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좀 둔한 것 맞습니다. 하지만 불법, 부당, 불의 이런 일에는 아주 예민합니다. 참지 않습니다. 지금은 후방에서 저지선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전면에 나서는 상황이 오면 불같은 문재인, 호랑이 문재인을 보게 될 것입니다” <2016.12.2 뉴스공장 중 문재인>

5월 9일 선거. 5월 10일 국회 로텐드 홀에서의 취임선서 후 인수위 없는 대통령직 개시. 그리고 5월 19일까지 불과 9일. 여기저기서 탄성과 한숨이 터져나왔다. 다만 한숨은 탄성이 하도 커서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만 같았던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의 4년보다 문재인 정부의 열흘이 더 길게 느껴지는 사람들의 고백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도대체 열흘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이제 열흘을 했을 뿐인 문재인 정부는 열일 중이다. 선거기간 중 했던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준비된 대통령이니, 든든한 대통령은 공약이 아니다. 또한 선거의 캐치프레이즈는 과장 광고처럼 딱히 믿으라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만 끌어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그것조차 충족시킨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지명을 직접 발표하기 위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 동안에는 그렇게도 칭찬에 인색했던 방송들 특히 태생적으로 문 대통령과 상극인 종편들조차 연일 문비어천가에 분주하다. 물론 생존을 위한 태세전환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있지도 않은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를 지어낼 때와는 전혀 다르다. 그저 대통령의 동선을 따라 기록만 읽어도 찬가가 완성된다. 이 엄청난 괴리감을 도대체 뭘로 설명을 할까.

어디 종편들뿐이겠는가. 대통령 부인의 호칭에 야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원칙(?)을 고집하는 진보언론들도 딱히 문비어천가 외기를 따라 하고 있다. 이쯤 되면 통합은 다 됐다. 요즘 언론들은 진보나 보수를 구분할 수 있는 변별점이 없다. 그저 아무 방송, 아무 기사나 클릭하면 문재인 칭송일 뿐이다. 가끔씩 존재감을 잃은 야당들이 공허한 악담을 중얼거리는 정도다.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제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5월 유족인 김소형 씨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바람에 할 일을 잃은 사람이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어용진보지식인을 선언한 유시민이다. 어용은커녕 기존 언론들에서 쏟아지는 문비어천가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다는 고백만 늘어놓을 뿐이다.

“제가 지난 3일간 일을 못했어요. 주말까지 책을 한 권 써야 되는데 10분 단위로 자꾸 뉴스를 클릭하게 되고.. 일이 안 돼요, 일이...” <유시민. 봉하마을에서>

그래 열흘이다. 아니 딱 한 사람이면 되는 것이었다. 대통령 딱 한 사람을 바꾸니 세상이 이처럼 달라지고 있다. 3년간 그렇게 해도 안 되던 세월호 의인들의 순직문제가 뚝딱 해결이 됐다. 죽음과 희생에도 천형처럼 따라붙었던 기간제 딱지가 속 후련하게 떨어졌다. 인천공항에 불쑥 찾아가서는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태어난 날에 아버지를 잃어야 했던 5.18둥이를 안아주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꼬맹이가 책가방에서 사인 받을 공책을 찾을 때까지 몸을 낮춰 기다려주는 인자한 대통령 할아버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여전히 나와는 상관없는 일들이지만 그렇게 변해가는, 사람 사는 세상으로 달려가는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꿈에서라도 보고 싶던 나라는 이랬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를 맞아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민문화제에 전시된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초상화 앞에서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고 있다.Ⓒ연합뉴스

요즘 ‘까까미’라는 말이 유행한다. 무슨 옹알이하는 아기 언어 같지만 '까도 까도 미담'이라는 의미로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마다 전해지는 미담이 하도 많아 생긴 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뉴스가 드라마, 예능을 압도한 것은 지난해 가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시민들은 뉴스에 빠져있다.

뉴스가 드라마와 예능을 압도한 것은 작년 가을부터지만 지금은 다르다. 언젠가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가 그런 현상 속에서 “절망과 좌절을 함께 전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뉴스는 마치 꿈처럼 희망과 기대를 준다. 우리는 비로소 중단되었던 사람 사는 세상으로의 행진에 다시 나서고 있다.

그의 친구, 시민들의 친구였던 노무현이 그렸던 바로 그 세상, 그가 멈춰야 했던 그 지점 어디쯤에선가 우리는 다시 문재인과 손을 잡고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왜 기쁜데도 자꾸 눈물이 나나 따져보니 그렇다. 그러고 보니 그가 떠난 8년이 바로 며칠 후다. 5월 23일.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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