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붕어 와인 잔에 물을 붓던 이선균에 이어 공효진이 유리창에 붕어 두 마리를 그려놓는다. 이들의 말없는 연애편지가 흥미롭다.

드라마의 재미는 어디에 있을까? 요즘 추노처럼 압도적인 비주얼을 바탕으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해주는 대본의 탄탄함. 이 정도면 한 편(시리즈)의 드라마를 아주 잘 봤다는 포만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나는 놈마다 효자일 수 없듯이 쟁쟁한 작가와 배우들이 모인다 해도 이 삼박자가 딱 들어맞기란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공효진의 파스타가 어느덧 10회를 마감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버럭 셰프 이선균의 난공불락의 견고한 성이 허물어지고, 심지어 마초로서의 모습까지 무너진 이상 파스타의 전개는 이미 끝이 났다. 갈등을 거쳐 엔딩으로 달려가면 이제 그만이다. 성급하게 파스타를 평한다면 앞서 말한 3가지 중 2개의 조건은 갖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 신기한 것은 애초에 공효진에 대한 호감에서 시작된 파스타 시청이 어느덧 작가에 대한 관심과 호감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러기까지는 공효진, 이선균 커플의 맛깔나는 연기가 큰 몫을 해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현욱 역에 이선균의 캐스팅이 참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마초같이 생긴 사람이었다면 드라마 인상을 결정짓는 후반의 변화가 좀 서먹서먹했을 수도 있다. 그뿐인가. 유경의 두 눈에 입맞춤하는 장면의 달콤함은 좀 덜했을 것 같다.

조금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10회 끝 무렵에 주방에서 보인 파스타 두 남녀의 가벼운 입맞춤은 나인하프위크에서 킴 베이시어와 미키 루크의 러브신을 상상케 했다. 이쪽은 아직 서툴고 머뭇거리는 초보들의 이제 시작인 스킨십에 불과하고, 저쪽은 최강 로맨티스트의 끝을 보여준 것이어서 전혀 다른데 그런 연상 작용이 일어났다. 단지 주방이라는 공통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 실행하지 못하지만 사랑을 시작한 이들의 마음속에는 그보다 더 진지하고 뜨거운 애정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스타는 첫사랑에 대한 보고서 형식을 느낄 수 있다. 보통의 첫사랑은 (요즘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대게는 자기 생활의 주변에서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누구라도 아주 비밀스럽게 그 벅찬 첫 경험을 시작한다. 첫사랑 그것만으로도 감당키 어려운데 남모르게 해야 하니 그 심장의 압박은 배로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병원에서 이선균이 공효진의 손을 잡는 과정, 식자재 창고에서 조개로 입을 찝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개를 다듬는 것을 도와주던 끝에 눈에 가볍게 입맞춤한 흐름이 매우 개연성 있고 충분히 조심스럽게 그려졌다. 원나잇스탠드란 말이 그다지 낯설지 않은 요즘 세태에 이런 굼뜬 진행은 사실 의외다. 그래서 감칠맛을 더해준다.

물론 이 남녀가 이토록 서툰 연애를 하는 이유는 초보 공효진 탓이다. 사실 이태리 유학파 이선균은 소위 선수에 속한다. 할 말이 있다면서 한 군데는 이뻐보인다고 일단 여자를 살짝 부끄럽게 해놓고 전혀 예상치 못한 키스를 한 그는 진정한 선수다. 보통의 남자는 이러기 어렵다. 자기 마음이 동하면 일단 입술로 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술도 마셨고, 초보인 효진을 충분히 배려한 눈 위의 키스는 선수다운 로맨티시즘의 발휘다.

여자를 위한 드라마인 줄 알았던 파스타, 알고 보니 남자들을 더 몰입케 한다. 여자보다 좀 더 치명적인 첫사랑의 기억 속으로.

게다가 이쁜 곳이 몸도 아니고, 입술도 아니고 눈이라고 한다. 아무리 몸이 모델 뺨칠 정도이고 고혹적인 입술을 가진 여성이라 해도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은 눈일 것이다. 남자는 당연히 프론트 허그만을 생각하지만 정작 여자가 더 행복해지는 것은 백 허그라고 들었다. 이런 것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현욱은 분명 최고의 선수이다. 하기사 짐승이 아닌 이상 갓난아기 같은 표정을 하는 공효진에게 언감생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작가의 로망일지 모른다. 나쁜 남자에 끌리는 여자의 동기, 그렇지만 사랑한 후에는 좋은 남자여야 하는 그런 여자의 바람을 현욱의 변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있다. 이제쯤이면 초기의 비호감 현욱은 사라졌다. 여전히 거만한 걸음걸이에다가 키스를 하고난 후에도 "너 내 도마에서 내려가면 죽어"하는 마초의 격을 버리지 않지만 이미 그것이 허당이라는 것 다 들통 난 후다.

아직 이 드라마가 끝난 것은 아니고 또한 여전히 공효진, 이선균이 주고받는 대사에 대한 기대감이 아주 크지만 이 말 한 마디를 하고 싶다. 서숙향, 당신의 드라마는 정말 파스타보다 맛있다. 인정한다. 그러나 파스타의 모든 대사는 따로 떼놓고 보면 정말로 아무 말도 아닌 그런 말들이다. 그것도 역시 좋다.

오히려 명대사에 대한 부담감이 역력했던 "당신의 파스타는 섹스보다 맛있다"라고 한 줄 힘차게 뽑아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곱지 않은 시선뿐이었다. 그 위기를 헤쳐나간 것은 공효진의 말없는 연기였다. 공효진을 캐스팅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느낌이 역력한 파스타는 또한 공효진에게 자신이 가진 발군의 역량을 다 보일 수 있게 한 아주 잘 맞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한편, 이태리 유학파의 반나절 반란으로 졸지에 입장이 바뀐 여자 요리사 3명과 영업 후 술자리를 가지면서 공효진이 느닷없이 복직 이야기를 꺼냈다. 작은 주방도 있고, 케터링 및 브런치 개발을 통해 일자리와 매출을 동시에 확보하는 솔로몬의 지혜 같은 제안이었다.

비로소 이 3명의 여자 요리사가 라스페라에서 해고당한 이후에도 짧지만 끊임없이 화면에 비친 이유가 설명되었다. 누가 누굴 속이고 배신하는 막장 진행에 하도 덴 지라 좀 어색하기도 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을 슬쩍 내비쳤다. 그런들 좀 어떻겠는가. 세상이 하도 각박하니 드라마에서라도 그 무거운 짐 잠시 내려놓는 것도 나쁠 것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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