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방송의 채널번호를 주변부로 돌려 기득권을 없애야 한다. 지상파방송 4개 채널을 3번, 15번 등 주변 번호로 옮겨 낮은 채널대의 활용도를 넓히고, 그 사이사이에 종편채널과 홈쇼핑채널을 배치해 상호 시너지 효과를 높여야 한다”<12월 15일 한겨레 1면 기사 중>

“1개 종편 사업자만으로 기존 지상파방송의 독점과 구조를 완화할 수 없고 지상파의 위세에 눌려 유명무실화될 수 있다. 다수 사업자 구도가 되는 것이 종편 활성화는 물론 전체 방송산업의 파이를 키우는데 유리하다”<12월 15일 중앙일보 8면 기사 중>

위 내용은 지난 14일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주최한 ‘종합편성채널 활성화 방안-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나온 박천일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의 주장이다.

방통위의 내년 초 종합편성채널의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세제혜택’, ‘황금채널’, ‘SO의 의무재전송’ 등의 혜택들이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상파 채널 자리를 종편채널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큰 ‘혜택’은 없다”란 말이 어울리는 종편특혜의 완전판이라 할 만 하다.

이 같은 주장에 흥분한 쪽은 역시나 ‘조중동’이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지면에 이 같은 내용을 싣기에 바빴다.

조중동, 발제문 싣기에 바쁘고…“종편 달라”

<조선일보>는 이를 14일자 신문에서 “새 종편 채널, 낮은 번호대에 배치하자”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토론회의 뚜껑이 열리기도 전에 발제문만 가지고 써내려간 것이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케이블방송에서는 KBS, MBC, SBS 등은 굳이 지금처럼 6번(SBS), 7번(KBS2), 9번(KBS1), 11번(MBC)이라는 번호를 부여하지 않아도 시청자들이 알아서 찾아간다”며 이 같은 주장을 자세히 실었다. <동아일보>도 14일자 신문에 이 같은 내용을 그대로 실었다.

▲ 지난 14일자 8면 조선일보 기사

<중앙일보>는 앞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보다 한 수(?) 높은 모습을 보여줬다. 15일자 신문에서 <중앙일보>는 박천일 교수의 말을 인용해 “종편 선정 기준은 산업적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화를 위한 자본력과 외국 제작자본이 투자하는 컨소시엄 구성력이 핵심이다. 선진국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실질적인 자본 참여가 있는 컨소시엄에 대해서는 가산점을 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지난 10월 29일자 중앙일보 기사
이는 누구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당연 <중앙일보> 자신이다. 지난 10월 29일자 <중앙일보>는 이미 “중앙일보가 추진 중인 종합편성채널 방송 진출을 위한 컨소시엄에 미국 타임워너 그룹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한 바 있기도 하다. 이어 <중앙일보>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1개 종편 사업자는 지상파의 위세에 눌려 유명무실화될 수 있다”면서 “다수 사업자 구도”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속내를 드러내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는가 싶다. 노골적으로 종편의 주인은 ‘나’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면 별 뜻은 없다.

한겨레, “종편은 도입 근거 자체가 뚜렷치 않아”

그러나 조중동이 흥분하기 전에 해결해야하는 점이 있는 듯하다. <한겨레>는 이날 ‘그렇게 특혜를 줘야 종편이 살 수 있나’ 사설에서 “현재 정부의 방송정책은 모두 종편 육성으로 모아진다 싶을 정도로 편향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설에서 <한겨레>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1월 확정한 ‘1공영 다민영’의 미디어렙방안에서 종편채널에는 독자 광고 영업을 허용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국내결혼중개업의 방송 광고를 허용해 종편의 광고기반을 넓혔다”, “KBS의 수신료 인상도 종편의 광고 기반 확대와 맞물려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겨레>는 “정부가 특정 매체를 지원하면 경쟁 매체는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기 마련”이라면서 “그래서 새 산업 창출이나 기술 기반 확보 같은 산업 효과 또는 이용자 편익 증대의 공익성이 없다면, 특정 매체 지원책은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나 종편은 도입 근거 자체가 뚜렷하지 않다”면서 “내용은 기존 지상파 방송과 다르지 않고, 기술적으로도 새로울 것이 없기에 산업적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기껏 값비싼 외제 방송장비 수입 경쟁만 유발할 뿐”이라고 정부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종편이 조중동에 가기 전 정부에서 답해야 할 것?

실제 <한겨레>에서 지적했듯 종편에 대한 정부의 특혜의 범위는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지만 ‘왜’ 특혜를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없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지난 정기국회 기간에 “신규사업자가 시장에 나와서 안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정부의 합법적인 지원은 모든 시책에서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말에도 ‘왜’에 대한 부분은 없다. 단지 이 말을 정리하면 정부에서 “조중동에게 방송을 주기 위해” 추진하는 종편 안착을 위한 특혜일 뿐이란 뜻이다. 조중동이 이날 토론회 기사를 쏟아냈던 것 역시 이 종편이 자기에게 떨어지기를 바라는 사심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 지난 12월 15일자 한겨레 사설

이날 토론을 맡은 박천일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신문사의 요구를 받은 적은 없다. 학자로서 미디어산업에 대한 소신을 밝힌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토론회를 주최한 고흥길 위원장도 “기업과 언론이 종편에 관심이 많아 토론회를 연 것이지 의도된 방향으로 끌고 간 것은 없다”고 했는데 얼마만큼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선기간 이명박 캠프에서 언론분야 정책자문을 맡았던 박 교수를 발제자로 부르고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게 고흥길 위원장의 말이다.

실제 고흥길 위원장은 이 같은 박 교수의 발제를 듣고 “앞으로 입법을 하거나 방통위에서 심사 기준을 만들 때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정부여당이 추진할 종편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진다. 종편에 무한한 특혜를 주겠다는 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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