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기사를 봤다. 범기독교계가 5월 9일 제19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교계를 대리한 기독자유당의 지지후보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선정하기로 했다는 5월 1일자 일요신문 기사다.

기사를 보자마자 든 생각 하나. 크리스천으로서 홍준표를 극력 반대하는데, 왜 '범기독교계'가 홍준표를 지지한다고 하는 걸까?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도 홍준표를 절대적으로 경계하고 경원하는 크리스천들이 한둘이 아닌데, 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무슨 명목으로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기독교 앞에 붙인 '범'자가 돼지흥분제로 성폭행을 도모한다는 의미의 '범할 범(犯)'자라면 몰라도, 그것이 "모두를 아우른다"는 뜻을 지닌 접두사라면, 그건 심각한 대국민 사기다. 중앙집권적인 가톨릭과는 달리 한국 개신교 상황에는 애당초 이런 대표성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탓이다.

교회의 대표성이라니? 정치적 목적으로 급조된 어느 한 총회가 한국 교회를 대표하고 통솔한다고 누가 그러던가? 그 이전에 교회가 정치문제에 개입해서 자신의 머릿수를 자랑하고 세를 과시하는 게 가당키나 하나? 교회의 유익을 위해 선거에 개입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성경에 그리 나와 있던가?

이영훈·장경동·이태희·전광훈... 등등. 5월 2일 자유한국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홍준표 지지를 선언하기로 했다는 목사들의 면면을 보니 '역시'란 말이 절로 나온다. 탄핵정국에서 하나같이 박근혜를 싸고 돌고, 좌파·종북·빨갱이 외에는 할 말이 없는 사람들,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려는 세력에 힘을 보태던 사람들 아니던가.

이영훈은 탄기국 집회와 궤를 같이 하는 3.1 구국기도회를 주도한 순복음 목사다. 장경동은 예배시간에 특정정당 홍보영상을 상영해서 선거법을 위반한 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목사다. 이태희는 촛불시위에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을 보고 "소름 끼쳤다"고 말한 목사다. 전광훈 목사는?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 후보(오른쪽)가 4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방문, 이영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자. 지난 달 20일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개최된 ‘8천만 기독교 민족 복음화 대성회’에서 전광훈 목사와 김승규 장로에게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 권한을 일임했고, 이 두 사람이 기독교정신과 한국 현대사 이해도, 대북안보, 동성애 문제 등을 심도 있게 따져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선정했단다.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짜고 치는 고스톱 판도 이 정도 막장은 아닐 터. 모든 항목에서 홍준표란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뻔한 검증을 뭐 하러 하나? 이건 투표하기도 전에 결론이 미리 나와 있는 공산당 선거나 다를 바 없는 짓이다. 빨갱이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이런 수법을 따라 한다는 게 불가사의할 따름.

'범기독계가 홍준표를 지지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고 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를 섬기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을 이런 식으로 실천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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