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표’는 오랫동안 한국 정치의 논쟁거리였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시 한나라당이 제기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이 논쟁은 최근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씨가 영화 <더 플랜>을 제작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2012년 치러진 지난 대통령 선거 결과는 야권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다소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보였음에도 박근혜 후보가 100만 표 이상의 표차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해 그야말로 여당 대 야당의 양자구도를 형성했으나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다.

<더 플랜>은 당시 상황에 대한 의구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2012년 대선 당시 개표 결과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투표지 분류기가 판독에 성공한 표(분류표)와 그렇지 않은 표(미분류표) 사이의 득표에 유의미한 차이가 나고, 이는 결국 투표지 분류기의 해킹 가능성을 나타낸다는 게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미분류표에서 박근혜 후보가 더 많은 득표를 했다는 것이다. 모든 투표소의 득표 결과를 놓고 보면, 미분류표 부분에서 박근혜 후보 득표 수를 문재인 후보 득표 수로 나눈 값을 분류표 부분에서 박근혜 후보 득표 수를 문재인 후보 득표 수로 나눈 값과 비교해보면 평균 1.5배 차이가 난다. 모든 투표소에서 이 작업을 진행한 후 통계처리를 하면 평균값이 1.5인 정규분포 그래프가 그려진다. 영화에서는 이에 대해 “번개를 두 번 맞을 확률”이라고 주장한다.

영화 <더 플랜> 포스터

이 대목은 이 영화의 이후 모든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 중 핵심이다. 그러나 “번개를 두 번 맞을 확률”의 의미가 무엇인지 보다 정확하게 해명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 “번개를 두 번 맞을 확률”이란 분류표와 미분류표의 조건을 동일하게 통제된 조건에서 앞의 공식을 독립적으로 적용할 경우 1과 1.5가 연달아 나올 확률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투표지 분류기가 투표용지의 기표를 제대로 판독하지 못한 이유가 박근혜 후보의 득표 자체와 연관이 있다면 “번개를 두 번 맞을 확률”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게 된다. “정규분포 그래프가 그려진다”는 말은 충분한 수의 표본이 서로 독립적으로 산포돼있다는 뜻일 뿐이다. 통계학의 ‘중심극한정리’다.

<더 플랜>이 공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는 반론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큰 노인층이 기표실수를 상대적으로 많이 저질러 투표지 분류기가 이를 판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기표용지의 형태 덕에 기호 1번에 해당하는 후보가 기표오류의 상황에서 더 많은 수혜를 입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2012년 대선은 무기명 투표로 진행됐기 때문에 추론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후자의 경우는 미분류표의 투표용지 실물을 확보한다면 일정 수준 이상에서 검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반론이 가능함에도 영화는 이 상황을 바로 “투표지분류기는 해킹이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연결한다. “해킹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입증’이 아니라 해킹된 투표지 분류기의 오작동을 시연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투표지 분류기도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이니 해킹을 한다면 오작동을 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해킹이 실제로 일어났느냐 혹은 그럴 조건이 갖춰져 있었느냐는 것이지만 영화는 이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합리적으로 따져볼 수 있는 논점을 건너뛰고 오로지 ‘가능성’을 논할 수밖에 없는 단계로 나아가 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 구조는 오늘날 다양한 영역의 소재를 대상으로 형성된 음모론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즉, <더 플랜>은 어쩔 수 없이 정치를 소재로 한 음모론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실제 개표소에 가보면 해킹된 투표지 분류기가 오작동하는 장면을 개표 참관인들이 놓치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된다. 개표 참관인은 각 당에서 추천하도록 돼있거니와 투표지 분류기가 기호별로 분류한 표는 사람이 수작업으로 다시 확인토록 돼있기 때문이다. 소소한 오류는 있을 수 있지만 당락을 바꿀 만큼의 의도적 오차가 생기는 것은 이러한 절차 하에서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시민의 불안을 해소시켜야 할 이유가 있다면 개표참관인의 숫자를 늘리고 사전교육을 철저히 하며 투표지분류기의 작동 속도를 다소 늦추는 것 정도로도 보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보완책을 언급하면 ‘수개표’를 절실히 주장하는 이들은 “그냥 투표지 분류기를 쓰지 않으면 끝나는 일 아닌가”라는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믿지 못할 투표지 분류기를 계속 사용하자는 이유는 개표 결과를 조작하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주장하는 사람의 의도를 넘겨짚는 전형적 논리를 반복할지도 모르겠다.

투표지 분류기를 사용하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오직 사람에 의존할 경우 오히려 개표 결과 오류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사람이 기계보다 완벽하지 않아서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표 절차 자체가 늘어지는 문제가 불안감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 개표 과정에 개입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투표지 분류기 해킹보다는 개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 기회로 삼는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영화 <더 플랜> 스틸 이미지

이런 점으로 볼 때 <더 플랜> 등이 내놓고 있는 ‘수개표’ 주장은 거기에 담긴 주관적 선의를 인정하더라도, ‘악의’를 가진 사람 또는 세력의 영향력을 오히려 더 확대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제작에 관계한 이들이 이 사건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면 앞으로는 보다 생산적이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개표’를 비롯한 일련의 음모론적 주장들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고찰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정치와 언론에 속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고, 기득권은 실제로 그렇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한다. 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덕분에 우리는 영화보다 더한 현실이 실존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음모론적 세계관은 이런 조건 속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의 틀을 잠식한다.

기득권이 우릴 속이는 게 분명하다면, 이들로부터 지배를 당하고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속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이런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아직 속기도 전에 앞으로 속일 것으로 예상되는 대상에 대한 무차별적 복수를 감행하도록 한다. 그러나 오직 이를 반복하는 것으로 세상은 나아지지 않는다. 속아 넘어가는 와중에라도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는 노력, 즉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갖추기 위한 시도는 언제나 계속되어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아니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공론’으로서 다루고 정치가 이를 반영할 때에야 우리는 파편화된 일상을 재건할 수 있다. 이런 조건이 갖춰질 때에야 음모론은 자기 자리를 제대로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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