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빛이 내리쬐던 4월 30일 보신각에서 열린 이주노동자메이데이 집회에는 여느 때처럼 네팔, 필리핀,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했다. 특히 이날 집회에는 대만에서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는 ‘대만 국제노동자협회(TIWA)’ (이하 TIWA) 활동가들도 참가했는데 챙슈렌 비서장이 직접 국제연대 발언을 했고 큰 박수를 받았다.

“오늘 한국의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할 수 있어서 반갑다. 지금 이 시간 대만에서도 이주노동자 노동절 집회가 열리고 있다. 고용허가제 철폐, 숙식비 강제 징수 지침 철폐 등은 대만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와 똑같다. 어느 나라의 고용주든 서로의 수법을 배워 노동자를 착취하고, 어느 나라의 노동자든 똑같은 처지에 있다. 이주노동자와 본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서 투쟁해야 한다.”

TIWA 활동가들은 이주노조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여러 노동조합들과의 국제연대투쟁을 활발히 하고 있다. 공장폐쇄와 정리해고 등에 맞서 오랫동안 투쟁중인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동지들이 하이디스 대주주인 대만 이잉크사를 상대로 원정투쟁을 위해 대만을 방문했을 때에도 TIWA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하면서 소중한 국제연대의 고리를 만들었다.

5월 11일 TIWA 활동가들이 이주노조 사무실을 방문했다. TIWA 활동가들은 오전에 하이디스 노조 동지들과 마석 모란공원의 열사묘역을 참배하고 왔다고 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1층 현관에는 공격적인 직장폐쇄로 인해 지난 4월 18일 스스로 세상을 떠난 갑을오토텍 조합원 故 김종중 동지의 분향소도 마련이 되어있었는데, TIWA 활동가들이 조용히 묵념을 올리고 하이디스 동지들에게 꼬깃꼬깃 접어둔 투쟁기금을 전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편이 찡했다.

5월 11일 대만 국제노동자협회(TIWA) 챙슈렌 비서장을 비롯한 활동가 세 명이 이주노조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주노조 사무실 한편에 있는 테이블에서 커피 몇 잔과 함께 시작된 간담회는 예정된 한 시간을 훌쩍 넘겨 두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만큼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긴 시간동안 쉴 새 없이 중국어와 한국어를 오고가며 통역을 해준 대만 유학생 왕야팡 님의 수고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이야기의 시작은 지난번에 미디어스에 기고했던 <외국인력정책 국제포럼(기사 링크)와 관련된 내용과 함께 대만과 한국의 고용허가제도가 어떻게 비슷하고 또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보다 10년 일찍 1992년에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대만에는 주로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인접국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러 오고 있다. 이주노동자 고용 업종은 건설업, 제조업, 어업분야를 망라하며 특히 노인 돌봄 서비스 일자리에 이주노동자들이 상당히 많다. 대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3년 동안 4번을 연장하여 최대 12년까지 체류를 하면서 일할 수 있고, 가사노동자의 경우 마지막 사업장에서 2년을 더 연장하여 최대 14년까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주권이나 귀화신청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고용허가제도 최초 4년10개월 이후 사업장을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이주노동자의 경우 3개월 출국 이후에 다시 고용주의 허가를 받고 재입국하여 4년 10개월을 더 연장할 수 있다. 총합 9년 8개월을 일할 수 있는 성실근로자재입국제도가 한국에도 존재하지만 역시 영주권이나 귀화신청은 불가능하다. 즉, 한국정부나 대만정부나 고용허가제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단기순환제도를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주노동자 도입과정에서 브로커들의 어마어마한 수수료 중개에 있다. 실제 사례를 물어보니 대만에 오기 위해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A씨가 인도네시아 브로커B와 대만브로커B에게 각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B와 C의 수수료비율은 3:7정도가 평균적이라고 하고 그 총합은 한화로 370만 원에 달한다. 대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이 80여만 원 정도이고 돌봄 이주노동자의 경우 60만 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A씨가 대만에 이주노동을 하러 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브로커 B와 C에게 빚을 질 수밖에 없다. 매달 힘들게 일해 평균적으로 20만 원 정도를 브로커 B와 C에게 계속 보내주고 있는 상황에서 A씨가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대만 고용허가제도의 현재라고 할 수 있다.

간담회 도중 대만 선원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례도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매우 충격적이었다. 어업 고용형태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대만 현지에서 이주노동자 선원을 고용하는 경우 당연히 대만 법을 적용받아서 최저임금, 산업재해 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악덕 고용주들의 경우 대만어선을 대만 국경 밖으로 이동한 뒤 외국에서 이주노동자 선원들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법적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대만 국제노동자협회(TIWA) 챙슈렌 비서장을 비롯한 활동가 세 명이 이주노조 사무실을 방문해 이주노동자 지지 엽서를 작성하고 있다.

대만과 한국의 고용허가제 문제점을 이야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모색으로 주제가 넘어갔다. 대만에는 아직 이주노동자들이 독자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한 상황이다. TIWA에서는 한국에서 이주노조가 최초로 합법화된 소식을 접하고 대만에서의 이주노동자 조직화를 고민하는 차원에서 앞으로 이주노조와 국제교류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TIWA에서는 2년에 한 번씩 대규모 이주노동자 행진을 조직하고 있고, 2003년에 처음 열린 행진의 슬로건이 “대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노동조건이 하락하면 대만노동자의 노동조건도 함께 하락한다. 함께 투쟁하자”였다.

대회 슬로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대만 정부 역시 이주노동자들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대만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거나 노동조건이 하락한다는 식의 악성 이데올로기 선전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대만 자본가들도 대만 노동자들이 저임금 문제로 투쟁을 하면 이주노동자를 더 늘리거나 차라리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 사이의 이간질도 서슴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TIWA 동지들과 이주노조 동지들은 의기투합해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향상되어야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향상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민주노총이나 대만노총 정주노동자들을 설득하고 공동투쟁의 전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적극 공감하였다.

시간관계상 못다 한 이야기는 7월에 TIWA 활동가들이 다시 한국에 방문하였을 때 간담회 자리를 다시 만드는 것을 약속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TIWA 활동가들은 대만 이주노동자 행진 때 사용한 머리띠와 유인물과 TIWA 소개 DVD 등을 이주노조에 선물했고 그 답례로 이주노조 조끼와 손피켓 등을 전달하였다. 끝으로 한국과 대만에서 이주노동자를 억압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철폐하고 노동허가제를 쟁취하자는 손피켓을 들고 함께 투쟁을 외쳤다.

오늘의 추천영상은 2015년 12월 13일 대만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행진 “돌봄의 정의” 행진 영상이다. 지난 4월 30일 TIWA 할동가들이 이주메이데이 집회에 참여한 것처럼 조만간 이주노조에서도 대만 이주노동자 행진에 국제연대 할 수 있는 투쟁을 기대해본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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