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은 전국에 X세대라는 단어가 키워드로 자리잡은 원년이라 할 수 있다. 모 화장품 광고에 사용되며 대중적으로 인지된 X세대라는 단어는 당시 1970년대 초반에 출생한 20대 초중반의 세대를 대표하는 용어로 자리하게 되었다. 때마침 중성적인 이미지로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종합병원'의 신은경, 핸섬하고 매력적인 용모로 여성팬들을 사로잡은 드라마 '느낌'의 이정재 등 70년대 초반 태생의 하이틴 스타들이 전국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X세대 돌풍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1993년-1994년 농구대잔치였다. 당시만 해도 기아자동차, 현대전자, 삼성전자 등과 같은 실업팀의 벽이 공고하게 쌓여져 있었다. 대학팀들이 패기만으로 실업팀을 넘어서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신장과 기량을 갖춘 X세대 신입생들의 연속 등장은 농구판의 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통곡의 벽처럼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기아자동차의 아성은 1993-1994 농구대잔치에서 허물어졌다. 팀 창단 이후 최초로 8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당시 농구대잔치 돌풍의 핵심은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김훈 등을 앞세운 연세대였다. 예선에서 기아자동차도 연세대의 돌풍 앞에 무너지며 유일한 1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8강 플레이오프에서 기아자동차를 무너뜨린 팀은 다름 아닌 중앙대였다. 워낙 연세대의 돌풍이 거센 탓에 상대적으로 중앙대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물론 예선에서 7위로 턱걸이했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엔 무리였다.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KGC 김승기 감독이 사회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중앙대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앞세워 허재, 강동희, 김유택 등 노장에 의존하던 기아자동차를 무너뜨리는 이변을 연출했다. 당시 주축 멤버는 홍사붕, 김승기, 양경민, 김영만, 조동기, 김희선 등이었는데 결코 연세대나 고려대에 밀리지 않는 구성이었다.

중앙대는 상무와의 4강전에서도 공격농구 대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매 경기 화끈한 승부를 펼치면서 아쉽게 4강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지만 중앙대도 대학농구 열풍의 한 축을 차지하였다. 연세대가 우승을 거머쥐면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서 비껴나 있었지만 변방의 강자로 전혀 손색없는 활약을 펼쳤다.

당시 핵심 멤버 중의 한 명인 김승기는 182cm 86kg의 다부진 체격을 바탕으로 저돌적인 돌파를 즐기는 터프한 플레이를 펼쳤다. '터보가드'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김승기는 유달리 남성 팬의 비중이 높았던 선수였다. 중앙대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단해서 함께 입단한 '람보슈터' 문경은, 그리고 삼성전자의 간판인 '전자슈터' 김현준과 함께 삼각편대를 이뤄 우승의 꿈을 키웠으나 결승에서 전년도 농구대잔치 패배 속에 각성하고 나온 기아자동차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이후 상무에서 이상민, 문경은, 홍사붕, 조성원, 조동기 등과 함께 우승에 도전했지만 기아자동차, 연세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다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제대 후 프로농구가 출범하고 김승기의 본격적인 활약이 기대되었지만 용병제도가 도입되면서 개인기가 뛰어난 단신 외인가드의 활약과 골밑에서 점수를 쓸어 담는 외국인 센터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좀처럼 빛을 발하지 못하였다.

소속팀 삼성 썬더스도 프로 초기 하위권을 전전하는 부진의 늪에 빠져들었다. 반면에 연세대 시절부터 폭발적인 인기몰이와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던 이상민은 소속팀 현대에서 역대 최고의 용병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맥도웰, 신들린 슛감각을 과시하던 조성원, 궂은일을 도맡으며 결정적인 클러치 능력을 발휘하는 추승균과 콤비를 이뤄 2연속 우승을 거머쥐며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KGC 김승기 감독(왼쪽)과 삼성 이상민 감독이 파이팅을 외치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연합뉴스

김승기는 결국 나래의 가드 주희정과 트레이드 되며 팀 체질 개선의 희생양이 되었다. 주희정이 삼성에 합류한 이후 삼성은 상승세를 거듭하게 되고 결국 2000-2001 시즌 프로 무대 첫 우승의 영광을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더욱 초라한 입장에 처하게 된 김승기는 2002-2003 시즌 TG(전신 나래)에서 프로 데뷔 첫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다. 하지만 중심이 아닌 식스맨의 위치에서였다. 당시 팀은 신인 김주성과 노장 허재, 그리고 뛰어난 테크닉을 과시하던 용병 데이비드 잭슨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아마 시절의 명성에 비해 그는 식스맨으로서 묵묵히 선수 생활을 지속하며 마니아층에서만 기억되는 존재가 되었다. 프로농구에서 토종가드의 중심에는 이상민, 주희정, 김승현, 신기성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니아가 아니고선 그의 은퇴 소식도 제대로 접할 수 없을 만큼 조용히 코트를 떠난 그는 이후 코치로서 프로 무대와 연을 이어갔다. 지도자 생활의 첫 발을 내디디며 명장 전창진 감독과 함께 당시 최절정의 전력을 과시하던 동부와 인연을 맺은 건 제2의 인생을 맞이한 그에게 행운으로 작용하였다. 비록 중심은 아니었지만 코치로서 묵묵히 전창진 감독을 보좌한 그는 2007-2008 시즌 프로 무대 두 번째 우승을 맛보게 된다.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였다.

이후 전창진 감독과 감독과 코치로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던 그는 전창진 사단의 중심이 되었다. KT에서도 수석코치로서 전창진 감독을 보좌하다가 전창진 감독이 2015-2016 시즌을 앞두고 KGC인삼공사 감독으로 옮기게 되면서 함께 이동하게 된다. 당시에도 농구대잔치 시절 동기 또는 후배들인 문경은, 이상민, 김영만 등이 사령탑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워낙 전창진이라는 거물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수석코치인 그가 감독으로 올라서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전창진 감독이 도박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면서 (결국 무혐의로 판명되었지만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어쩔 수 없이 지휘봉을 내려놓게 되고, 그는 예상치 못하게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다. 팀의 분위기를 파악하기도 전에 급작스럽게 팀을 이끄는 위치에 놓였지만 그는 팀을 잘 추슬렀고, 감독대행 첫해 4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KGC 및 삼성 선수와 감독들이 트로피에 손을 얹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연합뉴스

그 성과를 바탕으로 올 시즌 김승기는 KGC인삼공사의 정식 감독으로 취임한다. 시즌 초반 동기 라이벌 이상민 감독이 이끄는 삼성이 선두를 질주하며 돌풍을 일으킨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 정규 시즌 정상에 오른 팀은 묵묵히 페이스를 지킨 KGC였다. 올 시즌 KGC가 보여준 행보는 마치 김승기 감독의 인생 여정과 흡사해 보인다.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는 비껴나 있었지만 묵묵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웃게 되는 모습이 김승기 감독이 선수, 코치를 거쳐 감독에 오르는 과정과 흡사했다.

이제 과연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을지 결정의 무대가 막이 오르게 된다. 상대는 공교롭게도 아마 시절, 프로 데뷔 초반 자신과 극명하게 꽃길을 걸어온 이상민 감독이 이끄는 삼성 썬더스이다. 그리고 삼성 썬더스의 주전 가드는 아직도 주희정이다. 물론 주희정도 KG, SK 등을 거쳐 다시 친정으로 복귀했지만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선수 시절 자신과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승승장구한 주희정에게 김승기 감독은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할 수도 있다.

터보가드에서 잊힌 존재로 그리고 지도자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김승기 감독이 과연 선수 시절 자신에게 의도치 않게 쓰라림을 안겨준 이상민 감독과 주희정을 상대로 KBL의 새로운 역사(선수, 코치, 감독으로서 모두 우승을 경험)를 쓰게 될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이번 KBL 챔피언 결정전을 보는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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