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사는 지난 1975년 3월8일부터 5월1일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언론인 49명을 해임하고 84명을 무기정직 처분했다. 이러한 조치는 당시 여권의 고위층이 “동아일보사는 발행인이나 편집인 지배하에 놓여야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발언한 이후 취해졌다. 이후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에 저항하다 <동아일보>로부터 해직된 언론인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위원장 정동익, 이하 동아투위)를 결성했다.

동아투위 소속 해직 언론인 103명이 지난 16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앞서 지난해 10월21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975년 유신치하에서 동아일보사가 134명의 언론인들을 대량 해고한 것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압력에 따른 것이므로 정부와 동아일보사는 사과하고 응분의 화해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음에도 정부와 동아일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 정동익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송선영
정동익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동아투위 사태 당시 33살의 젊은 기자였다. 34년이 지난 지금, 그는 환갑이 훌쩍 넘은 67살이 되었지만 동아투위 사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진행 중이다. 정부와 동아일보 또한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 인사동에서 만난 그는 “요즘 후배 언론인들이 월급쟁이로 전락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언론 본연의 자세보다는, 언론사의 입맛에 맞게 기사를 쓰면서 몸을 사리는 언론인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왜 언론인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자사이기주의에 빠져 생존의 문제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따가운 지적이었다.

그는 특히 동아일보 기자들을 향해 “지금이라도 각성해 예전처럼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신문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며 “언론인으로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기를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다음은 정동익 위원장과의 일문 일답이다.

동아투위가 결성된 지 34년이 지났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리라고 예상했나?

전혀 예상을 못했다. 요즘 동아투위 위원들이 마음이 상해 있다. 세월이 너무 빨리 가는 것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다. 옛날 우리가 70년대 유신독재정권 아래에서 언론자유 수호투쟁을 할 때와 비슷한 언론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민주화 운동 속에서 언론 자유가 확립된 줄로 알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게 황당하기도 하고, ‘우리가 고생했던 게 물거품 되는 거냐’ 하는 자괴감도 든다. 하지만 희망도 갖고 있다.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고, 국민들이 언론자유 침해를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성숙했다고 본다.

고인이 되신 분들이 있다고 들었다.

14명이 돌아가셨다. 동아투위 위원 134명 가운데 끝까지 활동을 했던 이들은 113명으로, 그 중 14명이 돌아가셨으니까 남은 동아투위 위원은 99명이다. 위원들이 자꾸 작고하니까 시간이 가는 게 무섭다. 위원들이 더 늙기 전에, 다 살아있을 때, 동아투위 해직사태의 진상이 확실히 규명되고, 그때 가해자들이 진정으로 사과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있는 동아일보사 언론인들. ⓒ동아투위 자료 사진
과거 유신정권 시절의 언론 환경과 지금 언론 환경,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정권에 의해 언론 자유가 위축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본다. 지난 10년, 민주 정권 당시에는 자본으로부터 언론 자유가 침해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권력으로부터의 침해는 없었는데 지금은 정치 권력이 언론 탄압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YTN, KBS만 봐도 그렇고.
다른 점은 수구 언론들이 정권과 동맹관계를 형성해 수구 정권의 창출에 앞장서고 비호하고 있다는 거다. 이로 인해 언론사 성격이 많이 변화됐다. 유신정권 때에는 언론 사주와 현역 언론인들이 하나가 되어서 언론 탄압에 저항했던 측면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사주들이 언론자유 수호투쟁에 대해 반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언론사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사주가 경영권, 인사권, 편집권 등 모든 것을 갖고 좌지우지하는 언론사들이 늘어났다.
사주 눈치를 보고, 그 입맛에 맞게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인이 늘어났다. 옛날처럼 약자와 사회 정의를 위하고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시대적 언론 본연의 자세는 많이 사라지고, 요즘은 후배 언론인들이 월급쟁이로 전락했다. 자기도 모르게 검열 가위를 갖고 있는 거 같다. ‘이런 기사 쓰면 데스크가 싫어하겠지’ ‘사주에 찍히면 좋은 부서에 배치 안 되겠지’ 등. 몸을 챙기려는 언론인 늘어났다. 언론계의 큰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YTN에 6명의 해직기자가 있다.

그 분들을 보면 우리 때, 그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이 후배들만은 우리같이 오래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있다. 힘은 없지만 항상 마음으로라도 응원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처럼 30년 넘게 길거리를 헤매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동아일보의 태도에 대해 무척 분노했다”

▲ 정동익 동아투위 위원장이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원실에 소장을 접수하고 있다. ⓒ동아투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배경은 무엇인가?

지난해 10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유신정권 아래에서 중앙정보부의 탄압으로 광고 사태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언론인 대량 해직사태가 일어났다고 34년 만에 규명했다. 정부 개입으로 불행한 일이 일어났기에 피해 당사자에 대해 정부는 화해 조치를 취하라고 했다.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국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아일보 앞에서 집회를 하기도 하고 했는데, 정부는 일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4.3사태와 관련해 옛날 정권이 저지른 일 이었음에도 사과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동아투위와 관련해 일체 아는 척도 없고, 사과할 마음도 없는 듯해서, 기다리다 못해 사법부 판단을 구해보기로 결정했다.

동아일보는 진실화해위 결정과 관련해 ‘광고 탄압이 언론인 해임과 연관있다는 결론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아일보 태도를 보면서 어땠나?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동아투위 위원들이 무척 분노했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이제라도 이를 계기로 ‘어차피 우리도 피해자다’ ‘유신정권 탄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저질렀다’ ‘해직 언론인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 이 정도라도 표명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적반하장이다. 동아일보는 진실화해위 결정에 대해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화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동아일보가 옛날처럼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계기 바랐는데 오히려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동아일보에 대해 어떤 조치 취할 것인가?

해직된 이후 동아일보를 상대로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 당시에 사법부가 제 기능을 못했던 유신정권 시절이었기에 우리가 패소했다. 민사 재판은 판결 결과에 대해 재심 청구를 못하기 때문에 동아일보 상대로는 다시 소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국가를 상대로 법적 투쟁을 준비하고 있고, 동아일보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를 찾아냈다. 동아일보 사측에서는 ‘경영이 어려워서 134명을 해고했다. 국가 공권력이 작용해서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반박할 자료들을 다 찾아냈다. 동아일보는 기자들을 쫒아낸 그 해 12월까지 165명을 신규 채용했다. 쫓아낸 사람보다 더 많이 뽑았다. 진짜 경영이 어려웠으면 그럴 수 없다. 이것만 보더라도 동아일보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이 증명이 된다.

과거 동아일보와 지금 동아일보, 어떤 점이 다른 것 같나?

동아일보를 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180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억울한 사람들, 예를 들어 해직 교수, 지식인, 학생들 모두 동아일보 보도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동아일보만이 제대로 보도해주는 구나’ 모두가 피부로 느꼈다. 동아일보 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곤 했다. 그런데 지난 번 촛불시위 때 보니 시민들이 동아일보사 앞에서 ‘쓰레기’라는 구호 외치더라. 만감이 교차했다. 과거 동아투위가 동아일보 앞에서 모임하면 현역 동아일보 기자들이 선배님들 수고한다고 인사도 하고, 노조가 찾아오기 했는데, 이제는 인사하는 후배도 없고 노조와 교류를 끊긴지도 벌써 몇 년째다.

“후배 언론인들, 언론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어”

▲ 정동익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송선영
동아일보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과거 자랑스러운 선배들의 뜻을 받아서, 동아일보가 다시 거듭나는 계기를 후배들이 찾기를 바란다. 지금도 그중에 양심적인 후배들 있을 거라고 본다. 처음에는 우리도 투쟁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동아일보 앞에서 제대로 보도 못한다고 화형식 하는 것을 보면서 각성해 언론자유 수호투쟁에 나선 것이다. 우리 후배들도 이제라도 ‘동아일보가 이래서는 안 된다’ ‘예전처럼 국민들의 사랑 받는 신문을 만들자’ 각성해 들고 일어나야 한다. 이럴 때 동아일보의 살 길이 있고, 언론인으로서 대접받는 시대가 열릴 거라고 본다. 소시민적 안일에 자족하지 말고 언론인으로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기를 바란다.

지금 언론인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옛날에는 기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왜 내가 언론인이 되어야 하는지’ 마음 자세를 먼저 가다듬고, 고민 많이 했다. 지금은 단지 영어 잘하고, 상식, 논술, 등 소위 말하는 언론고시를 통과해 합격하면 완전 기득권자로 편입돼 전혀 언론인 의식이 없는 거 같다.
시민단체 사람들을 만나면 불평을 많이 듣는다. 집회 또는 행사를 위해 시민단체 사람들이 언론사를 찾아가면 기자를 만나는 것조차 어렵다고 한다. 수위실에 보도자료 놓고 가라고 하고,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현장에 가서 분위기도 보고, 왜 일이 벌어졌는지 취재해야 하는데 보도자료 구해서 써버리는 등 진실 보도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자세들이 많이 사라진 거 같다. 그 가운데에는 고민하는 후배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자사이기주의에 빠져 생존 본능에만 몰두하는 후배들이 많지 않나. 언론인은 성직자와 똑같은 자세가 요구된다. 언론이 바로서야 이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이고,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해야 혼탁한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 양심이 지배하는 사회로 되는 건데…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동아투위가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이라도 동아투위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언론자유 수호투쟁 의의를 국가나 동아일보나 인정해 우리의 진정한 명예회복을 하는 것이다. 그런 길이 가장 올바른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명백하게 국가로부터, 동아일보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작년에 진실화해위를 통해 진상이 규명 되었는데 이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사법부에서도 동아투위 사태를 인정해 진상이 규명되길 원한다. 사법부에서 공정하고도 양식 있는 판단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다음은 진실화해위가 밝힌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의 주요 경과이다.

○ 중앙정보부는 동아일보 광고탄압 전부터 각 언론사별로 담당자를 두고, 보도제한조치 이행 요구, 기사의 방향설정, 기사의 크기 등을 요구했으며, 이를 따르지 않는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기자, 주필, 이사, 사주 등 직위를 가리지 않고 회유, 협박, 연행, 폭행, 고문, 사표종용, 해임압력 등을 행사함

○ 1974년 10월 23일 오후 서울대 학생데모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였다고 해서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한 기자들이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자 동아일보 기자들은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면서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종사자들 자신의 실천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 받거나 국민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외부간섭 배제, 기관원 출입 거부, 언론인의 불법연행을 일절 거부하고,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연행이 자행되는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 등을 결의함

○ 1974년 10월 24일 밤 9시 20분, 조선일보 기자 150여명이 ‘언론자유회복을 위한 선언문’,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등이 ‘중앙매스컴 언론자유수호 제2선언’, 1974년 10월 25일 한국일보 기자들이 ‘민주언론 수호를 위한 결의문’을 발표하였고, 경향신문·서울신문·신아일보·동양통신·합동통신·문화방송·국제신문·부산일보·전남매일·매일신문·충남일보·전남일보·영남일보·대구MBC 기자들도 언론자유실천선언에 동참했으며,

○ 1974년 10월 26일 산업통신·전북신문·경남일보·전주MBC에서, 10월 27일 기독교방송, 10월 28일 경기신문, 10월 30일 내외경제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 선언을 발표하는 등 1주일 동안 모두 35개 언론사의 언론인들이 동참함

○ 동아일보사는 1975년 3월 8일 부터 5월 1일 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49명을 해임하고 84명을 무기정직 처분함.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당시 여권의 고위층이 동아일보사는 발행인이나 편집인 지배하에 놓여야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발언한 이후 취해졌으며, 또 이러한 인사 조치에 대한 동아일보 언론인들의 항의농성도 통행금지가 있던 1975년 3월 17일 새벽에 정부의 비호아래 동원된 인력에 의해 강제 해산됨. 같은 시기에 조선일보사에서도 언론인들이 대량해임 되었고 기자협회보도 폐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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