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유권자들이 보기에 두 번째 TV토론이었던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이 진행됐다. 애초의 이해할 수 없었던 논란과는 달리 모든 후보들이 보조의자를 이용하지 않고 2시간 동안 선 채로 토론에 임했다. 물론 ‘스탠딩 토론’이라면서 가만히 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했다는 평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특정 후보를 “2시간도 서 있지 못하는 사람”이라며 비난한 정치 세력들은 그런 식의 저질 공방을 주도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이외에 KBS의 운영 미숙 역시도 지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토론 내용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 하더라도 후보자들끼리 ‘룰’을 놓고 충돌하면 중재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아야 했다. 실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룰 문제를 놓고 입씨름을 벌였지만 시청자가 보기에 사회자의 대응은 지나치게 느리고 한가했다.

지난 SBS 토론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던 안철수 후보는 일부 개선된 모습을 보여줬다. 지나치게 경직된 상태로 보였던 지난번과는 달리 자연스러워진 표정과 차분한 답변 태도가 돋보였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란 말을 상기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안철수 후보는 토론 시작부터 논란이 된 벽보의 포즈를 재연하며 “국민이 이긴다”고 외쳤는데, 여기까진 애교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1번과 2번 중 하나의 버튼을 선택해 눌러달라는 사회자의 발언에 “3번은 없는가”라고 되묻고 남은 발언 시간이 4초라고 하자 웃으며 “4초 동안 뭘 말하지”라고 혼잣말을 하는 모습 등은 유권자들에게 ‘실없는 사람’으로 비춰졌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지난 토론에서 논란이 됐던 학제개편 문제에 대해 여전히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한 것은 문제다. 안철수 후보가 이날 내놓은 논리는 지금까지 모든 교육개혁의 시도가 실패했기 때문에 이제는 학제개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발언은 여전히 교육개혁을 이루기 위해 왜 학제개편이 필요한지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되지 못한다.

학제개편은 결국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2년간 직업교육 또는 진로탐색 등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정확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가 4차산업혁명을 언급하면서 이런 주장을 하고 있지만 정작 조기 직업교육은 산업화 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적 특성에서는 학벌주의와 대학서열화 문제부터 해소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국가가 개입해선 안 된다는 수준의 원론적 얘기 외의 대책을 말하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학제개편은 실험적으로 그냥 해볼 수 있는 성격의 정책이 아니다.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다.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면 쉽게 손대서는 안 된다는 게 상식이다. 안철수 후보는 지난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 역시 문제적이다.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에 앞서 대선후보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후보 등의 주장은 학제개편을 실시해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앞당기게 되면 필연적으로 한 해에 두 개 학년의 입학이 이뤄져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이에 대해 “학제 개편에 따라 1년 더 빨리 입학하면 12개월이 아니라 15개월 치 학생이 한꺼번에 입학한다. 그러면 4년 정도 지나면 무리 없이 제대로 학제 개편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심상정 후보의 다른 질문이 이어지는 바람에 추가 설명이 없어 정확히 확인하기 힘드나, 동년 1월부터 12월생이 한 학년에 입학하는 현재의 제도를 1월부터 다음해 3월생까지 한 학년에 입학시키는 것으로 바꾸고 이를 4년 간 적용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 해 입학 인원이 2개 년도에 걸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학제개편으로 인한 혼란을 겪게 될 학생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건 마찬가지이므로 현재도 부족한 교실과 교사 수급 상황이 여전히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한 개 학년의 나이를 같이 맞추는 게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풍토에서 혼란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과연 무엇을 위해 이런 혼란을 감수해야 하는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물어야 할 것을 유승민 후보에게 묻거나 맥락에서 이탈해 지지자들이 한 행위에 대한 입장을 묻는 등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이런 발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효과를 떠나서 토론 기술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1위 후보로서 집중포화를 받는 상황이라는 점과 실제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이 높은 상태에서 현실적 부분을 감안해야 할 점이 많은 처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선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보수후보들이 고질적인 ‘색깔론’을 마치 사상검증처럼 제기하는 와중에 중심을 잡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좀 더 유려한 토론 기술을 보여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외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은 유승민 후보가 제기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확대와 관련한 대목이다. 여전히 가장 깔끔한 답은 요율을 인상하거나 세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는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기를 거부하면서 2015년 국회에서 공무원 연금 개혁을 다룰 당시 합의안을 언급했다.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승민 후보는 보다 정확한 입장을 요구하였으나 문재인 후보는 “합의한 걸 지켜야 한다”며 기존의 답변을 유지했다.

그러나 당시 국회에서의 합의는 말 그대로 여당과 야당이 서로 입장을 양보해 합의한 것에 불과하다. 대통령 후보로서는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문재인 후보가 위의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국민연금을 더 내라고 할 수도 없고 ‘증세’ 논란에 휘말릴 수도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오히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통치철학론’이 ‘정답’이었을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두 번째 대선 TV토론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대선 토론은 사상 첫 스탠딩 토론으로 진행됐다.(서울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지난 토론과는 달리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북 문제 외의 주제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지 못하는 상태로 일관한 것이다.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의 주특기인 노동문제와 복지정책에 대한 견해를 충분히 알리는 데 실패했다. 문재인 후보에게 민주정부 10년의 노동정책에 대한 질문을 던졌으나 “잘하겠다”는 취지 이상의 답변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특히 후반부 문재인 후보의 ‘복지공약 후퇴론’을 제기한 것은 상당한 문제였다. 주장을 제기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확한 내용을 파고들지 못하고 ‘정치에 대한 신뢰’ 등을 언급하며 사실상 수사를 동원해 넘어 가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확실한 공격 포인트가 아닌 부분을 굳이 언급하고 눙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고 도의에도 맞지 않다.

‘보수 적자’를 자처하는 유승민 후보와 홍준표 후보는 대북문제를 중심으로 다른 후보들에게 공세를 퍼부었으나 이 때문에 ‘무리수’를 두는 모습을 다수 노출했다. 이미 철지난 문제인 참여정부의 대북송금특검 등을 논한 것은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언급해 ‘현안’이 돼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치더라도, 문재인 후보를 향해 “북한이 주적이냐”는 등의 질문을 던진 것은 사상검증에 가깝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유승민 후보는 사실상 가능하지 않은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까지 주장했다. ‘합리적 보수’의 ‘합리성’이 실종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홍준표 후보는 평소 지론대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줬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원권 정지 등의 문제를 거론하는 유승민 후보를 향해 “이정희 후보를 보는 것 같다”, “주적은 저기다”고 발언한 것은 이 토론에서 홍준표 후보가 내놓은 발언의 백미였다.

무례한 발언을 계속하는 것에는 정치적 계산이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이정희 민주노동당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강하게 비판하고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홍준표 후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유승민 후보는 자신을 비판하다가 결국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할 수 있으므로 보수의 적자는 자신뿐이라는 거다. 과연 그의 무례한 신호를 대구경북의 보수적 유권자들이 ‘캐치’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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