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최근 지지율 하락세를 겪고 있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마지막 승부수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효과가 있을 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가뜩이나 지지 이탈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지지층 붕괴만 가속화 시킬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안철수 후보는 27일 밤 9시 30분부터 10시 15분까지 김종인 전 대표와 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후보는 김 전 대표에게 통합정부추진위원회를 맡아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후보는 지난 17일 선거운동 시작 후 직·간접적으로 3차례 정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가 27일 김종인 전 대표와 조찬회동을 가졌고, 같은 날 최명길 의원이 국민의당에 입당한 후 안 후보와 김 전 대표의 심야회동이 성사됐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왼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연합뉴스)

김종인 전 대표를 만난 다음날인 28일 오전 10시 안철수 후보는 '국민 대통합 협치에 관한 구상 발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안 후보는 "탄핵 반대 세력과 계파 패권주의 세력을 제외한 모든 합리적 개혁 세력과 힘을 합쳐 이 나라 바꾸겠다"면서 "제가 당선되면 대통합정부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안 후보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무능의 상징, 부패의 상징이 됐다"면서 "정부 위에 군림하는 청와대의 무소불위 권한을 내려놓겠다"고 다짐했다.

안철수 후보의 기자회견 내용은 당초 김종인 전 대표가 3지대 단일화, 소위 '반문연대' 구성을 추진하면서 해왔던 발언과 궤를 함께 한다. 지난 5일 대선출마를 선언했다가 일주일만에 철회한 김 전 대표는 출마 선언 당시 "통합정부로 위기를 돌파하고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면서 "각 정부의 유능한 인물들이 힘을 모으는 통합정부가 답"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김 전 대표는 "적폐 중의 적폐, 제1의 적폐인 제왕적 대통령제는 이제 정말 끝내야 한다"면서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안철수 후보는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남에서 통합정부 구성에 대해 "저는 탄핵 반대 세력, 계파 패권주의 세력과는 함께하지 않겠다"면서 친박·친문세력과는 거리를 뒀다. '양당의 협조 없이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정치 대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빅뱅이 일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3지대 단일화를 추진하던 김종인 전 대표의 의견을 대폭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종인 전 대표가 주장했던 '3년 임기단축 개헌'에 대해서도 "국회에서 국민들 의사를 반영해 합의하면 저는 전적으로 거기 따를 것"이라면서 "국회에서 논의하고 결정되는 대로 모두 수용하고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대표의 측근인 최명길 의원은 "김 전 대표는 오늘 안철수 후보가 아침에 한 기자회견과 발표를 보고, 통합정부를 구성해서 위기상황을 돌파해야 한다는 인식이 정확하게 해명된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의 안 후보 측 합류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렇게 봐도 된다"고 답했다.

안철수 후보의 이 같은 행보에는 결국 급격한 지지율 하락으로 "급했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특히 가뜩이나 안 후보의 집토끼로 볼 여지가 많은 호남 지역, 진보층의 지지율이 날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김종인 전 대표를 영입하려는 것은 '자충수'가 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김종인 전 대표는 5공화국 신군부 시절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신군부 시절 각종 탄압으로 호남은 국보위 출신인 김 전 대표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의 안철수 후보가 김 전 대표를 영입한 것은 오히려 지지층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

지난해 1월 더불어민주당이 김종인 전 대표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자, 김대중아카데미 김성재 원장은 "김종인은 5공 신군부 국보위원이었다"면서 "국보위는 5·18 민주화운동을 빨갱이 폭도로 매도하고, 신군부를 정당화했고, 불법으로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수많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목숨까지 빼앗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안 후보의 김 전 대표 영입에 대한 호남 민심을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안철수 후보 측과 김종인 전 대표 측의 관계를 우호적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면이 있다. 지난해 3월 안 후보는 김 전 대표가 민주당에 공천 전권을 요구한 데 대해 "경악스러운 발언, 쿠데타적 발상이다. 헌정을 중단시킨 국보위 수준"이라면서 "김종인 대표는 당의 주인이 아니다. 임시 사장"이라고 평가절하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박지원 대표는 비례대표 순번 논란을 일으킨 김 전 대표를 향해 "김종인 대표는 자기가 정한 비례대표 순번이 관철 안 된다고 '당의 정체성이 맞지 않는다, 노인네 취급을 한다'는 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서 정치를 배운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라면서 "국보위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종인 대표의 으름장 정치의 진수"라고 비꼬기도 했다.

김종인 전 대표도 과거 안철수 후보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지난해 국민의당 창당 당시 김 전 대표는 안 후보를 향해 "시장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서 "내가 그 사람하고 얘기를 많이 해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안다"고 비난했다. 김 전 대표는 "의사하다가 PC 백신 하나 개발한 사람이 경제를 잘 알겠느냐"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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