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드라마 초반보다 조금은 커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는 <공부의 신>을 지지하고 있고, 그래서 비판이 커질수록 옹호의 목소리도 커집니다. 얼마 전엔 심지어 나름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는 매체들에도 <공부의 신>을 옹호하는 칼럼들이 실렸더군요. 대체로 옹호 의견들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이게 현실인데 어쩌라고?
2.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버하지 말자
3. 난 오히려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됐는데?
4. 김수로의 일갈이 통쾌하다.

1. <공부의 신>은 현실을 반영한다?

옹호의견 중에 이것이 가장 많은데요. ‘현실반영이 잘못인가?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이게 우리의 현실. 무조건 부정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든지.‘ 뭐 이런 얘기들이지요. 일류대 학벌이 지배하는 세상, 공부 못하고 일류대 못 가면 찌질이가 되어야 하는 세상이 현실이니만큼 그것을 보여주는 것도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래서 문제입니다. 우리 현실이 이미 1등지상주의, 입시지옥, 학벌사회이기 때문에 그것이 드라마로 그려지면 안 된다는 겁니다. <공부의 신>이 현실을 너무나 잘 반영하는 점이 오히려 문제라는 것이지요.

현실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룸살롱, 성인유흥, 프리섹스가 성행한다고 드라마가 폭력과 섹스를 내세워야 할까요? 현실에서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한다고 드라마가 그것을 그대로 반영해야 할까요? 당연히 아니지요. 그런 것은 ‘막장드라마’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반영했다는 것은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드라마로 그려질 만한 내용이냐, 아니냐이지 현실반영 여부가 아닙니다. 폭력성, 선정성, 물질성 등이 비난 받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의 그런 면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어서입니다.

<공부의 신>의 현실반영이 문제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로, 이미 우리 현실이 일류대지상주의 입시지옥인데 그것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벌사회라는 우리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습니다. 드라마가 새삼스럽게 그것을 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드라마가 그것을 떠들수록 일류대지상주의만 더 강화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공부의 신>같은 드라마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2.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버하지 말자?

입시교육, 학벌간판 자체를 무조건 거부하는 분들도 있지만, 적어도 난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나도 한국사회가 학벌사회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일류대 못 가면 찌질이 되는 사회이지요. 그래서 학생들을 만났을 때는 입시공부를 하는 게 좋다고 얘기합니다. 학부모에게 아이가 원한다면 입시 사교육도 시키시라고 권합니다. 지방대 학생들과 대화할 땐 편입이나 대학원으로 학벌세탁을 하면 장차 훨씬 수월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해주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일 땐 나도 <공부의 신>처럼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므로 괜찮다? 아닙니다. 바로 드라마라서 안 되는 겁니다. <공부의 신>은 지상파 드라마입니다. 전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살포되는 공공 미디어의 대중 상품이라는 얘깁니다. 막대한 파급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적 차원에선 할 수 있는 말도, 지상파 드라마에선 가려야 할 것들이 많지요.

내가 아무리 개인적인 차원에서 학벌사회를 인정한다고 해도, 만약 지상파에서 전 국민에게 강연할 기회를 나에게 준다면 그 자리에서만큼은 절대로 국민에게 ‘서울지역 일류대가 최고다, 그러니 입시경쟁에 몰두하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입시경쟁 학벌주의의 폐해를 말하겠지요. 지상파의 공공적 책무성 때문입니다. 강연이 이럴 진대 강연보다 훨씬 파급력이 큰 드라마는요? 그러므로 드라마라서 괜찮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3. 난 오히려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됐는데?

<공부의 신>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됐다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자신이 학교 다닐 때 이런 드라마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하는 분들도 많고, 자기 자식에게 보여주겠다고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자, 그렇게 전 국민이 지상파의 메시지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됐습니다. 그래서 <공부의 신>이 가리키는 대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부모, 학생, 교사, 학교장 모두 보다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뭐라고 할까요?

바로 ‘입시경쟁이 보다 심화되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미 지금 현재 모두가 지나치게 노력하여 한국이 입시지옥에 사교육비지옥인 상태인데, 더욱 노력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입시지옥에 사교육비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공부의 신>은 ‘아무리 찌질이라도 24시간 합숙특훈을 하면 서울대에 간다’라고 하니, 기숙형 입시교육을 향한 열망이 더 강해지겠네요.(이 드라마를 사교육업체가 후원하는 것에서도 사교육과 <공부의 신>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지요.)

모두를 지옥에 빠뜨리는 것이므로, 희망과 용기를 줘서 괜찮은 게 아니라, 희망과 용기를 주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그 희망과 용기라는 게 입시경쟁을 더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기름 같은 것이니까요. 지옥불에 휘발유를 들어붓는 형국이랄까요.

4. 김수로의 일갈이 통쾌하다?

책무성 때문에 지상파에선 언제나 일류대 지상주의를 비판해왔는데, 김수로는 막장으로 톡 까놓고 ‘서울대 최고!’라고 하니까 시청자들은 통쾌함을 느낍니다. 답답한 가식이 아닌 후련한 진실이라고 느끼는 겁니다. 그런 통쾌함 때문에 김수로 대사의 많은 위험성들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김수로가 하는 말에 담긴 철학은 정말 위험합니다. 김수로는 교육이 고객을 위한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고 하고, 학교와 교사도 경쟁 중심으로 구조조정 되어야 한다고 하고, 심지어 자격심사에 의한 교사 전원 해고 같은 극약처방도 언급합니다. 이런 김수로의 대사에 담긴 사고방식을 일컬어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라고 합니다. 자유경쟁 지상주의지요. 이런 사고방식이 만연하면 사회도 교육도 모두 썩습니다. ‘서울대 최고!’의 통쾌함에 취해 간과할 일이 아닙니다.

또, 김수로는 학교가 모든 아이들에게 입시공부를 잘 시켜주는 것이 진정한 ‘참교육’이라고 준엄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그렇게 하는 건 참교육이 아니라, 교육말살입니다. 입시교육은 교육이 아니니까요.(좋은 서비스일 순 있겠지만) 하지만 우리 현실은 입시교육을 요구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미 모두가 입시교육에 몰두해 교육이 붕괴되는 중이므로, 새삼스럽게 지상파 드라마가 입시교육을 참교육이라고까지 주장하는 건 정말 미친 짓이었습니다.

<공부의 신>을 비판하면 자꾸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대안을 따지기 이전에, 입시지옥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입시드라마를 방영하면 안 되는 게 기본인 겁니다. 이런 게 방영되느니, 일회적으로 소비되고 마는 단순 오락드라마를 내보내는 게 차라리 대안일 수 있겠네요.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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