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김영애가 이룬 꿈, 33인이 이룰 꿈 <제53회 백상예술대상> (5월 3일 방송)

제53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시상식의 축하무대는 말 그대로 ‘축하’해주는 무대다.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는 아이돌 그룹이나 가수의 공연이, 연예대상 시상식에서는 개그맨 및 예능인들의 패러디 무대가 주를 이뤘다. 타 영역에 종사하는 방송인이 축하해주거나, 자신의 장기를 뽐내는 시간이거나. 대개 둘 중 하나였다.

지난 3일 방송된 <제53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는 차원이 다른 축하무대를 선보였다. 단순 자축무대가 아닌, 꿈의 무대였다. 우리가 잘 아는 배우들의 연기 영상이 나오는 가운데, JTBC <팬텀싱어> 우승팀 포르테 디콰트로가 <시네마 천국> OST를 불렀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축하 공연이었다.

그들의 공연이 끝난 뒤 암전. “나는 매일 꿈을 꾼다”는 글자가 스크린에 등장했다. 이제 스크린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단역 배우의 영상이 나오면서 그 배우의 경력이 나왔다. 영화 <아가씨> 중 채찍은 말한다 독회 손님 3역을 맡았던 한창현 배우, 드라마 <도깨비> 중 스텝1 역을 맡았던 최나무 배우를 비롯해 1년 간 개봉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단역배우 33인이 <꿈을 꾼다> 무대를 채웠다.

제53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의미심장한 건, 배우 김영애의 공로상 수상 직후 이어진 무대였다는 점이다. 김영애는 생전 시상식 수상소감에서 “저는 배우인 게 너무 좋습니다. 다음 생에 태어나도 다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후배 박신혜는 그를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긍지를 갖게 해주신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배우 33인의 목소리를 꾹꾹 눌러 담아 완성한 꿈의 무대. 유해진, 김혜수, 이병헌 등 그들의 무대를 보는 배우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생전 김영애가 온 몸을 던져 이룬 꿈을, 33인의 배우도 차근차근 이뤄가고 있는 것이다. 김영애가 그러했듯 꿈을 안고 꾸준히 연기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33인의 무대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남달랐다.

이 주의 Worst: 이제 그만 몰아갈 때도 됐는데 <비밀 예능 연수원> (5월 5일 방송)

MBC <비밀 예능 연수원>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같은 직종에 종사하지만 어색했던 동료와 돈독한 관계를 다져보며, 즐거운 시간을 통해 리프레시하는 예능 연수 버라이어티. 지난 5일 2부작으로 방송된 MBC <비밀 예능 연수원>의 기획 의도다.

어느 정도는 기획 의도에 충실한 <비밀 예능 연수원>이었다. 하하팀과 노홍철팀으로 나뉜 출연자들은 같은 식사 메뉴를 고른 상대방과 밥을 먹고, 서로의 자화상을 그려줬다. 그 과정을 통해 ‘털털한 걸그룹 멤버’의 대표격으로 알려진 EXID의 하니와 에이핑크의 보미가 사실은 굉장히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문제는 마지막 코너였던 ‘소통의 장’이었다. 질문 카드를 뽑은 뒤 답을 듣고 싶은 연수생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말이 ‘소통’이지, 시청자는 궁금하지 않고 출연자는 곤란한 짓궂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2AM의 진운은 첫 번째 질문 카드를 뽑은 뒤 호들갑을 떨면서 “오! 잘 뽑았다”고 좋아했다. 질문은 바로 첫 키스했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 출연자들의 첫 키스 여부도 크게 궁금하지 않은데 심지어 ‘자세히’ 설명하라니. 답변자로 지목된 하니의 곤란한 표정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낯가리는 성격을 티내지 않기 위해 예능에 나가면 더욱 최선을 다한다”는 하니는 최대한 질문에 충실하면서 자세히 상황을 묘사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남자 출연자들의 짓궂은 부추김은 더욱 심해졌다. (첫 키스를 했던)계절은 언제냐, 시간대는 언제였냐 등등.

MBC <비밀 예능 연수원>

하니의 대답에 신이 난 출연자들은 게임의 룰마저 무시한 채, 첫 키스 질문을 릴레이로 던지기 시작했다. 블락비의 피오와 위너의 민호도 첫 키스 상황을 ‘자세히’ 고백했다. 서로의 첫 키스 상황을 알면 ‘소통’이 가능하다는 전제는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첫 키스 질문은 양반이었다. 곤란하긴 해도, 어쨌든 팩트를 얘기하면 되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은 전형적인 ‘굴비 엮기’에 가까웠다. ‘이 안에 있는 사람 중에 무조건 한 명을 사귀어야 한다면 누구랑 사귈래?’ 답변자로 지목된 피오의 대답을 듣기 전, 제작진은 이 날 피오가 보미에게 보인 호감을 ‘악마의 편집’으로 모아놓고는 본격적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세 번째 질문.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두 번째 질문과 일맥상통하는 질문이었다.

이쯤 되니 서른 개의 질문을 모두 공개해보고 싶었다. 그 중 몰아가기식 질문이 아닌, 진짜 소통을 위한 질문이 몇 개나 되는지 궁금했다. ‘소통’이라는 명목 아래, 서로의 첫 키스 기억과 이상형만 주구장창 물어보다가 연수원 생활이 종료됐다. 생각해보면, 오프닝부터 “친해지고 싶은 연수생은?”이라는 뻔한 질문을 던지고 특정 걸그룹 멤버를 지목하자, “와 장난 아니다”라는 몰아가기 리액션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예상했어야 했다. 아이돌 멤버들을 모아놓고 ‘자아성찰’이니 ‘소통’이니 하는 것들을 시도한다는 얘기를 믿는 게 아니었다. 결국 기승전-러브라인인 것을.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