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해마다 5월 가정의 달이 되면 <휴먼다큐 사랑> 특집 시리즈를 방영해왔다. 2006년 시한부 삶을 사는 영란 씨와 그녀의 1분 대기조였던 남편 창원씨의 순애보를 담은 <너는 내운명>, 2007년 <엄지 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2009년 <풀빵엄마>, 2011년 <진실이 엄마> 등을 통해 2016년까지 45편의 다큐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다. 2006년부터 이제 2017년, 해마다 같은 이름으로 돌아온 <휴먼다큐 사랑>이지만, 이 다큐를 통해 조명하고자 하는 '가족'의 의미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며 해를 거듭하며 다른 감동을 전하며 다른 질문을 던진다.

두 편에 걸쳐 방영되었던 <진실이 엄마>를 통해 고 최진실 씨의 자녀 환희와 준희는 사춘기 청소년으로 자라났고, <너는 내 운명>의 1분 대기조였던 창원씨는 이제 홀로 아내를 그리며 살아간다. 2009년에는 로봇다리 세진이를 통해 '장애우'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2014년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삼혜원에서 생활하는 듬직이를 통해 사랑과 가족의 또 다른 의미를 짚었다.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신해철 씨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2015년의 사랑의 의미를 묻고, 역시나 같은 해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의 일상을 통해 더 큰 가족으로서의 국가의 의미에 대해 물음표를 남긴다. 2016년에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 가족의 그늘을 <러브 미 텐더>를 통해, 탈북자의 문제를 <내딸 미향이> 등으로 ‘가족’에 대한 질문의 넓이와 깊이를 더해간다.

그해의 <휴먼다큐 사랑>을 보면 그 시대 우리 사회 '가족'의 정의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인지할 수 있게 되듯, 지난 10여 간 <휴먼다큐 사랑>은 우리 사회 가족의 바로미터로 자리매김해 왔다.

고아 수출국의 민낯, 신성혁이 된 아담 크랩서

2017 가정의달 특집 휴먼다큐 사랑 ‘나의 이름은 신성혁’ 편 ⒸMBC

그렇다면 2017년 <휴먼다큐 사랑>에서 보여진 이 시대의 가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첫 테이프를 끊은 건, 바로 <나의 이름은 신성혁>이다. 5월 8일, 15일 2부에 걸쳐 방영된 이 다큐는 '고아 수출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밝힌다.

고아 수출국. 우리나라는 1956년부터 1998년까지 무려 38년간 해외 입양 1위의 국가였다. 심지어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고아 수출국'이었다. 그 중에서도 주로 미국으로의 고아 수출이 대부분이었다. 80년부터 98년까지의 미국 이민 자료를 보면 미국의 전체 고아 입양 대상자 중 한국은 36.8%, 즉 미국 고아 입양자 세 명 중 한 명이 한국인이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 간 아이들은 다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이 되었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가족의 달 첫 번째 <휴먼다큐 사랑>이 밝힌다.

그의 이름은 신성혁,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한국어로 말하는 것이 어눌하다. 오히려 40년 동안 써온 아담 크랩서란 이름이 입에 익다. 당연히 그의 첫 번째 언어는 영어다. 1부에서 만난 그는 이민국의 재판 과정에 있다. 심지어 결국 그 재판에서 져서 수용소에서 건강을 잃어가며 하루하루 한국으로의 송환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다.

2017 가정의달 특집 휴먼다큐 사랑 ‘나의 이름은 신성혁’ 편 ⒸMBC

사십년 전 그의 어머니는 침을 잘못 맞아 못 쓰는 다리를 끌고 두 아이를 먹여 살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가기만 하면 굶지 않고 잘살 수 있다는 꿈의 나라 미국으로 두 아이와 생이별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대와 달리, 아이들의 미국 생활은 지하실에서 숟가락이나 벨트로 맞는 학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파양으로 인해, 정부 보조금을 받고 아이들을 못 박는 기계로 쏘며 13명의 아이들을 더 심하게 학대한 새 부모로의 이전이었다. 결국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그 집을 찾아올 때까지.

하지만 학대의 끝은 아메리칸 드림이 시작이 아니었다. 그래도 부모라고 호의적으로 증언을 했던 그를, 양부모는 거리로 내쫓았다. 16살 어린 나이에 쓰레기통에서 남이 버린 버거를 주워 먹으며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입양 당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성경책 등을 가지러 몰래 양부모의 집에 들어갔다 신고 되는 바람에 25개월의 교도소 생활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이 '범죄'는 그를 '추방'할 유효한 조건이 되었다.

왜 미국에서 십여 년을 넘게 살았는데 그는 미국인이 될 수 없었을까? 그건 바로 '고아 수출'에만 연연한 채, 그들의 권리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우리 정부 때문이었다. 한국 정부는 고아만 수출했지, 그들이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권한에는 눈을 감았다. 그래서 미국으로 온 한국의 고아들은 18살 이전에 양부모가 시민권을 취득시켜 줘야만 미국 시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담처럼 18살이 되기 전에 쫓겨난 아이들, 혹은 설사 18살이 되더라도 양부모가 동의하지 않는 아이들, 심지어 교도소라도 다녀오기라도 했다면 영원히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

아들의 귀향, 뒤늦은 모성

2017 가정의달 특집 휴먼다큐 사랑 ‘나의 이름은 신성혁’ 편 ⒸMBC

냉정한 재판 그리고 한국으로의 송환을 인정하기 전에는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수용소 생활, 결국 아담은 신성혁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조차 어려운 미국인, 당연히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그는 졸지에 한국인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에겐 다리가 불편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2부는 그 어머니와 이젠 신성혁이 된 아담의 40년만의 모자 상봉을 그려낸다. 40년 만에 돌아올 아들을 위해 며칠 동안 음식 준비를 하던 어머니는 그만 아들을 보자 눈물을 터트리다 못해 정신줄을 놓아 버린다. 아들이 왔다는 것 외엔 잠시 기억을 잃을 정도이다. 대화는 안 통하지만 지난 40년간 늘 학대를 당하던 아들은 어머니의 눈물만으로 오랜 외로움이 풀려간다. 그러나 다리를 못 쓰는 어머니, 마찬가지로 몸이 성치 않은 새 아버지에게 자신을 의탁할 수 없는 아들은 서울로 올라와 귀환 입양아들을 위한 시설로 들어간다.

2017 가정의달 특집 휴먼다큐 사랑 ‘나의 이름은 신성혁’ 편 ⒸMBC

그러나 한국 역시 그에게 좀처럼 '정착'을 허용치 않는다. 주민등록증은 주어졌지만 오물이 나오는 지하방과 쉽게 늘지 않는 한국어, 그리고 그보다 더 어려운 밥벌이가 그를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여긴 그를 한없이 외롭게만 했던 미국이 아니다. 이제 그의 생일날 바리바리 음식을 싸들고 그를 찾아오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휴먼다큐 사랑>은 고아 수출국의 오명을 40년 생애에 고스란히 새긴 신성혁 씨와 그 어머니의 뒤늦은 모성을 2017년의 가족, 그 자화상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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