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는 박근혜 정권의 슬로건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 자체에 많은 것이 담겨있고 그 모든 게 분석 대상이지만, 놀라운 것은 박근혜 정부가 실제로 추진한 게 ‘최대의 비정상화와 개입(maximum abnormalization and engagement)’으로 귀결되었다는 거다. 가히 뉴 노멀, 아니 ‘뉴 애브노멀(new abnormal)’이었다.

갈 길 잃은 ‘비정상의 정상화’에 맞는 자리를 찾아주려면 오늘의 문재인 정권을 바라봐야 하지 않나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법무부 검찰국장과 서울지검장을 포함한 검찰 고위직들이 한데 모여 서로 돈 봉투를 주고 받았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법무부와 검찰에 감찰을 지시했다. 언론은 이를 사실상의 ‘수사 지시’로 해석하고 있다. 부적절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당사자들은 18일 재빨리 옷을 벗겠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열린 미·중·일·러 ·유럽연합 주요국 특사단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잘못한 사람이 물러나는 것까지는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청와대가 ‘돈의 출처’까지 언급하는 등 일종의 ‘발본색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검찰의 해명과 언론의 해설을 보면 당시 자리에서 오간 금일봉의 출처는 법무부의 특수활동비일 가능성이 높다. 특수활동비란 세상의 언어로 말하자면 지출 증빙이 필요 없는 돈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검찰이 비밀리에 진행해야 할 수사 등에 쓰기 위해 마련해놓은 예산일 것이다.

문제는 이 돈을 법무부 장관도 공석인 마당에 검찰 고위관계자들이 그냥 나눠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됐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특수활동비를 회식 자리에서 격려금조 등으로 나눠가지는 것은 ‘과거의 관행’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과거’에 벌어진 일이 아니므로 방점은 ‘관행’에 찍힌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특수활동비는 그 취지에 맞게 쓰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돈 봉투를 돌린 당사자들을 처벌하고 특수활동비의 지출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게 이 사건을 처리하는 적절한 방식인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이 자리에 있던 검사들이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특별수사본부 소속이었다는 거다. 이 시기는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해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나올 때이므로 돈 봉투를 주고받은 ‘맥락’에도 의구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봐주기 수사’와 ‘돈봉투’를 연결하면 ‘자정능력 상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즉,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문제의 원인을 ‘발본색원’한다는 것은 자정능력을 상실한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당위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과거 참여정부의 검찰 개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소 ‘나이브’한 인식을 가졌었다는 자기평가를 이미 내놓은 바 있다.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 본연의 역할을 다하게 하면 될 것으로 믿고 정치적 손해까지 감수했는데 정권이 바뀌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더라는 것이다.

바로 이 경험이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검찰 개혁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번 사건은 결국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수사권 분리 등을 통해 검찰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나누는 방향으로의 검찰 개혁이 가속화될 가능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닌 그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는 징검다리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왼쪽)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 (연합뉴스)

‘비정상의 정상화’ 기조는 18일 공정거래위원장과 보훈처장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 각각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내정하고 피우진 예비역 중령을 임명했다.

피우진 예비역 중령의 경우 충분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군의 비합리적 내부 논리 때문에 불이익을 본 대표적 사례이다. 국가보훈처는 보수정권에서 이념적 선전의 도구로 변질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군사원호(軍事援護)’를 담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반대하는 등의 소모적 논란으로 일관한 박승춘 전 보훈처장의 사표를 1호로 수리하고 그 자리에 피우진 중령을 앉힌 것은 국가보훈처의 본래적 역할을 되찾아주겠다는 의지로 느껴진다.

김상조 교수는 ‘삼성 저격수’로 불리며 재벌개혁의 방향과 대안을 오랫동안 고민해온 인사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일보는 18일 지면 기사에서 김상조 교수가 내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를 언급하며 “공정한 시장 질서를 재확립해 한국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겠다”고 한 걸 두고 “재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안도 반(半) 우려 반’이었다”고 보도했다. 재벌개혁보다 경제활력을 먼저 언급한 게 의외라는 반응이다.

김상조 교수의 재벌개혁론은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는 주주자본주의의 논리로 보자면 매우 당연한 것이다. 김상조 교수를 필두로 하는 일부 재벌개혁론자들의 주장은 재벌의 비생산적 의사결정 구조와 이에 따른 비합리적 행태가 시장원리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조 교수의 지론으로 보면 재벌을 개혁하는 게 곧 한국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는 방법인 셈이다. 그러니 김상조 교수의 위 발언은 의외라고 할 것이 아니고 놀랄 필요도 없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는 1981년 4월에 경제기획원 산하 기관으로 발족했다. 당시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던 안정론자들은 박정희 정권의 중화학부문 과잉중복투자가 재벌의 비합리적 행태의 원인이 되고 있고 성장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이 대목만 놓고 보자면 김상조 교수의 내정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본래적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적의 선택지인 셈이다.

대기업 중심의 시장질서에서 주주자본주의적 원리를 강화하는 것 역시 ‘비정상의 정상화’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는 단지 이를 통해서만 해결되지는 않는다. 구체적으로는 분배의 강화가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을 통해 사회복지서비스 일자리 확충을 약속했고 이는 곧 국회에서 논의될 ‘일자리 추경’에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복지제도 전반에 대한 철학의 전환까지도 모색될 필요가 있다. 눈앞의 개혁 과제를 미루지 않되 시선은 언제나 먼 곳을 응시하는 통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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