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뚫고 하이킥>의 김병욱 PD가 홈페이지에 직접 글을 올려 화제다. 그는 작품할 때마다 인사말을 꼭 남겼었는데, 이번엔 너무 바빠서 인사말을 못 올렸었다. 이번에 황정음의 신종플루 덕분(?)에 한숨 돌리게 되어 인사말을 올린 것이다.

그는 <지붕 뚫고 하이킥> 엔딩을 봄꽃과 활짝 웃는 얼굴로 장식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일부의 우려대로 엄청나게 우울한 엔딩은 아닐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김병욱 PD는 배우들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 이순재에게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촬영을 앞당겨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묵묵히 아침까지 기다려줬다며 존경심을 표했다. 이순재의 이런 성실성에 대해서는 지난 주 <무릎팍 도사> 나문희 편에서도 증언이 나온 바 있다. 김자옥에게는 그녀의 코미디 재능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한 미안함을 표현했다.

정음이 신종플루로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아직 촬영분량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때 감염을 우려해 상당수 스태프가 철수한 상태에서 소수가 남아 끝까지 촬영을 마쳤다고, 스태프와 정음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특히 지훈은 정음이 신종플루에 걸린 것을 알면서도 주저 없이 포옹씬을 찍었다고 한다.

이렇게 촬영된 것이 바로 정음이 바깥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춤을 추는 치어리더 에피소드였으니, 그녀에겐 정말 악전고투였던 셈이다. 정음은 과거에 ‘뺀질뺀질’한 된장녀 이미지였다. 하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의 떡실신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열정을 인정받았는데, 이번 신종플루와 치어리더 에피소드에서 그녀의 열정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준혁에겐 특별히 예쁘게 찍지 않아도, 세경과 함께 있을 때 첫사랑의 순수한 떨림이 그대로 전해질 만큼 ‘순수한 눈’을 가졌다며 앞으로 나이를 먹더라도 그 눈빛만은 계속 간직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외에도 정음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광수와 줄리엔의 ‘우월한 기럭지’가 인상 깊다, 해리는 연기의 신이다, 신애의 눈엔 감성이 가득하다 등의 평을 내놨다.

중반 이후 부각된 인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어느 날 한옥집 어딘가에 빛이 어려 봤더니 인나였다고 한다. 예뻐서 캐스팅한 것이 아닌데 점점 더 예뻐졌다며, 아마도 <지붕 뚫고 하이킥>이 더 연장됐다면 이 ‘매장량을 알 수 없는 금광’같은 배우를 개발하는 데에 집중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명했다. 인나의 막판 부각을 기대했던 시청자로서 함께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고작 스무 살의 나이에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특히 세경에 대한 평가가 인상 깊다. 김병욱 PD는 ‘예쁘다는 말과 아름답다는 말’을 구분하고 싶으면 세경을 보면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고작 스무 살의 나이에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세경의 아름다움은 금방 눈에 띄는 성질이 아니어서 처음엔 실감을 못하다가, 한두 달쯤 지난 후에 비로소 깨달았다고 한다. 시청자들도 <지붕 뚫고 하이킥>을 한두 달쯤 봤을 때 비로소 세경의 맑고 순수하고 처연한 아름다움에 몸서리를 치기 시작했다. PD와 시청자의 감상이 비슷한 것이 재밌다.

배역 때문에 예쁜 옷 한번 못 입게 한 것이 늘 세경에게 늘 미안했다고 한다. 러브라인의 라이벌인 정음이 화려함의 끝을 달리고 있는데 늘 구질구질한 식모 상태를 유지해야 했던 세경. 어느 날은 그녀가 신발을 바꿔 신었길래 왜 신발을 바꿨냐고 물어봤더니 그녀 왈, 오래 신은 운동화가 발이 시려서 바꿨다고 했단다. 발이 시릴 만큼 떨어진 신발로 버텨왔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세경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빛날 수 있었다. 식모 배역에 어울리지도 않게 명품으로 몸을 치장하고 있었다면 세경은 시청자의 질타를 받았을 것이다. 동생이 주인집 아이에게 구박받으며 눈칫밥을 먹고 있는 판에 어떻게 언니가 몸치장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세경의 누추한 옷차림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럴수록 시청자는 안타까워하며 세경을 응원하게 됐다.

김병욱 PD는 ‘예쁜 옷 예쁜 신발이 없어도 이 아이는 스스로가 고유한 빛을 낸다’며 세경을 칭찬했다. 그렇다. 세경과 <지붕 뚫고 하이킥>은 누추함이 오히려 더 눈부시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세경을 <추노>가 배웠다면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건 <추노>다. <추노>는 <지붕 뚫고 하이킥>과 반대로 갔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누추한 식모 복장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시청자의 절대적 지지를 이끌어냈다면, <추노>는 노비일 때나 도망자일 때나 ‘샤방샤방 블링블링’ 불변 미모를 통해 과장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시청자의 절대적 비난을 받았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식모 복장으로 세경을 공주로 만들었고, <추노>는 선녀 복장으로 이다해를 수렁에 빠뜨렸다. 이 두 작품은 안 예쁘다고 안 예쁜 게 아니며, 예쁘다고 다 예쁜 게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한다.

작품의 구도에 맞게 표현을 하면 비록 화려하지 않아도 결국 시청자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작품의 구도에 어긋나게 표현을 하면 비록 화려해도 시청자 눈에는 밉상으로 비치는 것이다. 식모 세경과 선녀 이다해의 운명은 이렇게 하여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고 말았다.

이 사례를 모든 배우와 연출진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여배우가 욕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배역 상황 무시하고 명품옷에 신부화장만 고집하면 된다. 제작진이 여배우를 죽이는 방법도 간단하다. 무조건 명품코디에 신부화장만 유지시켜주면 된다. 그러지 않으려면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경을 반드시 기억할 일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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