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막말의 달인', '1등 보수' 홍준표가 돌아왔다. 4일 오후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지지자 500여 명의 환영 속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5일 홍준표 전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패장이 귀국하는데 환영하러 공항에 나오신 인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그만큼 마음둘 데 없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말했다. 홍 전 지사는 "대선 패배에 대해 사죄드리고 앞으로 자유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 데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면서 "앞으로 그 약속을 지키는 데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의 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정작 지난 5월 9일 홍준표 전 경남지사를 후보로 내세워 대선을 치른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홍준표 불가론'이 제기되고 있다. 표면 그대로 읽자면 대선 후보는 돼도 당 대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주장의 중심에 자유한국당 주류 친박계가 있다.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 (연합뉴스)

친박계는 홍준표 전 지사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홍 전 지사가 그나마 몇 퍼센트도 안 되는 데서 친박이라는 사람들 바퀴벌레라고 다 빼버리면 1% 갖고 정치를 하겠다는거냐"면서 "홍 전 지사가 당 대표가 되면 통진당이나 정의당처럼 3~4%, 아주 극소수의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문종 의원은 "외연을 확대해 나가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우리 당이 어떻게 미래를 견인하고 미래를 향해서 나갈 수 있을지 홍준표 전 지사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올 정도"라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홍 의원은 '홍 전 지사가 대선에서 24%의 득표를 얻었다'는 질문에 "그게 바로 친박이고 바른정당에서 온 분들이고, 홍준표를 좋아해서 찍은 분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홍문종 의원은 홍준표 전 지사가 당권을 잡을 경우 한국당 지지율이 20%대로 오를 것이란 전망에 대해서는 "애들 말마따나 착각은 자유"라고 일축했다. 홍 의원은 "홍 전 지사가 뭘 잘못하고 있는가를 낱낱이 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오는 7월 3일 열릴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표적 출마 가능성까지 내비췄다.

친박계 나름의 '홍준표 불가론'의 논리도 있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재판 중인 홍준표 전 지사가 당 대표가 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논리다. 홍 전 지사는 '성완종 리스트'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재판 중이다. 2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아직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친박계의 논리가 타당성을 가지려면 지난 5·9대선에서도 홍준표 전 지사를 대선후보로 내세워서는 안 됐다는 지적이다. 상대적으로 승산이 적었던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결국 '초상집 상주'가 되고 말 것이란 비관론이 높았다. 홍 전 지사에게 제기됐던 각종 문제를 차치하고 보면, 홍 전 지사는 보수 표심 회복에 어느 정도 성공하며 2위를 차지했다. 홍 전 지사가 당을 살려놓자, 이용가치가 다했다고 판단한 친박계가 이제 와서 홍 전 지사를 밀어내려는 모양새다.

사실 자유한국당 친박계와 홍준표 전 지사의 갈등은 대선 직후부터 불거졌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당권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홍 전 지사가 SNS를 통해 친박계를 비판했고, 친박계는 언론을 통해 반박하는 형식의 싸움이 이어졌다.

▲지난 5·9대선에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4일 인천공항에서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전 지사는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SNS 정치'에 매진하며 집요하게 '친박계'를 공격했다. 지난달 15일 홍 전 지사는 자유한국당 지지율 폭락의 원인을 "국민들이 구 보수주의 정권세력의 연장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으며, 지난달 17일에는 친박계를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었고, 박근혜 감옥 가고 난 뒤 슬금슬금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 해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며 '퀴박(바퀴벌레 친박)'이라는 신조어까지 생산해냈다.

지난달 21일에는 "몇 안 되는 친박이 자유한국당 물을 다시 흐리게 하면 당원들이 나서 그들을 단죄할 것"이라고 장담했고, 22일에는 "자유한국당은 전면 쇄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8일에는 자유한국당 친박계가 제기하고 있는 '집단지도체제'에 대해 "계파들의 이익만 대변하는 집단지도체제는 책임정치에 반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홍준표 전 지사의 비판에 친박계도 반격에 나섰다. 지난달 17일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여태껏 낙선한 대통령 후보들은 대개 좌절하거나 정계 은퇴를 했다는 점을 인식하라"고 홍 전 지사의 정계은퇴를 종용했고, 홍문종 의원은 '퀴박' 발언에 대해 "낮술 드셨냐"고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사실상 '폐족'이 된 친박계가 다시 자유한국당 당권을 노리고 있는 데는 홍준표 전 지사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다. 홍 전 지사는 지난 대선에서 '친박 맏형' 서청원, '친박 좌장' 최경환, '박근혜의 동생' 윤상현 의원 등 친박 실세들에게 내려진 당원권 정지를 풀어주며 "이제 모두 다 용서하자"고 주장했다. 홍 전 지사 스스로 친박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다는 얘기다.

어찌됐든 친박계와 홍준표 전 지사 사이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결국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통해 홍 전 지사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친박계에서 원유철 의원이 출마 의사를 공식화했고, 홍문종 의원 등도 잠재적 당권주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 모두 홍 전 지사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일부 초·재선 의원과 비박계 사이에서는 홍 전 지사를 당 대표로 추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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