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잠을 통 이루지 못하고 밤을 새버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선 전국 각지에서 1107만 표의 사전투표함을 지키는 시민들은 너무도 당연하고, 한번이라도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이번 대선이 갖는 의미를 잘 알기에 그 간절함에 자다가도 깨어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궐선거이기 때문에 저녁 8시까지 두 시간 더 투표시간이 연장되는 바람에 마찬가지로 당선자 윤곽은 평소보다 늦춰질 수밖에 없으니 전날부터 잠을 뒤척인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래저래 참 피곤한 하루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쯤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어느 때보다 추웠던 겨울을 추운 줄도 모르고, 심지어 겨울인 줄도 모르고 지나야 했던 촛불의 계절. 그 계절을 뚫고나온 사람들이라면 며칠 고생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켜고 있다. Ⓒ연합뉴스

진짜 중요한 건 촛불대선의 결말은 촛불정부여야 한다는 것이고, 그 광화문광장의 대통령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 봄이 오는 한 잊을 수 없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굴욕적인 한일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사드를 반대할 수도 있는 당당한 대통령이어야 한다. 온 나라의 물줄기를 썩게 만든 4대강의 비리와 부정을 파헤칠 용기 있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것 하나도 쉬운 것 없다.

5월 9일은 그런 모든 일들을 해나갈 새 정부의 대통령을 가리는 날인 동시에 오월의 아픔으로 접어드는 날이기도 하다. 노래를 빼앗긴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 8년 전 고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날 23일도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촛불정부의 광장대통령이라면, 빼앗긴 광주의 노래도 되찾고 하면 노무현 대통령도 그 깊은 주름살이 다소 풀리지 않겠는가. “숨을 쉬는 것조차 아팠던 시간”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나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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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대선 결과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대통령 선거가 처음도 아니지만 이번처럼 간절한 적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다. 4.19 때와 다르게, 87년 6월 항쟁과도 다르게 이번에는 반드시 민주정부를 세워 시민혁명을 완성해야 한다. 죽 쒀서 개주던 시절을 다시 겪을 수는 없다.

대선전 초기, 어떤 후보들 진영에서는 서로가 정권교체를 주장했다. 사실 유권자들도 조금은 헷갈렸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정권교체인 거지? 해답은 매우 단순하고도 명쾌하다. 국민이 집권해야 정권교체다. 왜냐하면 헌법 1조 1항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난해 11월 2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총파업 총력투쟁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성과퇴출제 중단과 박근혜 대통령 하야 등을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선거에 자주 등장하던 문장이 있다. ‘더 절박한 쪽이 이긴다’ 과연 누가 가장 절박했을까. 사실은 후보들보다 시민들이 더 절박했다. 75%를 넘긴 재외국민투표만 봐도 알 수 있다. 1분도 걸리지 않는 투표를 위해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모습들이었다.

그 열기는 그대로 국내로 점화되어 1100만 명이나 사전투표에 참여하는 기세를 쌓았다. 놀러가기 때문에 한 것도 있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긴 황금연휴에도 집에만 있어도 사전투표를 했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투표를 하고 싶었다는 사람들. 이구동성 절박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 마음들이 모아진 1100표를 품은 사전투표함은 정권교체의 확실한 담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이게 나라냐' 울부짖던 그때 우리를 향해 '이게 나라다' 대답할 때가 온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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