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북한이 문제다. 14일 북한이 발사한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과 관련한 사실들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한국 정부는 상당히 어려운 시험을 눈앞에 두게 됐다.

보수언론은 이 미사일을 ‘준(準)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이번 시험 결과만 놓고 보면 ICBM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지만 엔진을 2~3개 묶는 등의 방식으로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사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과 노동신문 등의 북한 관영 언론도 비슷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

ICBM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북한은 이번에도 이 기술을 확보했다는 요지의 주장을 내놨지만 전문가들은 사실이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이번 시험으로 확보했을 기술의 최대치는 섭씨 5천도 이상을 견디는 수준인데, 본격적인 ICBM의 경우는 최고 섭씨 8천도 정도의 온도를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을 확보했든 아니든 북한이 내놓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는 게 문제다. 미국과 주변국들의 여러 압박과 압력에도 불구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이게 ‘벼랑 끝 전술’의 성공이 될지 미국의 선제타격이라는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14일 오전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에서 열린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그 와중에 다행스러운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어찌됐건 미국과 북한의 비공식 접촉이 계속되고 있는 건 사실이라는 거다. 지난 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미국의 전직 관료들과 북한 당국자들이 접촉한 이른바 1.5트랙 대화가 대표적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대화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여건이 되면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여러 경로를 통해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비핵화와 정상회담을 거론한 것인데, 이런 구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최종적으로는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이루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물론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전쟁에 준하는 파국적 결과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서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에 보조가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구상에 대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1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에 대해 “특정한 상황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특정한 상황’이란 이를테면 핵동결과 같은 가시적 조치를 언급한 것으로 이해된다. 즉, 미국은 한국 정부가 제재 국면에서 성급하게 대화로 돌아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다행스러움의 두 번째 측면이 등장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과거의 햇볕정책을 답습하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다. 15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데, 한미 공조는 확실하게 기대해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내가 바로 현장에 있던 사람인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과는 촉이 다르다. 조금 센 측면이 있다”고 발언했다. 정세현 전 장관을 정부 당국자로 볼 수는 없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사로 본다면 이런 발언들은 정권 내의 대략적인 기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5일 방한한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16일 정의용 전 주제네바 대사를 만나기로 한 것은 한국과 미국이 대북정책에 있어서 보조를 맞추려는 행보의 일환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러한 작업의 1차적인 목표는 6월말로 예상되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북정책에 관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10일 밤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1월 29일 사우디 국왕과 통화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반대로 우려되는 점도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의 정책행보에 엇박자가 나는 경우다. 신뢰가 붕괴한 상태에서 대북문제의 핵심 키를 미국이 주도하게 되는 경우 자칫 잘못하면 ‘통미봉남’의 현실화가 될 수 있다는 거다. 북한은 이번 국면에서 미국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어쨌든 대북정책에 있어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적 자율성이 최대치로 확보되려면 국내 정치가 뒷받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안보 관련 당국자의 인선을 늦추고 있는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작용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특히 권한이 강력해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누가 임명되느냐가 중요해진다.

조선일보는 이미 견제구를 날리는 모양새다. 조선일보는 16일 지면에 실린 기사에서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국가안보실장 역할에서 외교를 강조할 경우 정의용 씨가, 통일을 강조할 경우 문정인 씨가 유력하다”고 전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외교·안보라인에 盧정부때 자주파들도 기용될 듯>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노무현 정부 때 이른바 ‘자주파’로 분류됐던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 비서관과 서주석 전 외교안보수석도 주목되는 인물”이라고 썼다.

조선일보가 대북대화론에 극단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안보실장에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등이 임명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일어날 수 있다는 예고를 한 셈이다. 문재인 정권이 대북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보수언론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이런 인선이 정권 초기의 첫 걸음을 ‘색깔론’으로 시작하게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무적 고려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앞서 조선일보가 언급한 박선원 전 비서관의 경우 국가안보실 1차장을 맡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게 주요 언론의 공통된 전망이다. 박선원 전 비서관은 과거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선체결함이나 아군 기뢰 폭발 등일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어찌됐든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취임 직후 대다수 국민의 호감을 사는 행보로 얻은 안정적 스탠스가 흔들릴 수 있는 첫 번째 시험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덕에 바로 눈앞에 두게 된 셈이다. 이 첫 번째 시험을 잘 넘겨야 임기 내에 북핵 문제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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