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MBC 사장이 신임 경영진 선임과 관련한 논의를 위해 각 부문별로 2배수 압축한 후임 인사 명단을 15일 오전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 이하 방문진)에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방문진은 임시 이사회 연기를 이유로 명단을 MBC로 되돌려 보냈다.

MBC 대주주인 방문진은 당초 이날 오전 8시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임시이사회를 열어 신임 편성본부장, TV제작본부장, 보도본부장, 경영본부장 명단을 확정할 예정이었다. 방문진은 그러나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이근행) 노조원들의 저지와 김우룡 이사장과 엄기영 사장이 새 경영진 인사안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이사회를 연기를 결정했다.

김 이사장과 엄 사장은 신임 경영진 선임과 관련해 지난 14일 밤늦게까지 단일안에 가까운 협의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으나, 오늘 아침 엄 사장이 사실상 전원 교체에 이르는 새 인사안을 요구하면서 단일안이 무산됐다.

▲ 엄기영 사장이 15일 오전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장에게 말하고 있다. ⓒ송선영
“MBC로부터 온 명단, 이사회 연기로 다시 돌려보내”

차기환 방문진 이사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MBC에서 오늘 오전, 방문진 사무처로 (신임 경영진 인사와 관련해) 2배수로 압축한 명단을 건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과 엄 사장만 명단을 알고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래야 정상인데, MBC 직원들 일부가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문진 관계자도 이에 대해 “(명단이 왔으나) 이사회 자체가 연기되었기 때문에 이사회 안건이었던 명단을 MBC로 돌려보냈다”며 “이 명단이 엄 사장이 오늘 아침 들고 온 새 인사안이 담긴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엄 사장이 방문진 쪽에 보낸 ‘2배수 명단’이 김 이사장과 엄 사장이 ‘협의’ 아래 만들어진 것인지, 엄 사장이 오늘 오전 요구한 새 인사안에 따른 것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우룡 이사장은 “아무것도 받은 게 없고,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방문진 이사들은 오늘 오전 이사회 연기를 결정한 뒤 코리아나호텔에서 간담회를 진행했다. 노조 저지에 막혀 회의장으로 가지 못한 채 근처 커피숍에 있던 이사들은 MBC노조가 자진 해산한 뒤, 회의장으로 이동했다.

당시 참석했던 한 이사는 “인사와 관련해, 엄 사장은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달라는 취지로 말했고, 이에 김 이사장은 존중해줘야 하지만 이쪽 입장도 있다는 것이 반영돼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전한 뒤 “김 이사장과 엄 사장의 협의가 끝나지 않았기에 최종안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방문진은 오는 16일 이사회를 진행한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내년 사업계획 등 당초 예정되어 있던 안건만 상정하며, MBC 경영진 선임과 관련한 안건은 논의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 MBC노조가 15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선영
MBC노조 “김우룡과 엄기영이 임명한 후임 이사진, 인정할 수 없다”

이사회 연기와 관련해 MBC노조는 오늘 오후 성명을 통해 “어제 만해도 김우룡 이사장은 ‘엄기영 사장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엄사장과 협의하겠다’며 형식적인 예의라도 차리는 듯 보이더니, 오늘 아침 결국 왕회장 노릇은 포기할 수 없다는 본심을 드러냈다”며 “엄기영 사장의 인선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방문진 이사회를 결렬시키고 임시 주총도 연기해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김우룡은 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자의적으로 인사권을 남용해 공영방송 MBC의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엄기영은 이미 무기력하게 굴복함으로써 ‘식물 사장’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며 “이들이 임명한 후임 이사진을 공영방송을 이끌어갈 경영진으로서 인정할 수 없고, MBC에 한 발작도 들여놓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