장에 송태하와 혜원이 알지 못하는 궁녀와 오빠 큰놈의 죽음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직 원손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10회는 3가지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먼저 대길의 아이리스 이병헌과 견줄 만한 명연기. 그의 절규를 뒷받침해준 언년이의 혼례 사실과 불구대천의 원수 큰놈의 정체는 얼떨떨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충분히 그럴 만도 했기에 어쩔 도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큰놈이의 "나는 그대가 아닌 나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라는 말은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큰놈의 죽음 후의 대길의 허무한 표정은 그것을 대신 말해주는 듯 했다.

사실 무엇보다 궁금했던 옛 상전과 종의 만났을 때 사용할 그들의 말투였다. 큰놈이는 대길에게 하게체를 썼는데, 그가 양반행세를 해온 것만이 아니라 배다른 형이었다는 이유가 있었다. 갑작스레 복잡해진 대길과 큰놈, 언년의 관계 속에 대길은 또 다시 넋을 잃고 그 참에 대길의 단검으로 자신의 복부를 찌른 큰놈의 자살은 그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대길이 그를 죽인다면 또 다시 근친살인의 윤리적 고민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9회부터 시작된 살겁 중 가장 안타까운 죽음은 원손을 지키던 궁녀였다. 나뭇가지를 잘라 만든 목창이 그렇게 먼 거리를 날아와 정확히 사람의 등짝을 꿰뚫을 수 있냐는 리얼리티는 차치하더라도 꼭 죽였어야 하는 의문이 남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불필요한 살생이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미 한참 뒤처진 한섬 일행을 바싹 따른 황철웅이 굳이 창을 던지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근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궁녀에 대한 묘사는 그다지 없었지만 한섬과의 관계, 그리고 원손에 대한 지극한 정성으로 인해 그녀의 죽음은 많은 시청자를 애달게 했다. 사실 조역의 죽음에 그 정도로 반응을 끌어냈다면 곁가지치기로는 기대 이상의 충분한 효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저런 거짓말이고 털어놓다가 호강시켜주겠다는 말만은 참이라는 은근한 프로포즈 후의 죽음이라 더욱 애잔했다.

한섬의 무뚝뚝하지만 듬직한 애정 때문에라도 이름자도 밝히지 못하고 죽어간 궁녀가 안타까운데, 그 순간에도 충성과 명령에 따라야 하는 한섬은 절규하며 원손을 업고 도망을 간다. 과연 무사다운 태도이고 적절한 묘사였다. 그러나 궁녀의 죽음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스승의 원수인 철웅을 살려주는 태하의 어이없는 우정과 비교할 때 너무 몰인정하다.

게다가 철웅은 태하 등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할 원손을 노리는 살수 아닌가. 그를 살려두는 설정이 드라마 흐름을 엉성하게 만든다. 게다가 뒤쫓아 온 관군을 모두 베어버린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의 신분은 훈련원 고위 관료이다. 오히려 관군들을 지휘해서 원손을 쫓는 것이 당연한 철웅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청난 살겁 중에서도 유일하게 무덤이라도 갖춰서 장례를 치른 만득이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눈물 없이 과장된 웃음으로 복수를 다짐하며 아우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천지호는 적어도 그때만은 야차같은 추노꾼이 아니라 끈끈한 정을 가진 민초의 모습이었다.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갚는다"는 그의 결연한 말은 만득에 대한 각별한 정을 드러내 연민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렇듯 중반을 넘긴 추노가 본격적인 주제로의 접근을 위해 9,10회는 무자비한 숙청을 단행했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추노의 완성도에 흠이 되었다. 하도 많은 이들이 졸지에 죽음을 당해 아무리 드라마 속 허위라 할지라도 시청하는 입장에서도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득보다 실의 키스신, 부하 한섬보다 못한 장군 태하?

처음부터 태하와 혜원의 키스신을 위해 두고 간 무기였다. 무술에 워낙 자신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에 여인을 위해 무기를 내려놓고 떠난 태하의 정체는 충신과 사랑에 빠진 남자 사이에서 아리송하기만 하다. 그것까지는 그나마 이해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단지 기다렸다는 이유에 갑자기 마음이 동해 지금껏 내외하던 그들이 긴 키스로 몰입하는 것은 느닷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아름다운 키스신으로 인해 아까운 조연들의 죽음이 무색해지는 느낌을 주었다. 그냥 포옹 정도로 만족하고 지체할 수 없는 길을 재촉했어야 했다. 전장에 핀 꽃이 주는 처연한 아름다움처럼 많은 죽음 후의 남녀의 사랑이 절정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서둘렀다.

그뿐아니라 큰놈의 죽음 뒤에 울부짖던 대길의 명연기 또한 덮어버렸다. 대길의 절망을 좀 더 확정적인 것으로 만든 키스였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조금 더 뜸을 들인 후였어도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아주 조금 더 시청자들에게 많은 조연들의 죽음을 추스릴 시간을 주었다면 누구나 알 수 있었던 태하와 혜원의 애정신에 반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궁녀의 죽음에도 대의를 따라 도망쳤던 한섬보다 못하게 그려진 태하의 애정행각은 추노가 번번이 범하는 조급한 소탐대실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노출신이 이다해를 죽였다면 이번 키스신은 오지호를 죽였다. 추노가 시청률만 높은 것이 아니라 사극의 새로운 지평을 연 완성도까지 갖춘 드라마로 자리 굳히기 위해서는 조연들보다 먼저 작은 욕심과 조급함부터 죽여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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