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용수를 닮았다. 계속 그의 표현대로 '찌질하게' 굴었다. 공은 작가와 배우, 스태프들에게 돌리고, 못난 건 다 자신의 탓이라고 했다. 연출도 훌륭했다며 아무리 칭찬을 해도 듣지 않았다. 평소 성격이 그렇게 겸손하냐고 물었더니 "겸손이 아니라, 솔직한 것"이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용수만큼 박식했고, 자신의 색이 뚜렷했다. 드라마에 대한 자부심 만큼은 숨기지 않았다. 올해 나온 드라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마왕>이라고 밝히면서도, <얼렁뚱땅 흥신소>는 <마왕>만큼이나 KBS 드라마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마지막 방송이 나가는 27일 오후 3시 KBS 별관 드라마팀에서 <얼렁뚱땅 흥신소>를 만든 함영훈 PD를 만났다. 앞서 말한 용수는 <얼렁뚱땅 흥신소>에서 류승수 역을 말한다.

▲ <얼렁뚱한 흥신소>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함영훈PD. 끝까지 사진촬영을 거부하며 이날 사진을 쓰라고 일러줬다. 마지막회 방송이 나가는 날. 현재는 얼굴이 반쪽으로 줄어들어 있다.

- 15회 방송에서 박무열(이민기 분)이 "멜로가 없어, 멜로가"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의도적으로 배치했나?

"작가가 대본에 쓴 내용이다. 나는 그냥 그대로 찍었다(웃음). 12회분까지는 촬영을 하면서 작가와 대본에 대한 회의를 많이 했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다. 멜로가 없다는 게 우리 드라마 특징이 아닌가. 그런 대사들이 바로 <얼렁뚱땅 흥신소>의 재미다."

- 아무리 멜로가 없다지만 너무하다. 은재랑 무열이 뽀뽀라도 시켜줘야 도리 아닌가.

"마지막에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간단하게 한다."

- 드라마가 후반부로 가도 평정심을 놓치 않는 듯하다. 후반부로 가도 내용이 어그러지지 않는다.

"내 입장에서는 감사한 말이지만 사실 그게 아니다. 뒤로 갈수록 너무 부끄러운 장면이 많다. 10회를 넘어가면 주인공들의 히스토리가 잘 표현되어야 하는데 거기서 공을 들여 만들지 못했다. 드라마는 대사만이 아니라 드라마 안에서 느껴지는 정서, 인간관계 등이 느껴져야 하는데 디테일이 부족했다."

- 소리로 웃기는 경향이 있다. 음향효과를 잘 이용한다.

"이번에 같이 작업을 한 사람들이 나의 예전 작품에서도 같이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라 호흡이 잘 맞았다. 매우 뛰어난 팀이라 음향에 관한 아이디어를 많이 줬다. 작가도 대본에 그런 것들을 많이 살려뒀다. 예를 들어 용수가 냉장고 문을 열고 있는데 은재가 뭔가를 고백하는 장면이 있었다. 심각해지려는 찰나 냉장고에서 '삑삑'소리가 난다. 그런것도 다 대본에 있었다."

- 음악도 반응이 좋다. OST 좀 팔렸나?

"얼마나 팔렸는지 그런 건 나도 모른다. 음악의 경우 대본이 5~6개쯤 나왔을 때 음악 팀에 주문한게 따로 있었다. 사전에 나온 대본을 보니 집시풍이 어울릴 것 같았다. 집시음악은 신나는 노래는 정말 신나고, 슬픈 노래는 정말 슬프게 표현되어 있지 않나. 고급스러운 느낌은 아니지만 독특한 특색이 있어서 이 드라마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 특별한 향유계층은 없지만 대중성이 충분한 음악이고 모험, 탐험, 몰려다니는 분위기 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퀄리티가 아주 만족스럽다."

- 이승환도 참여했다.

"마지막에 어떻게 알았는지 이승환 씨 측이 먼저 제의가 들어왔다. 첫방송 때 직전에야 겨우 만들어졌다. 처음 그 노래가 방송으로 나갈 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막판에는 이승환 씨가 출연의사까지 밝혔다. 나도 아이디어를 짜내서 출연시켜주고 싶었으나 결국 포기했다. 워낙 4명이 중심이 되는 드라마인데다가 마지막이라 지쳐있어서…(웃음)."

- 번외편중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가?

"무열이가 후크선장이 되는 '무열이의 꿈', 10부 '만약에', 출연자들이 모두 나오는 '잊혀진 사람들'편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 요즘 드라마에서는 드물게 대본이 다 나온 후 제작에 들어갔다. 장단점이 있나?

"단점은 없다. 장점 뿐이다. 연기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 연출을 하면서 각 연기자들에게 따로 한 주문이 있다면.

"디테일하게는 많았지만, 크게는 없다. 일단 배우에게 맡기는 스타일이다. 드라마 전체적으로는 내가 보겠지만, 역할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배우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씬의 표현방식을 놓고 의견이 서로 다를 때 10에 7은 배우의 의견을 따른다. 연기에 대해 따로 주문했다기 보다는 나는 연기자들끼리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4명이 나오는 장면이 전체의 80~9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잘 맞아야 한다. 현장에서도 즐거워야 한다. 서로 잘 놀아야 한다. 캐스팅 할 때도 서로 잘 맞을것 같은지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은 촬영장 분위기가 산만해질 정도로 서로 잘 맞는다."

▲ 10월 1일 열린 <얼렁뚱땅 흥신소> 제작발표회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박연선 작가다.
- 동굴세트는 약간 조잡했다. 특히 15회에서 그 벽에 있는 퍼즐을 맞추는 장면은 이상하더라.

"동굴세트는 영화세트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회사에 맡겼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딱 하나 퍼즐장면만 KBS에서 만들었는데…. 아마 연출이 부족해서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내 잘못이다. 사실 제작비도 많이 들고, 시간도 없어서 그렇게 밖에 못 만들었다."

- 예지원이 물에 빠지는 장면이 나왔다. 혹시 뜨거운 물이었나?

"지적받을 줄 알았다. 처음에는 연기가 안나다가, 나중에는 김이 난다는 걸 안다. 여배우를 차가운 물에 들어가게 하기는 싫고, 중요한 장면이라 찍긴 꼭 찍어야 했다. 비난을 감수하고 만든 장면이다."

- 그 많은 대사들. 도대체 애드립인가? 대본인가?

"애드립이 매우 많다. 내가 요청할 때도 있고, 내버려두면 계속 나온다. 특히 예지원 씨 정말 잘 한다. 서로들 워낙 친하니까 척척 나오는 듯하다. 나중에는 내가 어디서 끊어야 할지 몰랐다."

- 광고가 안 붙었다. 회사에서 압력은 없었나?

"드라마 만들면서 돈도 못 벌고 쓰기만 하다니, 징계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나한테는 아직 아무말도 안했다. 광고가 적을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안 붙을 줄은 몰랐다. <얼렁뚱땅 흥신소>전에 나왔던 드라마들도 광고가 적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억울하거나 분한 마음은 전혀 없다. 담담하다."

▲ 11월 20일 방송된 KBS <얼렁뚱땅 흥신소>의 한장면이다. 번외편 '잊혀진 사람들'에 나왔던 장면으로 함영훈 PD가 가장 좋아하는 번외편 중 하나로 뽑았다.
- 제작하면서 참고한 작품이 있나?

"작가가 몇개 일러줘서 보긴 했다. 하지만 어떤 스타일로 만들겠다고 정해두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대본이 재미있었고, 좋은 드라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충실히 구현해서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보자는 생각 뿐이었다. "

- 영화나 시트콤 제의 같은 건 없나?

"전혀 모르겠다. 그런 문제는 회사가 잘 안다. 팬들이 시즌2를 요청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 시즌2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그런 질문이 들어올까봐 미리 고민을 해봤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같은 연기자, 같은 작가라면 물론하고 싶지만, 현재는 아무 생각이 없다."

- 이번 작품에서 뭔가 표현하고 싶은게 따로 있었다면.

"기획을 내가 한게 아니라 작가가 했다. 그걸(시놉시스) 보고 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연출을 하고 싶었다. 아직 신인PD니까 관습적인 드라마, 전형적인 드라마에 대한 치기어린 거부감이 있었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으로 항상 드라마가 다양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것은 드라마에 멜로 있다, 없다로 나누는 차원이 아니다. 그것을 떠나 그동안 없었던 드라마, 다양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누구인가?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모두 좋다."

-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누구인가?

"(또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모두 좋다. 백민철까지 다 좋다."

- 주인공들에게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얼렁뚱땅 흥신소>를 제작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나?

"사실 작업을 하면서 몇개월 동안 정말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 배우, 스태프들과 일한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그 자체로도 행복했던 것 같다. 아, 그러고보니 첫 촬영 때가 생각난다. 용수랑 무열이가 해남으로 내려가는 장면부터 찍었는 데 그날이 좋았다."

- 드라마가 눈물이 날만 하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랬나? 나는 시청자들이 울라고 만든 장면이었는데."

- 다른 드라마들은 울라고 신호를 보내지 않나. 주인공들 오열도 하고.

"억지로 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배우가 안울어도 억지로 눈물을 주문하지 않는다. 우리 배우들이 연기를 참 잘한다. 진정한 리액션을 아는 연기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계산된 연기가 아니라 상대방이 준 자극에 정직하게 반응해서 감정을 표현한다. 순수한 연기자들이다."

- 캐스팅에서 특별히 고려한게 있나? 모두 오디션을 봤나?

"이은성 씨 빼고는 모두 전작을 보고 협의해서 결정했다. 캐스팅할 때 연기만 보는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게 중요하다. 코드가 잘 맞냐는 것을 따져야 한다. 같이 술마실 수 있는 사람인가? 그런 것을 본다. 신뢰를 가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캐릭터에 잘 맞냐만큼 그런 것을 본다. 서로간에 공통적으로 가고자 하는 바가 맞아야 한다. 그게 적립되야 충분히 좋은 작품이 나온다. 작가가 써주는 것은 책으로 나온 작품이다. 여기에 배우와 연출자의 호흡이 맞아야 드라마가 살아난다."

- 이 드라마는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참 어렵다. 다른 드라마는 '주인공 진짜 예뻐 꼭 봐'라던가, '연기가 진짜 웃겨. 너도 좋아할거야'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본인은 뭐라고 설명하나?

"찌질한 애들이 황금찾는 드라마야. 만화 같고 재미있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뒤로 갈수록 미흡해서 부끄럽지만 처음에 고수했던 것만큼은 지킨 것 같다. 상쾌하지만 지나치지 않고, 심각하지 않으면서 진정성이 살아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건 계속 간것 같다."

- 황금은 무엇을 상징하나.

"꿈이다. 나이가 들면서 꿈을 잊고 살지 않나. 그걸 잊지 않고 살기 힘들다. 희망을 가지는 게 어렵다. 얼토당토 않은 황금이야기지만 그것으로 희망을 가지는 거다. <얼렁뚱땅 흥신소>는 2차 성장드라마다. 다 큰 사람들이지만 나이와 관계없이 계속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시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런데 황금은 그냥 황금일 뿐이다(웃음)."

-시청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청률 걱정을 많이 해줘서 고맙다. 역대 최하 5위라고 들었다. 이제 낮은 것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대작 사극 때문에 낮게 나왔다고, 편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드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냉철해져야 한다고 본다. 대중적이지 못한 약한 고리가 있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 박연선 작가와의 호흡은 어땠나?

"<연애시대>를 보고 너무 좋아했던 분이라 같이 일해서 정말 좋다. 훌륭한 작품을 내가 막판에 자꾸 망쳐놔서 미안하다. 이것 역시 어떤 처분이라도 달게 받아야 한다(웃음)."

- 원래 그렇게 겸손하나?

"그게 아니라 솔직한 거다. 내 책임 맞다. 대본이 더 나았던 작품이라고 본다.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작가다."

-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은 멍한 상태다. 새로운 드라마를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잘했든 못했든 모든 제작진이 최선을 다해 만든 결과다. 후회가 없다. 다시 촬영 첫날인 8월 21일로 돌아가도 더 이상 못할 것 같다. 서글퍼하지 말고, 다음에 더 좋은 드라마 만들면 된다."

이렇게 인터뷰가 마무리 되는 줄 알았더니 함PD가 처음으로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제가 계속 연출할 수 있을까요?"

그도 용수처럼 팍팍한 현실을 이미 잘 알고 있고,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터뷰 도중 마지막회 방송에 광고가 하나도 없다가 2개가 붙었다는 연락이 왔다. 설령 기가 좀 죽으면 어떠랴. 꿈을 아직 포기 하지 않은 듯 보였다.

함영훈 PD는?

KBS TV제작본부 드라마2팀 프로듀서. 2004년 드라마시티 <반투명>으로 연출을 시작해, 미니시리즈 <열여덟 스물아홉> 공동연출, 드라마시티 <납골당 소년>, <시은 & 수아> , 미니시리즈 <미스터 굿바이>, 드라마시티 <십 분간, 당신의 사소한>, 미니시리즈 <헬로! 애기씨> 등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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