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선 레이스도 종반, 내일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자신이 지지했던 사람이 당선되어 어깨춤을 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뻔히 그럴 줄 알았으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낭패감에 털썩 주저앉아 술을 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탄핵이 선고된 그날부터 시작돼 장미꽃이 미처 피기도 전에 마무리되는 대선, 그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저마다 '자신의 선택'을 고민해왔다.

그리고 그 선택의 시간은 누군가에겐 그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에부터, 내 세대의 대변자라서 혹은 다른 사람이 되면 안 되니까. 때로는 생뚱맞게도 너무도 인간적이라, 심지어는 잘생겨서라거나 귀여워서란 이유도 있을 것이다. 혹시나 그 대상이 연예인이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지난 한 달여의 대선 기간은 '저마다의 이유'로 그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막상 그런 열렬한 지지를 '사랑'이라고 하니 무색한가? 하지만 그 뜨거운 마음을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 텐가. 그 마음이 사랑인 이유를 이제 한 영화를 들어 설득해 보고자 한다. 이제는 추억의 영화로 사라져가는 <지니어스>이다.

무조건의 지지, 그게 사랑이 아니면?

영화 <지니어스> 포스터

주드 로, 콜린 퍼스, 니콜 키드먼이라는 '스타 군단'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작품. 하지만 영화 속 그들이 분한 등장인물은 오늘날 이 배우들의 면면보다 문화사적으로 존재감이 높은 인물일 수도 있다. 바로 1930년대 미국의 소설계를 주름잡던 어네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를 탄생시킨 편집자 맥스 퍼킨스와, 그가 당대의 기린아로 탄생시킨 토마스 울프가 그 주인공이다.

1929년 10월 24일 뉴욕 증시가 폭락한 '검은 목요일', 그로부터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경제적 위기에서 시작된 암울한 기운이 도시를 덮고 있는 뉴욕,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 있고, 그 한편에 연신 담배를 피워 물며 저 멀리 한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당시 뉴욕의 유명 출판사 스크라이너브스. 거기엔 작가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들의 작품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요리해낸 눈 밝은 편집자 맥스 퍼킨스가 있다. 여느 때처럼 사무실에서도 중절모를 벗지 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그에게 한 묶음의 낡은 원고가 전달된다. 다른 출판사를 전전한 모양새가 한눈에도 보이는 나달나달한 원고 뭉치, 슬며시 그 원고의 한 장을 열어온 맥스는 곧 그 글에 빠져 출퇴근 기차를 지나 시끌벅적한 집안 식구들을 피해 옷장 속에 숨어서까지 그 글을 놓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작가가 그의 사무실을 찾아오자 '계약'을 제안한다. 바로 이 장면이 맥스 퍼킨스와 토마스 울프와의 역사적인 만남이다.

아마도 영화가 극적으로 그려서 그렇지, 어네스트 헤밍웨이도 스콧 피츠제럴드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굳이 그 30년대 실업자 대열의 일원이었던 토마스 울프와 이제는 대가가 된 맥스 퍼킨스와의 '인연'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 인연을 매개하는 건 토마스 울프라는 '천재'에 매료된 편집자이기 이전에 '인간'인 맥스이다.

영화 <지니어스> 스틸 이미지

당시 토마스 울프는 고향을 떠나와 도시에서 전전하다 부유한 여인 엘린이라는 독지가의 덕으로 근근이 글을 써나가고 있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맥스가 한눈에 반했듯 '시적이면서도 유려한 그의 문장'으로 점철된 그의 글은, 그 장황한 양으로 인해 이곳저곳에서 퇴짜를 맞는 형편.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 맥스는 계약은 하되, 대신 그의 작품을 사람들이 보기 편하게 '편집'하자는 제의를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된 인연으로 그의 첫 작품 <천사여 고향을 보라>가 탄생한다.

영화는 토마스 울프가 그의 첫 작품으로 맥스와 인연을 맺고, 800여 페이지가 넘는 두 번째 작품 <시간과 강에 관하여(1936)>를 출간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광폭 행보를 씨줄로 삼는다. 그리고 그 '기인' 토마스 울프의 곁에서 때론 그의 재능에 반하고, 필력에 매료되고, 하지만 그런 그의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타협'하다 결국은 그와 불화, 하지만 그를 끝까지 아꼈던 맥스라는 인물의 행보를 날실로 삼아 이야기를 끌어간다.

사랑이 끝나면?

영화 <지니어스> 스틸 이미지

영화 속 토마스와 맥스는 대비되는 인간형이다. '쓰면서 살았고, 살면서 썼다'는 그의 문구처럼 끊임없이 써대고, 그래서 심지어 맥스가 찾아가 그만 쓰라고 할 때까지 고치라고 하면 거기에 더해 써대는 토마스. 그 써대는 만큼 떠벌이며 자신을 드러내고 확인받고 싶어 했던, 그러나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보다 자신이 소중했던 토마스란 인물. 늘 남의 글에 뒤에서 그 글이 찬사를 받는 순간에조차 자신이 혹시 그 글의 소중한 부분의 '사형 집행인'이 아니었을까 저어하며, 가장 사무적이며 규칙적인 일 중독으로 살아가는 맥스란 인간형의 대비이다. 마치 성격 유형 검사의 가장 대비되는 두 인간형이 함께하는 여정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두 대비되는 인간형의 만남을 ‘눈 밝은 편집자 맥스가 알아본 천재’ 이전에, 맥스라는 천재 글쟁이에 매료된 ‘인간’ 맥스라는 관점에서 풀어간다. 베스트셀러를 알아보는 재바른 사업자가 아니라, 토마스의 글을 편 순간 그의 글을 눈에서 떼지 못하게 '매료된' 인간 맥스를 내세운 것이다. 영화 속 토마스는 말이 앞서고, 글은 연신 써대지만 그 재능을 확신할 매력은 모호하다. 하지만 맥스는 그 모호함 속에서 맥스라는 천재를 믿고, 그가 자신과 다른 삶의 행보를 보이는 것에 끌려 들어간다. 시계처럼 규칙적으로 살았던 그가 아내와 아이들을 보내고 홀로 남아 토마스와 함께한 시간, 그와 함께 한 재즈 바에서 조심스레 추임새를 넣은 그 발동작은 사실 그 어떤 강렬한 표현보다 맥스의 변화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영화 <지니어스> 스틸 이미지

토마스의 후견인인 엘린의 경고, 토마스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와 주변의 경고, 하지만 계약이 파기되는 그 순간까지 맥스는 토마스를 믿는다. 이건 눈 밝은 편집자의 천재 작가에 대한 믿음, 그 이상의 '사랑'이란 말로밖엔 설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사랑은 이른바 요즘 붙이기 좋아하는 '브로맨스'가 아니다. 그런 로맨스라기보다는 그저 '사람'이 사람'에게,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끌림이자 매료이다. 그래서 2년여의 기간,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토마스를 설득하여 그 천재의 두 번째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함께할 수 있는 '믿음'을 이끈다.

아마도 이런 무작정의 끌림, 눈 밝은 알아봄을 우리 시대 이 계절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영화 속 맥스의 그 무한정의 매료에는 안타깝게도 해피엔딩이 없다. 그가 토마스를 아껴서 했던 편집 작업이 외려 토마스에겐 상처가 되고, 결국 그는 맥스의 곁을 떠나고 결국 세상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집 앞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토해내며 토마스와 불화했던 그 순간을 접고, 맥스는 영화가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모자를 벗는다. 토마스의 부고를 듣고.

아마도 내일이면 희비가 엇갈릴 이 한바탕의 '매료된 시간', 그 시간의 끝에 기쁨을 함께하지 못하는 그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 맥스처럼 모자를 벗어 품위 있게 애도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 인간적인 무례함으로 마무리된 두 사람의 관계, 심지어 맥스를 탓하며 다른 편집자를 찾은 토마스를 원망할 만도 할 것이었다. 하지만 맥스는 그런 서운함보다 한 시대를 대변할 '천재'의 사라짐을 더 안타까워했다. 그것이야말로 지나간 자신의 사랑에 대한 가장 정중한 조의가 아닐까. 장미꽃보다 더 열정적이었던 대선이라는 사랑의 여정, 그 후유증을 지레 염려하며 뒤늦은 리뷰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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