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을 기억하는 남녀가 만났다. 절대 이해하거나 인정할 수 없었던 그 지독한 기억의 파편들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운명이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이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전생을 공유할 수 있는 이와 현실에서 만나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손바닥으로 확인한 사랑;
유령의 서글픈 사진, 전생의 기억과 마주한 두 남녀의 사랑 이제 시작이다

서글피 우는 설이를 안아주는 세주. 이런 모습을 보고 씁쓸하게 자리를 피하는 진오. 먼저 사랑했지만 짝사랑에 머물고 만 진오는 유령이 되어 떠돌면서도 잊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주와 설이는 그렇게 80년이라는 시간, 전생과 환생이라는 물리적인 시간까지도 뛰어넘어 사랑을 하게 되었다.

세주가 연재를 중단한 이유는 설이도 전생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쓰는 소설이 실제 80년 전에 살았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소설이 설이의 기억을 끄집어내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설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던 세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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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디엠의 마담 역시 독립 운동에 가담한 인물이다. 그곳은 독립 운동을 위한 핵심적인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오직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인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의미를 담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마담은 수연을 여장(본래 여자이지만 신분을 감추기 위해 남장을 하고 산)시키며 한 이야기는 마담 역시 독립 운동에 가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할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설이는 세주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했던 발언, 전생에 총으로 사람을 죽인 사실을 엄마에게 고백한 어린 설이를 엄마는 무당인 왕방울에게 데려갔다. 혹시나 어린 딸이 신기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기가 아닌 전생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냐는 무당의 말에 엄마는 놀랄 수밖에 없다.

현생에서 설이의 엄마가 된 마담은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그렇게 고통스러웠을까? 마담 역시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딸로 설이가 태어났다. 이 상황에서 추론 가능한 것은 그 마담이 과거의 수연에게 특별한 지령을 내리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했을 가능성이다. 과거의 악연이 부모 자식의 연으로 태어나게 한다는 왕방울의 발언은 복선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수연이 마담에 의해 쏴서는 안 되는 이를 쏘고 말았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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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은 그렇게 보면 독립운동가가 아닌 일본을 돕던 인물로 볼 수 있다. 마담으로 인해 설이의 전생인 수연은 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물인 신율과 서휘영 중 하나를 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지독한 운명은 그렇게 독립운동을 와해시키고 모든 것을 무너지게 만든다. 그렇게 전생의 삶을 억울하게 끝낸 이들은 80년이 지나 다시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다.

'시카고 타자기'라는 소설은 제대로 끝내지 못한 80년 전 자신들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한 시작이다. 유령이 되어 과거 휘영이 쓰던 타자기에 빙의되어 살던 율은 그렇게 환생한 세주에게 갔다. 그리고 운명처럼 전달자는 수연의 환생인 설이가 대신하면서 이들의 필연적 운명은 다시 시작될 수 있었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일본에 맞서 싸우고 싶었던 수연은 독립군이 되고 싶었다. 조금은 무모할 수 있는 그녀의 행동에 율은 당황했지만 독립군을 이끌고 있던 수장인 휘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여자 저격수는 일본군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립군이 된 수연의 첫 임무. 걱정만 가득했던 휘영은 도주로에서 수연을 기다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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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했지만, 누구보다 수연을 아끼고 사랑했던 휘영에게는 그녀의 생존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비록 일본군에 쫓기는 신세이기는 했지만 수연은 임무를 완수하고 도주하고 있었다. 쫓기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키스를 하던 수연. 하지만 그 입맞춤은 단순히 위장을 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수연이 찾고자 했던 것은 자신을 구해주었던 복면을 쓴 남자였다.

그렇게 수연은 긴박한 상황에서 그 사람을 찾았다. 율이는 아무리 가려도 그 기억과 일치하지 않았지만, 휘영은 입을 가리는 순간 기억에 또렷하게 남겨져 있던 복면 쓴 남자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애써 수연의 말을 부정하기는 했지만 휘영 역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수연이 안전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독립군의 딸 수연을 지켜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율이와 휘영은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췄던 기억이 되살려지며 그들이 나눈 키스는 그저 일본군을 피하기 위한 위장이 아닌 진심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표출할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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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가 자신의 소설을 읽고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연재까지 멈췄다. 하지만 태민의 어머니가 공격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진오의 제안을 받아 연재 될 소설을 설이가 읽게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 표정만 봐도 그녀가 소설을 통해 전생을 기억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설이는 소설을 통해 전생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위기가 될 수 있었던 공격을 받아낸 세주는 진오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설이와 함께 서울 여행을 시작한다. 80년 전 독립을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던 독립군들.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숨져야 했던 수많은 이들을 대신한 유령이 된 진오는 그렇게 그들과 함께 독립된 대한민국을 직접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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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만 하던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던 진오는 찍히지도 않는 사진을 부탁한다. 그 순간의 기억을 평생 간직하고 싶었던 유령의 부탁은 그래서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었다. 더는 숨길 수도 없는 감정. 전생의 기억을 떨치지 못하고 환생 후에도 힘겨워하는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마무리하지 못한 전생의 삶은 소설 '시카고 타자기'를 통해 새롭게 쓰여진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은 기억하지 못한 그들의 마지막을 기억하고자 한다. 누군가는 가장 사랑했던 이에게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 지독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한 번 시작한 소설은 끝을 내야 한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설이의 어머니는 그 모든 기억을 이끌 핵심적인 인물로 다가올 듯하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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