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초기의 여러 개혁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이 중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까지 발표한 인사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언론은 ‘파격’ 등의 키워드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이런 것들보다 중요한 건 이 인사들이 보여주는 ‘방향’이다.

우선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정의용 전 주제네바 대사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했다. 애초 유력한 인사로 꼽혔던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홍석현 전 JTBC 회장과 함께 통일외교안보특보로 임명됐다.

외교관 출신인 정의용 전 대사를 국가안보실장에 임명한 것은 과거 정부와는 차별화되는 대북정책을 펼치되 한미관계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는 파격은 감행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판단의 배경에는 최근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상당히 적극적이라는 현실도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행위를 중지하면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그럼에도 21일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감행한 것은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는 제스추어일 수도 있고 어차피 대화 국면이 열릴 것이면 몸값을 최대한으로 높이자는 전략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스탠스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대화 국면의 개입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체 통일외교안보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은 필요하기에 문정인 교수를 특보로 기용하는 건 불가피했을 것이다. 문제는 문정인 교수가 중용된다는 것 자체가 과거 참여정부 때의 ‘동맹파 대 자주파’라는 대결구도를 상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친미인사로 비춰지는 홍석현 전 회장을 특보로 임명하면서 균형을 맞추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쨌든 보수언론은 국가안보실장 임명을 계기로 ‘색깔론’을 제기할 태세였지만 정의용 신임 국가안보실장이 북핵 관련 실무를 담당해본 일이 없는 인사라는 식의 볼멘소리 수준에 그치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 등 일부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장하성 정책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정책실장에 임명한 것이다. 장하성 신임 정책실장은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 중 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언론은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를 하나로 묶어서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의 경제철학은 상당히 유사하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대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가능토록 하는 구조를 강제해 주주자본주의 원리를 관철시켜야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재벌 문제의 당사자인 대기업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지만 한국 경제의 실무를 담당해왔던 경제관료들이 할 수 있는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는 정도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임명되거나 내정된 직후 온건한 메시지를 내놓으며 재계를 안심시키려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경제 관련 인사의 핵심은 김동연 아주대 총장을 경제부총리 후보자로 내정한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고졸 신화’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모두 중용됐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이외에 주목받는 부분은 김동연 후보자가 경제기획원 출신이라는 점이다. 김동연 후보자는 경제기획원과 기획예산처를 거친 전형적인 이력을 갖고 있는데, 이 때문에 언론은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홍남기 국무조정실장까지 묶어 이들을 ‘변양균 사단’으로 통칭하고 있다.

특히 김동연 부총리 후보자는 참여정부 후반기의 중장기 정책 비전인 ‘국가비전 2030’의 작성 실무를 총괄했다는 이력을 갖고 있다. 국가비전 2030 보고서는 변양균 당시 정책실장 등이 주도해 2006년 발표한 것으로 ‘성장과 복지의 동반성장’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당시 정치권은 “1100조에 이르는 재원 마련 대책이 없는 공허한 청사진”이라는 등의 비판을 제기했지만 보고서에서 주요 과제로 언급됐던 것들이 이후 정권에서도 마찬가지로 추진됐다는 점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2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국가비전 2030에 대한 비판은 ‘오른쪽’ 뿐만 아니라 ‘왼쪽’에서도 제기된 일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복지정책에 대한 철학의 문제다. 비전2030에서 복지정책은 정부가 재정을 담당하고 민간이 서비스를 담당하는 이원적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런 구조에서 복지를 포함한 사회정책은 정부가 세부내용을 책임지고 추진한다기 보다는 ‘사회적 자본’에 대해 투자를 한다는 개념으로 협소화됐다. 이를 통한 실질적 결과는 사회정책이 경제정책에 종속되고 복지서비스의 시장화를 초래하는 것이었다. 보육교사, 가사간병도우미, 중증장애인 활동도우미 등 공공서비스 노동자의 경우 불안정노동 상태가 개선되지 않고 방치돼 결국 ‘질 낮은 일자리’의 양산으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현실이 된 게 대표적이다.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복지에 대한 철학의 전환이 필요하고 제도적 측면에 있어서도 질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런 일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정책적 기틀을 잡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 놓아야 다음 정부가 이를 계승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연 부총리 후보자가 이를 이룰 수 있는 적임자인가를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동연 부총리 후보자는 이명박 정권 때 기획재정부 2차관을 맡았을 당시인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현실성 없는 복지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며 “재벌가 손자에게까지 정부가 보육비를 대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경제 관료로서 당연한 발언으로만 보기에는 지나치다.

복지 제도에 대한 철학적 전환의 필요성은 이미 ‘무상급식’이 최대 화두였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도 일부 이러한 인식이 반영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 관련 인사를 조망해보면 복지 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정책실장 인선의 경우도 그렇다. 심지어 사회수석의 경우 부동산정책과 도시개발 전문가이다. 당연히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모든 정책이 앞 순위를 차지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남은 인사에서 복지제도와 관련된 이러한 의문이 해소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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