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새벽 다섯 시, OBS 사옥에서 13명의 정리해고와 이어질 구조조정에 항의하며 노조가 농성 중이던 천막이 사측에 의해 강제로 철거됐다. OBS의 최대주주 영안모자의 백성학 회장은 이전에도 노조가 주최하는 문화제 무대를 자기 손으로 뜯어내며 “여기는 내 땅이니 나가서 하라”는 몽니를 부린 바 있다. OBS는 지난 14일 13명의 정리해고를 시작으로 30여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을 외주화시키고 보도국을 최소 규모로 유지하며 자체제작은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경영혁신 특별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해고했다는 13명의 노동자는 iTV 때부터 지역방송을 고민해온 PD, 기자로 자리를 옮겼던 아나운서, 새로운 수익전략을 시도했던 국장 등 OBS의 핵심 인력들이었다. 인력 구조조정은 제대로 된 방송을 하겠다는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쫓아내고, 자체제작을 축소하겠다는 혁신계획은 지역 시청자들의 눈길을 더욱 멀어지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OBS는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이 ‘선 구조조정 – 후 자본금 증자’ 밖에 없다고 고집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노동자가 떠나고, 지역 시청자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 방송. 지금 부천시 오정동에는 백성학이라는 영주가 OBS라는 이름만을 내건 영토를 지키려는 철옹성을 쌓고 있는 중이다.

사진출처=전국언론노동조합 OBS 희망조합지부 투쟁특보

OBS 위기의 표면적인 원인

진행된 경과만을 본다면, OBS 대량 해고와 위기는 개국 당시 1,400억에 달했던 자본금의 심각한 잠식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3년마다 재허가 심사를 해온 방통위는 작년 12월 올해 말까지 30억 자본금의 증자를 조건으로 1년 시한부 재허가라는 강수를 두었다. 방통위는 재허가 심사 때마다 백성학 회장의 증자 의지 부족을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해 왔다. 그러나 OBS는 대주주 소유 지분이 이미 방송법상 한도를 채웠기 때문에 더 이상의 증자는 무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OBS는 지난 10년 동안 요구했던 서울지역 재송신 확대, 광고판매 방식변경 등을 무시했던 방통위에게 위기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방통위는 대주주의 의지 부족을, OBS는 자사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든 방통위를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셈이다.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OBS와 방통위의 신경전은 결국 13명의 해고를 시작으로 방송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방관하는 지금의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OBS의 위기는 미디어 시장과 이용환경의 변화에서도 기인한다. OBS가 개국했던 2007년 이후 지난 10년은 방송 뿐 아니라 미디어 시장의 급격한 변동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광고수익 악화에 직면했고, 종편과 CJ 같은 유료방송채널과의 경쟁에도 나서야 했다. 미디어 산업은 통신 대기업과 재벌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고, 스마트폰으로 시작된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의 확대는 새로운 미디어 시장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오직 막대한 자본금과 규모의 경제만이 전략이 된 미디어 시장에서 지역방송은 자신들의 수용자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새롭게 출현한 미디어 사업자들이 전국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수익 모델의 개발에 몰두할 때, 지역방송은 시장조차 존재하지 않는 지역에서 자신들의 시청자들이 떠나가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OBS의 위기는 한 방송사의 위기가 아니라 지역방송 모두가 조만간 맞게 될 위기의 예고이기도 하다.

지역방송의 위기, 그 이상의 위기

OBS의 위기가 지역방송의 위기라면, 그 질문은 달라질 수 있다. 과연 “지역은 지역방송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전통 매체로 구분되면서도 여전히 콘텐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전국 지상파 방송사의 건재함과 전국 이용자 대상의 미디어 사업자들의 확장은 중심의 확장에 다름 아니다. 이런 중심의 확장은 미디어 시장의 현상만이 아니다. 지역 케이블방송과 지역 민방이 처음 등장한 때가 1995년 지방자치의 원년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방송의 지역성 뿐 아니라 정치의 지역성 또한 소멸할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 OBS의 재허가 취소 위기나 이번 OBS의 해고 사태를 맞아 OBS 권역 내 인천시와 경기도 등 지자체와 지역 의회는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1,500만에 달하는 지역민들의 방송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때 의견 제시만 할 수 있는 지자체와 지역의회를 지역정치의 장이라 부를 수 있는가. 지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자체에서 공적 기금조차 투입할 수 없고, 지역민들의 요구에 따른 편성과 제작에 대한 의견 하나 강제할 수 없는 방송을 지역방송이라 부를 수 있는가. 지역방송의 문제는 곧 지역분권에 대한 물음이자 중앙정부와 국회에 종속된 정치의 단면이기도 하다. 지역정치가 부재한 곳에서는 지역방송 또한 어떤 의미도 갖기 어렵다. OBS가 지난 10년간 자사의 생존을 위해 바라본 곳은 경인지역이 아니라 서울 광화문에 있었던 방통위였다. 규제완화와 생존해법을 중앙정부에만 요구할 수밖에 없는 지역방송에게 지역성 강화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한국사회의 위기가 응집된 곳, OBS

OBS의 위기는 2017년 모든 권력이 청와대라는 중심에만 쏠려있던, 그래서 다시 그 중심만을 바꾸고자 모든 동력을 쏟아 붓는 지금의 국면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OBS의 살인적인 구조조정, 그리고 방통위가 요구하는 30억 증자라는 이행조건은 지역방송의 재구성이라는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절박한 위기일수록 문제의 진단과 해법은 더욱 심도 깊게 논의되어야 한다. OBS의 위기와 그 대응이 더욱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은 한 방송사의 ‘효율적인’ 구조조정이나 자본금 증자 방안만을 고민할 때가 아니다. 급변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과 방송 시장에서 “지역방송은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으로, 그리고 다시 “지역정치는 가능한가?”에서 “지역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이 시대의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13명의 해고로 시작된 살인적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은 단지 노동조합만의 몫이 아니다. 노조 뿐 아니라 경인지역 노동자와 시민, 언론학계와 정치학계, 경인지역 지자체와 지역 의회 등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지역성의 문제, 지역정치의 문제, 지역방송의 문제다. 5월 대선 이후 새로 출범할 정부는 새로운 지역방송 정책을 제시해야 하고, 노조와 시민, 정치권과 학계는 지역정치와 지역방송이 결합될 새로운 모델을 또한 만들어야 한다. OBS의 위기는 결코 OBS만의 위기가 아니다. 9개 지역방송사과 16개 지역MBC, 나아가 한국 정치가 위기에 처했음을 지역방송 한 곳에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지금 OBS는 경인지역이 아닌 바로 한국사회의 위기를 온몸으로 버텨내고 있다. 모두가 대선만을 바라 볼 때, OBS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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