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직을 18부 5처 17청 2원 4실 6위원회로 변경하는 정부조직개편안이 발표되었다. 야당들의 반응에 온도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대적인 변화라고는 볼 수 없으니 무난하게 국회를 통과하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단 한명의 장관도 정식 임명되지 않았다. 심지어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요직들 중에서 아직 후보 지명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자리가 많다.

첫 번째 인사이니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잡음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라면 이와 같은 속도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그렇게 준비를 해도 국무총리 인준 표결에 자유한국당이 불참했고 야심차게 지명한 공정거래위원장과 외교부장관 후보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으니 신중함이 꼭 필요한 때인 것은 분명하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적재적소에 배치할 인재가 너무 없어서 늦어지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탄생을 확신한 캠프에서 대선 전에 이미 논공행상을 다 끝냈고 자리 배치도 대충 정했다는 '찌라시' 뉴스 같은 소문들은 낭설이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검증 중이거나 적절성을 판단 중인 인사들이 상당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후보 지명이 늦어지니 언론은 출처도 불분명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말로 알리바이를 만들고는 이 사람 저 사람 하마평들만 늘어놓고 있는 상황이다.

새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안 중 나의 관심은 '산업통상자원부'의 향방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줄곧 '통상의 기능'을 외교부로 이전하겠다고 했었고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벤처부로 승격하여 '산업의 기능'도 상당부분 이전이 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산업통상자원부'에는 '자원'만 남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기능을 다른 부처로 다 보내고 '에너지부'를 신설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 Ⓒ연합뉴스

이런 생각들이 오가고 있을 때, 언론에는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과 조석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지명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만약 통상의 기능이 외교부로 이전된다면 두 사람의 장관 지명은 가시화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판단도 들었다. 일단 산업통상자원부가 외교부와의 줄다리기에서 통상의 기능을 빼앗기지 않는 방향으로 승리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장관 하마평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겉으로 드러난 경영 능력에서 후한 점수를 받은 사람들임은 분명하다. 조환익 사장은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현대기아차에 천문학적인 금액인 10조 5천 5백억 원을 받고 팔아 예상외의 엄청난 수익을 올린 장본인이면서 국내 최대 공기업의 최장수 최고경영자로 군림하고 있는 중이고, 조석 전 사장은 원자력발전 전도사로 원전비리로 크게 몰렸던 한국수력원자력을 다시 정상궤도로 올려놓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석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연합뉴스

하지만 두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 에너지 공약인 <탈원전, 친환경, 대체에너지정책>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조환익 사장은 우리 사회에 '탈핵'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에너지 정책의 전환과 국책 사업 추진 과정의 공권력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밀양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갈등 상황에서 공권력과 돈을 앞세워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주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강제로 밀어붙인 장본인이며, 조석 전 사장은 노후 원전인 월성 1호기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온갖 꼼수를 쓰며 결국 수명연장 허가를 받아내게 만든 사람이다. 그렇게 날치기로 수명이 연장된 월성 1호기는 법원에 의해 가동중단 결정이 내려진 상태다.

이런 인물들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유력한 인사들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되면 탈핵국민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중장기적 탈핵 로드맵을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한 바도 있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이나 조석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같은 인물들과 함께 어찌 '탈핵 로드맵'을 만들 수 있겠는가. 핵발전소를 세우던 손으로 어떻게 탈핵에너지정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이들은 노후 원전 즉각 폐쇄와 신규원전 건설 중단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다. 핵발전소 확대를 주장해 왔고 '핵마피아'라고 불리며 원자력발전소를 둘러싼 이해관계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초대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장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법원 앞에서 시위하는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밀양송전탑 반대싸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공권력의 조력을 받은 한국전력은 하루 3천명 이상의 경찰 병력을 동원하여 노구를 이끌고 살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어르신들을 밀어냈다. 2014년 6월 11일, 마치 군사작전 같은 대대적인 행정대집행으로 현장의 모든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끌어낼 때까지 연인원 38만 명의 경찰 병력이 투입되었다. 한국전력이 배후에 있고 박근혜 정부가 밀어주지 않았다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았을 시기에 경찰이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송전탑 세우는 일에 이토록 헌신적으로 움직였을 리가 없다.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며 2명의 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381명의 주민들이 형사 입건이 되었으며 재판을 통해 주민들에게 부과된 벌금만 1억 원이 넘었다. 수년간의 싸움 과정에서 한국전력은 보상금과 지역 발전을 앞세우며 주민들을 회유했고 수십 년 가족처럼 살아왔던 마을 공동체를 회복할 수 없을 지경으로 찢어놓았다. 이 모든 일의 총책임자가 바로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이고, 원자력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며 '원전부흥'을 주도한 조석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같은 이들이 그 뒤에 있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국회의원이던 2014년 6월 8일, 앞에서 언급한 6월 11일 행정대집행이 강행되기 직전 밀양을 방문하여 농성장을 일일이 찾아 주민들을 만났다. 당시 문재인 의원은 주민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주민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며 "밀양의 상황이 달라진 세상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도 했었다. 밀양주민들과 밀양과 연대했던 모든 이들은 그날의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당장 송전탑을 뽑아내고 주민들의 일터와 삶터를 돌려줄 수 없다면 임명되어서는 안 되는 이들을 장관으로 임명하여 밀양주민들의 가슴에 또 하나의 송전탑을 박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경남 밀양 부북면에 있는 송전탑 반대 농성장을 찾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며칠 후면, 6.11 밀양 행정대집행 3년이 된다. 그 행정대집행 결과 161개의 송전탑이 밀양전역에 세워졌고 밀양주민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전기가 흐르고 있다. 밀양 주민들은 오는 13일(화) 상경하여 광화문 1번가 국민인수위원회와 청와대를 찾아 밀양의 고통을 호소하고 17일(토)에는 밀양시내 행진과 문화제를 통해 탈핵과 탈송전탑에 대한 전국의 마음을 모을 예정이다.

한 가지만 더 덧붙이면, 2014년 6월 11일 밀양 4개 농성장 현장에서 한국전력에 의한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지도록 막강한 공권력을 행사한 당시 밀양경찰서장 김수환은 현재 종로경찰서장으로 영전을 했다. 당시 경남경찰청장 이철성은 현재 경찰청장이 되어있고 당시 경찰청장 이성한은 퇴임 후 현재 한국전력 상임감사위원이 되어 있다. 그때도 할매할배였고 지금도 할매할배인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도 서울로, 삼척으로, 영광으로, 부산으로, 주저 없이 길을 나서며 핵발전소 없고 송전탑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소리치며 다니신다. 조환익, 조석 같은 이들이 장관이 되면 우리는 이 할매할배들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지난겨울 그 혹독한 추위를 이기며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든 결과가 겨우 이런 것이냐고 물으시면 무어라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신중한 인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