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가 그리는 세계는 어떤 사람들의 세계일까? 노비와 민초들, 즉 없이 사는 다수 백성의 세계다. 한정수는 ‘벼슬하는 양반님네’들을 멀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추노>에서 조명되는 역사적 인물은 소현세자다. 오지호가 소현세자의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소현세자는 노비는 아니지만, 실패자란 점에서 지배층과는 다르다.

<일지매>는 백성들의 영웅을 그린 드라마다. 거기에서도 소현세자가 긍정적으로 나왔다. <탐나는도다>에서도 그랬다. <탐나는도다>는 또 광해군도 조명한다. 광해군도 실패자란 점에서 소현세자와 같다. 서민영웅을 그린 또 다른 드라마 <최강칠우>에서도 소현세자가 ‘우리 편’으로 그려진다.

대중 드라마들이 왜 이렇게 실패한 사람들에게 집착하는 걸까? 그들의 아픔, 못다 이룬 꿈이 안타까움과 공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소수의 기득권을 대표하는 권문세가들을 내세워서는 대중의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낼 수 없다. 기본적으로 거부감이 생기니까. 그래서 드라마들은 그 반대로 가는 것이다.

대중은 못 사는 사람, 평범한 사람의 성공기에도 환호한다.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제중원>은 한 노비가 신분의 굴레를 이겨내고 의사가 된다는 이야기다. <하얀 거탑>은 시골 출신 김명민이 대대로 의사 집안인 사람들에 맞서 항전하는 이야기였다. <공부의 신>은, 입시경쟁을 조장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못 사는 동네 ‘똥통 학교’의 아이들이 열심히 노력해 자존감을 찾게 된다는 승리의 이야기로 공감을 주고 있다. 물론 재벌들의 호화판 생활과 판타지같은 사랑을 그린 통속극들이 많지만, 결코 찬사를 받지는 못한다.

대중의 지지를 받는 예능 프로그램들도 언제나 소외받는 서민을 바라본다. <1박2일>이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닌 재벌집 순례를 다니며 호화판 체험을 해댔다면 과연 지금처럼 국민예능의 칭호를 받을 수 있었을까?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가 ‘대한민국 평균 이하’가 아닌 상위 0.1%와 어울렸다면 그들의 오늘이 있었을까? 그들이 권력자를 좇는 해바라기처럼 보였다면 대중이 그들에게 국민MC의 칭호를 허락했을까?

이경실의 안타까운 역주행

이경실이 안 먹어도 될 욕을 먹었다. ‘이경실 “토크쇼에 박근혜 前 대표 모시고 싶어”’라는 기사에 악플들이 주르륵 달린 것이다. 그녀는 ‘억울하고 기가 막힌 자신의 일화들을 거침없이 털어놓고 시청자들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겠다고 했는데, 여기까진 좋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여성들의 롤모델인 박근혜 전 대표를 직접 모시고 철퍼덕 앉아 편안하게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라고 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박 전 대표를 지지하건 말건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문제다. 키워드가 상징하는 구도가 잘못됐다. 박 전 대표라면 대한민국 상위 0.0001% 아닌가. <무한도전>이 대한민국 평균이하를 고집하는 이유를 새겼어야 했다. 이경실의 속마음이 어쨌건 그것과 상관없이, 이미지가 최악인 구도다. 이렇게 되면 서민들의 공감이 생길 수 없다.

더 문제는 ‘롤모델’이라는 말을 썼다는 점이다. 막대한 부모덕을 입은 인물은 결코 서민의 롤모델이 될 수 없다. 서민의 부모는 권력자도 아니고, 부자도 아닌데, 롤모델처럼 되기 위해서 부모를 갈아치울 순 없지 않은가? 세습형 유명인은, 정치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고, 존경할 수도 있겠지만 롤모델만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성들의’ 롤모델이라는 말을 함부로 쓴 것은 최악이었다. 한국 여성들의 꿈이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단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들에 대한 모욕이다. 토크쇼 진행자로서의 자질까지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서민의 롤모델은 자수성가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얀 거탑>의 김명민, <제중원>의 박용우처럼 말이다. 그래야 시청자들에게 희망이 생긴다. <공부의 신>이 만약 100만 원 짜리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 연간 수천 만 원의 교육비로 금칠을 한 아이들을 내세웠다면 결코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경실은 이 점을 놓쳤다. 그래서 안 먹어도 될 욕을 먹고 말았다.

찬사를 받는 대중 드라마들이 지배층을 내세우지 않는 이유를 깨달아야 차후 이런 실언을 안 할 것이다. 공감을 주는 토크쇼로 여자 예능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도 이런 실언이 나오는 구도로는 힘들다. 상위 0.0001%를 바라보는 구도로는 호사가를 위한 판타지는 줄 수 있겠지만, 공감이라든가 희망은 줄 수 없으니까.

꼭 서민이랑 토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말로라도 최상층 인사와 화려한 이미지가 아닌 진솔함과 인간미, 배려라는 가치를 내세웠어야 한다는 얘기다. 중요한 건 구도다. 최상층 인사를 내세움으로서 해서 인간미를 놓치고 반발심만 얻었다. ‘진심이 전달되는 토크쇼를 하겠다’라든가, ‘화려함만 추구하진 않겠다’라든가 좋은 말들은 정말 많지 않은가. 왜 하필 그런 키워드를 내세웠는지. 유명인이라 하더라도 본인의 능력으로 성공해 본받을 만한 가치를 전해주는 진짜 롤모델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경실을 향한 대중의 시선이 막 호감으로 진전되는 시기에 이런 기사가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기껏 호감으로 진전되던 이미지가 역주행하게 생겼다. 기사대로 본인의 발언이 맞는다면 자해적 실언이었고, 새 프로그램 <이경실 정선희의 철퍼덕 하우스> 측의 실수라면 진행자의 이미지를 스스로 무너뜨린 잘못이었다. 그나마 회복 가능한 역주행이어서 다행이다. 다시는 이런 구도를 만들면 안 된다. 앞으로 ‘배려하는 인간미’의 구도만 유지한다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경실 뿐만 아니라 대중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새길 일이다. 왜 드라마가 실패자, 민초들을 내세우는지. 왜 귀족을 부각시키지 않는지. 왜 1인자들이며 고소득자인 유재석, 강호동이 한사코 서민 이미지를 유지하며 아래로만 내려오려 하는지. 이것을 알지 못하면 언제든지 자해적 실언이 터져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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