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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전성시대? 수난시대?[기자칼럼] 아나운서의 '스타화'를 누가 원하는가
서정은 기자 | 승인 2007.11.29 17:22

방송사 아나운서들에게 메인뉴스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큰 꿈이자 명예인 시절이 있었다. 조리있는 언변, 자신감 있는 말투와 표정,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재원…. 아나운서가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도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은 분명 그러한 모습이었다. 백지연 아나운서와 김주하 아나운서 등이 큰 인기를 얻은 것도 다른 많은 요소들이 작용했겠지만 뉴스를 진행하던 그들의 '멋진' 스타일이 한 몫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지고 또 복잡해졌다. 뉴스 앵커보다 예능프로그램 '안방마님'이 훨씬 잘 나간다. 그러면서 뉴스 앵커와 프로그램 사회, 라디오 DJ 등 '전통적인 전달자와 진행자'로서 승부를 걸 것인지, 아니면 예능프로그램으로 진출해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로 인기를 얻던지 둘 중 하나로 양분되는 것 같다.

   
  ▲ MBC <지피지기> ⓒMBC  
 
하긴 요즘은 이 두가지 분류도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있다. 뉴스와 일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도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웃음을 주는 일이 다반사니까. 주말에 예능프로그램에서 턱걸이하고 구르며 망가지던 아나운서가 다음날 아침과 낮 방송에서 '멀쩡히'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체신머리가 없다거나, 뉴스 전달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말은 고리타분한 잔소리일 뿐이다.

아나운서의 활동 영역이 분화를 겪으며 폭넓게 확대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방송의 형식과 내용이 세분화되면서 아나운서의 역할과 직분이 다양해지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방송 환경에서 예능프로그램에 뛰어들고 있는 아나운서들은 너무 위태로워 보인다.

솔직히 요즘 TV에서 아나운서들을 볼 때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맘껏 웃으며 그들을 보기엔 속이 영 껄끄럽단 소리다. 일년에 한두번 명절 특집프로그램에 평소 '점잖던' 아나운서들이 요란한 분장을 하고 나와 망가지는 것을 보며 한편으론 웃고 한편으론 애쓴단 생각을 하곤 했지만 이젠 평일과 주말 예능프로그램마다 연예인으로 분한 아나운서들이 빠지지 않는다. 한 명으로는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아예 떼로 등장시키는 경향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MBC < 지피지기>와 SBS < 일요일이 좋다>가 대표적이다. 아나운서 여러 명이 동시에 MC로 나서 토크쇼를 펼치거나 아나운서 군단과 연예인 군단으로 편을 나눠 몸 게임을 하는 형식이다. 방송사에 입사할 때 아나운서를 지원 분야로 해서 뽑혔다지만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그들은 아나운서의 탈을 쓴 연예인이나 만능엔터테이너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아나운서가 연예인처럼 '쇼'를 하는 모습이 처음엔 신선하고 재미있었는지 몰라도 이젠 그들만의 차별화와 특색이 퇴색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더 자극적이고 더 요란한 모습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려고 해도 끼와 재능이 받쳐주지 않거나 프로그램 컨셉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엔 필연적인 한계에 직면한다.

여자 아나운서를 단체로 프로그램에 투입한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것도 아니다. MBC < 지피지기>의 경우 가을 개편에서 서현진 최현정 손정은 문지애 아나운서를 MC로 투입했지만 예상만큼의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아나운서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비판 여론만 비등하다.

개편 이후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고 해도 프로그램 자체가 시청자들을 강하게 흡입할 만한 요소를 갖고 있지 않은 게 가장 큰 약점이다. 아나운서들이 아무리 연예인처럼 화려하게 변신해 화보를 찍고 쇼파에 요염하게 앉아 살인미소를 날리며 개그맨 정형돈과의 스캔들을 불사해도 프로그램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다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 SBS <일요일이 좋다> ⓒSBS  
 
예능프로그램에 잘 맞지 않는데도 계속 프로그램을 바꿔가며 출연하고 있는 아나운서를 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방송사에서 아주 작정하고 골라 '스타'로 키우겠다는 전략을 표방한 탓이겠지만 예능프로그램보다 뉴스나 일반 프로그램 진행이 더 잘 맞을 수도 있는 아나운서를 도리어 소모품으로 전락시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나운서에게도 각자의 능력과 관심 분야가 있을텐데 그런 부분은 간과된 채 약간의 지명도와 호감있는 외모, 미스코리아 출신 등의 외형적 요소만으로 '예비스타' 아나운서로 치켜세워진다면 그건 시청자를 너무 쉽게 보는 일이다.

아나운서가 예능프로그램에서 모두 연예인처럼 변신해야 할 필요는 정말 없지 않은가.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과 재능을 발휘해 인기를 얻고 사랑을 받는 그런 아나운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것이 꼭 폭발적인 관심과 주목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모든 아나운서가 예능프로그램에서 떠야 능력을 인정받는 것처럼 조장되는 분위기가 굳어진다면 차라리 예능전문 아나운서를 따로 뽑아 특화시키는 것이 전체 아나운서의 질과 시청자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나을 듯 싶다.

물론 아나운서들도 이제는 누가 억지로 시켜서 망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세대가 바뀌었고 지금의 젊은 아나운서들은 과거의 그런 '엄숙한' 아나운서들이 아니다. 최송현 아나운서가 KBS < 상상플러스>에서 '텔미춤'을 출 때도 그랬다. 살짝 맛보기로 보여주고 그만 둘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선 인간적인 면모와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쩌면 짜여진 각본을 엄수해야 하는 의무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작위적인 느낌도 들었다. "< 상상플러스> 안방마님 자리를 아무나 꿰차나. 그러니까 노현정처럼 반드시 떠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의든 타의든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 그와 그녀들을 옥죄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마저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도 열광적으로 화답해주는 곳이 있으니 아나운서들의 '활약'은 계속될 것이다. "최송현 아나 텔미춤 멋지다" 류의 연예기사가 거의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그녀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방송사나 제작진이나 아나운서나 이런 반응에 짜릿함을 느끼고 이것이 프로그램과 개인의 인기를 높일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텔미춤은 물론이고 다른 춤도 밤새 연습해 선보일 것이다.

   
  ▲ KBS 1TV <생방송 다큐 사미인곡> ⓒKBS  
 
며칠 전 '2007 대한민국 아나운서 대상'과 7개 부문 수상자가 발표됐다. 수상자 면면을 보니 이른바 인기 아나운서들은 거의 없다.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아나운서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수상자 명단을 보면서 과연 우리 시대 아나운서의 위상과 역할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이제 아나운서들이 연말 '연예대상'을 휩쓰는 일만 남은 걸까. 

아나운서들이 이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일이 필요한 때다.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아나운서의 위상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내부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자신들의 색깔과 전문성을 쌓아나가야 한다. 더 이상 쇼를 잘 하는 '스타'가 되기를 강요받으며 아나운서라는 껍데기만 남지 않도록 스스로를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방송사와 프로그램 제작진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의 방향과 구성, 내용 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모든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양념처럼 아나운서를 등장시키는 관행 아닌 관행을 모두 답습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나운서만 나오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란 안이한 발상이 모두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몇편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증명됐으니 말이다. 

지난 6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1TV < 생방송 다큐 사미인곡>은 유명 MC와 연예인이 출연하지 않지만 박지윤 윤인구 최원정 한석준 등 4명의 아나운서가 각자의 스타일로 4개의 사연을 내레이션을 통해 풀어내는 색다른 형식을 선보였다. 내레이션을 활용해 아나운서의 '본업'을 살리면서 문자메시지를 통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조화를 이뤄 잔잔한 호평을 얻고 있다. 벌써부터 시청률 때문에 프로그램이 조기 종영돼선 안된다는 반응이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오고 있다. 프로그램 성격과 아나운서 진행이 잘 조화된 이런 프로그램의 등장을 곱씹어볼 때다.

개그맨 출신의 소수 인기 MC 군단이 프로그램 진행을 모두 휩쓸고, 본업이 가수인지 연기자인지 모를 연예인들의 겹치기 출연도 짜증날 때가 있는데 이제 지명도가 생긴다 싶은 모든 아나운서들까지 총출동하는 것은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보는 이들도 이젠 많이 지겹다. 억지스러운 스타 만들기가 아니라 아나운서의 장점과 개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신선한 발상과 재치있는 시도를 제발 부탁한다.

서정은 기자  punda@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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