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가 조금씩 실감되는 시기다. 경찰개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인권친화적 경찰’을 주문했고, 박범계 국정기획위 정치행정분과 위원장이 ‘경찰의 반성과 성찰’이 선행돼야 하며 ‘경찰의 권한 분산과 내부 통제 시스템 구축’해야 한다는 발언을 들으니 더 그렇다.

사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경찰이 자신이 그동안 행한 인권침해에 대해 반성하고 민중의 지팡이로 서기 위한 개혁과제에 대해서는 소홀히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권한을 확대하는 잿밥이다. 국정기획위도 지적했듯이 잘못하면 고양이 앞에 생선을 놓는꼴이 될 수있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의 권한 남용으로 인권침해를 입었는데 권한이 더 확대된다면 인권침해도 더 커질 것이기에 우려가 크다.

인권위 위상 강화를 위해 선행돼야 할 것들

박범계 위원장이 지적한 점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도 해당하는 문제다. 그래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밝힌 “인권에 기반한 국정운영”이나 “인권위의 위상 강화와 정부의 권고수용률을 제고”가 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기관이 흔히 그렇듯 현병철 위원장 시절에도 잿밥(권한강화, 인력확대)에는 관심이 많았다. 그러한 관점에서 인권위가 인권 관련 법안을 대하다보니 정적 해당 법안의 중요성이나 인권위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았다.

인권위가 달라졌다고 느껴지려면 우선 인권위는 그간 했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인권위의 독립성을 흔들고 무자격자를 인권위원장으로 두면서 인권위는 제 역할을 못했다. 그 결과 인권위가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차별)하는 비참한 일’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게 2010년 12월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와 장애인권리보장을 요구하며 인권위를 점거하던 장애인권활동가들의 인권을 침해한 사건이다. 전기를 끊고 난방을 끊었을 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작동을 끄고 활동보조인이 일상적으로 필요한 중증장애인임에도 식사시간에 제한적으로 농성하던 층에 올라가도록 했다. 이는 2012년 현병철 위원장 연임 인사청문회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졌고 당시 야당인 민주당에서 반대했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현병철 씨를 위원장으로 연임시켰다. 그리고 2013년 한국을 방문한 마가릿세카기야 유엔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도 이를 조사했고, 2014년 유엔인권이사회 보고서 발표에서 이를 지적했다. 그런데 유엔인권이사회를 참여한 인권위는 특별보고관의 지적에 대해 반성은커녕 변명만 했다.

그 후에 이성호 인권위원장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위원장이나 위원회의 공식 사과는 없었다. 유엔인권기구도 인정한 인권침해에 대해 위원회가 부정하고 사과하지 않는데 시민사회가 인권위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위원장 본인이 한 인권침해가 아니라할지라도 인권위라는 국가인권기구가 행한 침해에 대해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마땅하다. 이는 용산참사나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해 경찰청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책, 책임자 처벌 등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인권위의 반인권행위는 이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최이우 비상임위원은 인권위원으로서 자격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인권위원이 되고나서도 성소수자 차별행위를 지속적으로 한 인물이다. 차기정부의 인권 10대 과제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있는 것과 매우 배치되는 일이다. 어느 나라 인권위원이 성소수자 차별 발언을 하겠는가. 그럼에도 인권위는 이에 대한 자성이나 인권위원 활동에 대한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비상임위원이라 모든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없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적어도 인권위원이라면 인권침해나 차별 발언이나 행동은 하지 말아야 되지 않는가.

인권위의 위상을 강화하려면 정부의 의지와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인권위 스스로 반성과 성찰, 재발방지에 대한 의견표명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경찰처럼 인권위 영향력 강화, 인력 확보라는 잿밥에만 관심을 두는 인권위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국가인권위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인권위의 대통령 특별보고 부활과 정부 부처에 인권위 권고수용률을 높일 것을 지시했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모습. Ⓒ연합뉴스

투명성 강화 등 인권위 자체 혁신 중요

또한 무늬만 인권위 위상 강화가 되지 않으려면 인권위가 투명해지고 시민사회와 소통해야 한다. 인권위 혁신과제가 제출되고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할 때 인권위 위상 강화가 현실화될 것이다.

그동안 인권위에 대한 시민사회의 신뢰가 떨어진 이유 중 하나가 주요 인권침해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게 가능했던 시스템이 바로 불투명성과 비민주적 운영이다. 인권위는 회의나 회의결과를 비공개로 하면서 인권위 논의와 결정을 비밀로 해왔다. 비공개회의에서 인권의 잣대가 아닌 인권위원의 자의적 판단으로 인권침해 사건에 면죄부를 줄 수 있었다. 그러한 운영에 반대한 인권위원이나 인권위 직원들은 결국 사퇴하거나 징계 당했다.

인권위원들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공개적인 운영은 매우 중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의하면 회의나 회의록은 공개가 원칙이다. 하지만 실제 비공개 회의가 많으며, 공개일지라도 회의록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주요한 인권현안을 다루는 경우 비공개회의의 경우 인권활동가들이나 시민들이 방청조차 하지 못하니 기본적인 모니터링(감시)도 불가능하다. 국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회의록을 특별한 사안인 경우를 제외하면 국민 모두에게 공개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문제적이다. 공공기관의 투명성 보장과 국민의 알권리와 거리가 멀다. 상임위나 전원위 회의록은 정보공개를 해야 겨우 볼 수 있다.

공개요청을 해서 나온 받아본 회의록에는 회의에 참석해서 발언하는 인권위원들의 이름이 지워져있다. 즉 익명처리 되어 발언자가 누군지 알 수 없다. 무책임한 발언과 판단이 난무한 이유다. 그래서 수차례 시민사회와 국회는 이를 시정하라고 요구했지만 인권위원들은 법적 근거 없이 익명처리를 유지하고 있다. 인권위가 공개 원칙을 지킨다면 회의에 참석하는 인권위원들이 안건에 대한 준비나 인권현안에 대한 사전 준비도 착실히 할 수밖에 없다. 인권현안을 다루면서 제대로 된 논의보다 다수결로 처리하려는 현재의 모습도 바뀌고 인권기준에 근거하지 않은 막말도 사라질 것이다.

인선절차에서부터 투명성과 시민사회와의 소통 만들어야

이러한 것이 제대로 될 때 시민사회와의 소통도 원활해질 것이다. 위원장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시민사회와의 소통은 원활하지 않다. 사회복지 시설 방문을 시민사회와의 소통으로 포장했던 현병철 체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기구로 거듭날 수 있다.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국제가이드라인에서도 언급하듯이 인권위라는 조직이 인권적이려면 시민사회와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국가기구이면서 인권기구이기에 인권현안을 다루는 시민사회와 소통할 때 구체적인 인권정책과 관행 개선이 가능하다.

따라서 인권위를 비판하는 인권단체들을 만나기 꺼려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이전 인권위와 달라지기 어렵다. 그러기 위해선 시민사회의 비판과 감시를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인권위의 주요 결정을 할 때 현장에서 뛰는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의견을 듣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그저 판사가 위법 사항에 대해 판단하듯이 인권위 내부 회의로 결정하면 된다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주요 인권 현안을 다룰 때 미리 공지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이 병행돼야 한다. 그러할 때 시민들도 어떤 사안이 어떤 기준인지 알게 되고 비슷한 인권사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인권정책과 관행 개선에 대한 공론화는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인권위원 인선절차는 ‘인권위 투명성 확보와 시민사회와의 참여’를 보장하는 주요 제도가 될 것이다.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을 비롯한 시민사회가 이미 ‘인권위원 후보추천기구’를 제안했고,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Global Alliance of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도 권고했듯이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투명한 인선절차로서 인권위원 후보추천기구’가 마련돼야 한다. 다시 말해 후보추천기구의 구성, 공개적인 후보추천과정, 청문회 등에 투명성과 시민사회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국가인권기구 간 국제조정위원회 (ICC, 현재의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승인소위의 2014년 10월 권고 중

위원 선출을 위한 명백하고 투명하며 참여적인 선출 및 임명과정이 관련 법, 규정 혹은 구속력 있는 행정 지침에 적절하게 포함되어야 한다. 자격기반 선출을 도모하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며 이는 국가인권기구 고위 지도층의 독립성 및 이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승인소위는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에 다음과 같은 조건을 포함하는 구체적 과정을 해당 법에 형식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권고한다.
a) 공석을 널리 공고
b) 다양한 사회 계층 및 교육 자격을 가진 잠재 지원자의 수를 최대화
c) 지원, 심사, 선출과정에서의 광범위한 협의 및/혹은 참여 도모
d) 선결되고 객관적이며 공시된 기준을 바탕으로 지원자들을 심사
e) 대표한 기관보다는 개별 역량을 기반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구성원 선출

승인소위는 파리원칙 B.1과 ‘국가인권기구 의사결정 기구의 선출 및 임명’에 대한 일반견해 1.8을 참조한다.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승인소위 2016년 5월 권고 중
- 공석 공고 의무화, 단일한 독립 선출 위원회가 일관성 있는 선출 절차를 적용하여 절차를 개선할 것

이번 기회에 인권위가 스스로 반성할 부분은 반성하고 투명성과 민주성을 높이는 개혁과제를 내놓기를 기대해본다. 그 첫발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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