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30일 흥미로운 사실에 접근을 했다. 바로 대통령 기록물에 대한 허실을 따지고 든 것이다. 탄핵이 전개되는 한동안 보도가 집중되었던 것 중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 역시 대통령 기록물과 파쇄기가 대량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헌재 파면 결정 이후 곧바로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다시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스포트라이트가 용케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조선은 세종대왕 같은 성군도 존재했지만, 연산군 같은 폭군도 있었다. 과거 조선은 오직 필사만이 기록의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그런 모든 사실들을 후손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초에 충실했기 때문이고, 우리는 500년 조선역사를 소상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근대화 이후의 대한민국 정부는 적어도 이 기록에 대해서는 봉건 조선보다 뒤졌다는 말조차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이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청와대 시크릿, 사라지는 국정기록’ 편

사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정부는 별 걸 다 비밀로 해왔다. 청와대 전력사용까지도 ‘국가안전보장과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비밀로 가둬버리는 정도다. 심지어 용산미국기지 내 기름유출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정부의 집요한 방해와 지연작전을 이겨내고 대법원 판결 이후에야 겨우 일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반면 동일 시민단체가 미국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요구했을 때는 전혀 딴판이었다. 미정부는 소송도 필요 없었고, 즉각 대한민국 환경부가 내놓은 자료의 100배를 공개했다. 미국을 칭찬하고 대한민국을 비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아닌 말로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미군기지의 어떤 사실이 문제에 대해서 직접 당사자인 미국의 태도와 너무도 다른 한국 정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청와대 시크릿, 사라지는 국정기록’ 편

이런 현실의 꼭대기에는 청와대 즉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한 자세로부터 출발을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전 세계가 칭찬하는 조선왕조실록은 원칙에 대단히 충실했다. 왕의 통치를 공개된 장소에 해야 한다는 원칙 말이다. 그래서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은 심지어 변장까지 해가며 왕의 모든 행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왕이라 할지라도 그 사초를 전혀 건드릴 수 없다는 원칙이고, 그것이 지켜졌다는 것이다.

반면 대통령 기록물에 대한 법까지 존재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 기록은 그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왕은 절대 볼 수 없었던 조선과 달리 대통령 기록물은 대통령만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물론 30년 이후에는 봉인이 풀리기는 하지만 그 30년이라는 시간은 이 빠른 시대에 거의 영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왕만 볼 수 없는 왕의 기록과 대통령만 볼 수 있는 대통령의 기록. 도대체 어느 쪽이 과거이고 현재인지 헷갈릴 법도 하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대통령 기록물에 대한 이 비밀스러운 태도는 철저히 퇴보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의 이런 자세는 그대로 정부부처에 답습되기 마련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을 한국정부가 아닌 미국정부로부터 정보를 얻는 웃지 못할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청와대 시크릿, 사라지는 국정기록’ 편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들 아무도 몰랐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실 하나를 스포트라이트가 밝혀냈다. 사실 그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은 것이지만 콜럼부스 달걀 같은 경우라 할 것이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로부터 최근까지 남겨진 대통령 기록물의 현황이 주는 의미가 크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었거나 비록 수량은 많더라도 정작 중요한 것은 보존되지 않거나 폐기된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의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의 7시간도, 최근 물의를 일으킨 전두환 회고록도 모두 이처럼 부실한 대통령 기록물로부터 시작된 문제들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후세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라면 후세는 조선과 비교해서 대한민국을 더 미개했다고 평가할 것이다. 이번에 새정부가 들어선다면 이 기록에 대해서만큼은 조선과도 같은 철저한 공개주의를 채택해야 할 것이며, 이후 어떤 권력으로도 훼손하지 못할 법제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남긴 조상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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