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형사였고, 변호사였고 그리고 임금님이 되었다. 하지만 시대를 달리하고 때론 가해자였다가 피해자이고 정의의 사도로 변화무쌍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언제나 그는 이선균이다. 이렇게 정의하면 될까?

드라마에서 그는 스스로 돋보이기보다 다른 배우를 돋보이게 해주는 남자 배우라 칭해졌다. <커피 프린스 1호점(2007)>에서 그러했고, <골든타임(2012)>에서도 그의 그런 캐릭터는 어울렸다. 그러던 그가 자신을 두드러지게 어필하기 시작한 건 <파스타(2010)>부터였다. 귀가 시끄러울 정도로 언성을 높여 닦달하며, 짜증스럽지만 이른바 '츤데레'의 전형이라 여겨졌던 속정 깊은 셰프 최현욱은 누군가를 돋보이게만 하던 그를 전면에 내세웠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홍상수의 페르소나라 불리던 시절, 그래서 마흔 줄이 되도록 대학생으로 등장하며 여러 여배우들과 '사랑'을 나누던 시절, <화차(2012)>에서도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에서도 그보다는 같이 출연한 여배우들이 더 회자되었었다. 그러던 그가 사랑꾼 대신 남자 파트너를 선택한 <끝까지 간다(2014)>를 통해 '이선균'을 각인시켰고, 2015년 백상예술대상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물론 그 <끝까지 간다> 역시 최우수상 트로피는 두 개였고 함께 출연했던 조진웅과 그 기쁨을 나누어야만 했지만, 영화 시작하고 한참 지나서야 등장하는 조진웅과 달리 영화를 내내 끌어갔던 이선균이란 존재감에 대한 '세상의 인정'이 덜해진 건 아니었다.

이선균, 전면에 나서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이미지

그런 자신감과 인정은 2014년 <성난 변호사>에 이어, 얼마 전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개봉으로 이어졌다. 드라마 속 그가 2016년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를 통해 익숙한 사랑꾼 이선균의 유부남 버전으로 등장했다면, 형사 이선균의 좌충우돌 어드밴처물이었던 <끝까지 간다>의 캐릭터는 <성난 변호사>와 <임금님의 사건수첩>으로 이어진다.

<성난 변호사>와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현대와 조선, 그리고 변호사와 임금님이라는 전혀 다른 존재론적 배경을 가졌지만 '기시감'이 들 정도로 익숙하다. 두 작품의 중심엔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있다. 이선균은 조선시대 예종이라는 역사적 인물로 등장했지만, 그는 우리가 사극에서 보았던 그 예의 임금님이 하는 말투와 태도를 배제한다. 그의 말투는 그가 현대극에서 썼던 그 말투 그대로이며, 그의 걸음걸이, 심지어 왕이라는 존재임에도 늘 상투 바람으로 어전 회의에 임하는 그의 캐릭터는 이미 '고증'이라는 범주를 우습게 만들어 버린다. 알고 보면 예종이 왕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불과 20세의 나이로 요절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작 <성난 변호사>처럼,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마치 <007> 시리즈처럼 이선균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그에 맞춰 기획된 ‘이선균표 어드벤처’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런 방식은 김명민 표 <조선 명탐정> 시리즈와 유해진이라는 캐릭터를 앞세웠던 몇몇 영화를 통해 영화계의 한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더욱이 <조선 명탐정> 시리즈에서 이미 등장한 바 있는 광산을 매개로 한 세도가의 이권이 국익을 좀 먹는다는 조선판 '적폐'는 마치 클리셰처럼 <임금님의 사건수첩>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이미지

<성난 변호사>도 그리 다르지 않다. '이기는 것이 승소'라 여겼던 승소 확률 100%의 변호성이 역시나 적폐 세력인 거대로펌의 마수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위기에 빠졌다 살아나며 통쾌한(?) 반전 활약을 선보이지만, 이 영화에서 적폐가 주는 비감함은 <내부자들> 등의 사회 고발성 영화의 그것과 다르게 오락영화의 트렌드로서 기능하는 바가 더 크다.

그런 지점에서 이들 두 영화는 '이선균'에 대한 호감을 전제로 두고 관람을 요청한다. 그의 사극 예법에 어긋나는 말투, 그가 이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예의 껄렁껄렁한 태도, 시니컬한 말투에 대한 호감을 전제로 그런 변호사와 임금님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성난 변호사>와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궤적은 다르다. 갓 100만을 넘기고 종영했던 <성난 변호사>. 이제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2>, <보스 베이비> 심지어 <보안관>에 이어 4위로 내려앉았지만, 동시 개봉했던 <특별시민>을 가볍게 누르며 잠시 박스 오피스 1위조차 넘봤던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그보다는 나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이미지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성난 변호사> 개봉 이후 질타에 시달렸던 여배우의 존재감이나 기대에 못 미쳤던 사무장 파트너의 활약을 보강이라도 하듯, 신예 안재홍의 맛깔 나는 사관 연기와 이선균의 조선 시대 임금님의 연기가 조화를 이루었고, 김희원의 폭넓은 악역 연기를 더했다. 분량은 적었지만 정해인의 비밀 무사도 신선했다. 무엇보다 <성난 변호사>가 미흡했던 서사의 어설픔을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극복하려 애쓴 듯하다. 결국은 뻔하지만, 그래도 헛웃음이 나오지는 않은 적당한 액션 어드벤처물로서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이제 순위가 밀려나고 있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이선균'을 전면에 내세우며 끝까지 갔던 <끝까지 간다>의 영광에는 못 미칠 것이 예상된다. 이 상황이면 '이선균'이라는 장르의 미래 역시 불확실하지 않을까?

이선균이란 장르의 불확실한 미래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이미지

그렇다면 과연 ‘이선균’이라는 장르는 뭘까? 유해진이 그 특유의 해학과 넉살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고, 김명민이 웃기는 장면에서조차 힘이 실려 있는 연기로 승부를 본다면, 오히려 이선균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연기를 하되 연기하지 않는 것 같은 편안함이랄까? 그가 영화 내내 짜증을 내고 말도 안 되는 어깃장의 '어명'을 내려도 어쩐지 밉지 않은, 그 뜻밖의 친화력이다. 이는 다른 말로 '인간적'이라 해석될 수도 있다.

그는 영화에서 형사가 되었든 변호사가 되었든, 혹은 심지어 임금이 되어도 그저 '우리 같은 속 좁고 불평불만 많은 평범한 인간'으로 수용된다. 우스개로 이선균은 당하면 당할수록 매력적이라고 하듯, <끝까지 간다>에서 끝까지 몰렸던 고건수의 캐릭터가 가장 그를 돋보이게 했다. 그렇듯 <임금님의 사건수첩>에서도 임금임에도 때론 신입사관 이서(안재홍 분)에게 툭 하고 밀려가는 그 인간적인 여지에 관객들은 '연민'의 정으로 호응한다.

하지만 그 친화력은 동시에 '긴장감 없음'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임금님의 사건수첩> 마지막 클라이막스, 조선 제일검으로서 예종의 비장한 등장은 어쩐지 그럴 것이었으면서도 그 긴장이 풀어진다. <끝까지 간다>는 그런 이선균의 편안하지만 긴장감 없음을 조진웅이라는 센 캐릭터로 맞붙이며 영화의 힘을 밀어 붙였다. 바로 이 지점이다. 어쩌면 그를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끝까지 간다>와 이후 두 영화들이 보인 결정적 차이점 말이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전작이었던 <성난 변호사>의 단점을 맛깔 나는 신예 안재홍으로 보완했지만, 조진웅이 끌어올렸던 역동성에선 힘이 부친다.

영화 <끝까지 간다> 스틸 이미지

그러나 배우만을 탓할 것도 아니다. <끝까지 간다>가 그해 백상예술대상 감독상과 부산 영평상 각본상을 수상했듯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완성도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성난 변호사>와 <임금님의 사건수첩>과 <끝까지 간다>의 간극은 크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이선균’이란 장르의 미래는 대중적으로 ‘익숙한 캐릭터’를 사용하는 영화 산업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갈 듯하다. 김명민, 유해진을 앞세운 작품들이 '오락적' 성격과 별개로 작품성에서 미흡했던 전례에 대한 아쉬움의 연장이기도 하다. 대중적인 배우를 앞세운다면 그럭저럭 만들어도 대충 관객이 들 거라는 그 '안이함'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선균이란 장르의 미래는 이런 오락적 영화에 대한 좀 더 진지하고 내용성 있는 고민에 대한 숙제로 남겨져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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