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어른보다 훨씬 나은 초등학생 <SBS 스페셜> (5월 14일 방송)

SBS 스페셜 <섬진강 초딩들의 대선일기>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도 있지만 나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원래 민주주의는 그렇다. -1789.1.20. 조지 워싱턴’

서툰 글씨지만 연필로 꾹꾹 눌러쓴 9살 홍덕 군의 문장. 이것을 보고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 Best 프로그램은 이거구나. 그리고 하나 더. 애들이 어른들보다 낫다.

지난 14일 방송된 <SBS 스페셜- 섬진강 초딩들의 대선일기>는 초등학생들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대선 민심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마주하고 있는 섬진강 변에 자리 잡은 초등학교.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대선 민심을 들을 수 있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건 어른들에게 던진 초등학생들의 질문들이었다.

동현 군은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지지하는 대선 후보를 물은 뒤 “근데 왜 홍준표에요?”, “박근혜랑 안철수의 차이점이 뭐예요? 같은 돌직구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를 뽑았다는 외할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탄핵되니까 마음이 어땠어요?”라면서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저렇게 되니까 좀 안됐다”는 할머니의 말에 “왜요? 자기가 잘못한 건데?”라고 받아친 데 이어 최순실에게 모든 잘못을 돌리는 할머니에게 회심의 마지막 공격을 던졌다. “자기가 그 사람 믿어서 그런 건데요?” 와, 놀라운 수준이다.

SBS 스페셜 <섬진강 초딩들의 대선일기>

초등학생들의 순수하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이 어른들이 애써 감춰놓은 민낯을 드러나게 했다. 일종의 포장지를 벗겨낸 셈이다. 통찰력이라고 하기엔 너무 과할지 몰라도, 어른들은 쉽게 던지지 못했던 혹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오히려 표심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힘이, 그 질문들에 있었다. 에둘러 표현하는 것 없이 궁금한 것 그대로 물어보는 초등학생의 순수한 마음이 오히려 민심을 읽는 것에 도움이 됐다.

정치 드라마와 뉴스를 즐겨보는 9살 홍덕 군은 어른들을 놀라게 할 만할 명언들을 쏟아냈다. 홍덕 군이 “메르스, AI, 세월호 다 박근혜 때문”이라고 하자 친구가 “바이러스는 대통령 때문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홍덕 군은 “다 대책을 안 세웠잖아”라면서 친구의 말문을 막는 대답을 내놓았다. “대통령이 잘못하니까 국민이 쫓아내는 것”이 탄핵이며, 대통령의 자질은 “어떤 재난이나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라며 박근혜 정부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이 초등학생들이 “세월호 참사 때 화장하고 있었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질문할 기회를 줘도 선뜻 하지 못하는 청와대 기자단들보다 훨씬 낫다.

이 주의 Worst: 초짜의 과한 욕심은 늘 실패한다 <라디오스타>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MBC <라디오스타> 일일 스페셜 MC였던 강승윤의 경직된 질문톤은 의도된 것일까. 게스트 김범수는 “인공지능인 줄 알았다”고, MC 윤종신은 “무슨 보도 프로그램이에요?”라고 놀렸다. 잠시 후,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하이톤으로 어깨까지 들썩이며 질문을 하자 김범수는 “개인방송인 줄 알았다”고 놀렸다. “싸이형 나오신다길래 어셔나 저스틴 비버 데리고 나오실 줄 알았다”는 강승윤의 공격에 싸이는 “지금 멘트는 좀 강박인 것 같다”고 예리하게 지적했다.

강승윤의 자리에 앉는 MC는 늘 ‘깐족’ 담당이었다. 원조 신정환을 비롯해 유세윤, 규현까지 모두 그런 역할이었다. 그래서 강승윤이 더 압박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초반부터 강승윤은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처음부터 캐릭터 또는 톤을 인위적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이 과했다. 하지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도리어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이날 강승윤의 분량이자 역할은 질문하기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질문하는 톤이나 내용마저 게스트들의 공격을 받기 일쑤였다. 물론 스페셜 MC에게 베테랑 막내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섭외 당시 예능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규현도 처음엔 의구심이 많이 들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가수로서 전혀 보여주지 않은 의외성과 당당함이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일일 MC라도 제작진이 굳이 강승윤을 섭외한 이유를 납득시킬 만한 뭔가가 있어야 되는데, 강승윤은 그렇지 못했다. 어떠한 가능성이나 끼를 보여주지 못했다.

덕분에 “싸이의 미국병 고치는 데는 역시 양약이다” 같은 윤종신의 드립을 비롯, 세 형들의 깐족거림은 더 빛을 발했다. 세 형이 더욱 돈독한 호흡으로 게스트를 놀리는 사이, 강승윤은 형들과 점점 더 멀어져갔다. 강승윤이 방송 말미 출연 소감을 밝힐 때, 김구라의 몸이 한껏 윤종신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건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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