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기아의 한계와 고민, 그리고 희망까지 모두 담긴 경기였다. 수년 동안 넥센에게 좀처럼 압승을 거두지 못한 기아가 시즌 시작과 함께 넥센과 첫 3연전에서 스윕을 했다. 무려 4년 8개월 만의 넥센전 스윕이었다. 약세를 보이던 삼성과도 좋은 경기력을 보인 기아. 하지만 여전히 4선발과 불펜은 올 시즌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이 되고 말았다.

살아나기 시작한 버나디나, 안치홍의 극적인 안타, 경기를 지배하다

홍건희로서는 이번 경기는 무척 중요했다. 지난 두 경기를 만회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부터 성장 가능성을 보이며 올 시즌 선발 한 축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가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선발 자원으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너무 충격적이다.

앞선 두 경기에 비해 이번 경기는 그나마 조금은 좋아졌다. 빠른 승부를 했고, 이런 승부는 두 경기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발 자원으로 활용하기에는 명확한 한계도 보였다. 단조로움은 결과적으로 긴 이닝을 승부할 수 있는 선발로서 가치를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KIA 타이거즈 선발 홍건희 (연합뉴스 자료사진)

선취점은 기아의 몫이었다. 버나디나가 제구력이 좋은 신재영을 상대로 볼넷을 얻자 곧바로 2루 도루를 성공시켰다. 뛰어난 스피드와 센스까지 갖춘 그의 도루 능력은 올 시즌 몇 개를 기록할지 궁금할 정도다. 이명기의 희생번트와 신종길의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가볍게 선취점을 뽑은 기아는 결국 선발로 나선 홍건희에게 달렸다.

다른 경기와 달리 홍건희는 3회까지는 좋았다. 4개의 삼진을 잡으며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해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4회는 마의 벽이 되고 말았다. 윤석민에게 안타를 맞은 후 김민성에게 동점 2루타, 김하성은 야수 선택으로 진루를 하고 김웅빈의 우중간 2루타를 또 맞으며 1-3으로 역전이 되고 말았다.

넥센 타자들은 타순이 한 바퀴 돌자 홍건희를 통타하기 시작했다. 홍건희는 이번 경기에서도 5이닝을 마치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4와 1/3이닝 동안 86개의 투구수로 8피안타, 6탈삼진, 무사사구, 3실점을 했다. 그나마 이번 고무적이었던 것은 무사사구 경기를 했다는 점이다. 비록 많은 안타를 내주기는 했지만 앞선 두 번의 경기보다 좋아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다.

홍건희가 내려가면서부터 기아의 악몽은 언제나처럼 재현되었다. 기아 벤치는 다시 손영민을 올렸지만 홍건희가 내보낸 주자를 포수 김민식이 잡아내고 윤석민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내는 것까지만 좋았다. 이후 손영민은 넥센 타자들에게 통타를 당하며 2실점을 했다.

제구력도 볼 스피드도 좋지 않은 손영민이 과연 올 시즌 기아에서 불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불펜 자원들이 초반 제 역할을 전혀 해주지 못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 공으로 상대를 압박하기는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KIA 타이거즈 안치홍 (연합뉴스 자료사진)

1-5까지 밀린 경기는 6회 3득점으로 하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5회까지 적은 투구수로 기아 타선을 압도하던 신재영은 6회 갑작스럽게 난타를 당하기 시작했다. 버나디나와 이명기의 연속 안타가 주효했고, 이후 최형우와 안치홍의 연속 안타는 타점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김민식까지 적시타를 치며 경기는 4-5 한 점차 승부가 되고 말았다. 서동욱의 아쉬운 파울 홈런이 더욱 아쉽게 다가온 6회였다.

신재영은 6이닝 동안 72개의 공으로 7피안타, 3탈삼진, 1사사구, 4실점을 하고 말았다. 5회까지 너무 좋았던 신재영이라는 점에서 본인이나 넥센 모두에 아쉬움이 남는 6회였을 듯하다. 6회 가능성을 보인 기아의 반격은 7회에도 이어졌다.

기아는 쉬고 있던 타자들을 대타로 불러내기 시작했다. 김주찬이 7회 나서 안타를 쳐주고 1사 상황에서 이명기가 안타로 출루했다. 대타로 나선 김선빈이 2루 직선타로 물러나는 순간 1루 주자였던 이명기가 병살을 당하지 않은 것이 이번 경기의 분수령이었다. 이 플레이 하나가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최형우를 볼넷으로 거르며 안치홍을 선택한 넥센은 악수를 두었다. 김상수를 상대로 안치홍이 역전 2타점 적시타를 쳐냈기 때문이다. 약간 높게 제구된 공을 놓치지 않고 역전으로 이끈 안치홍은 이번 경기의 MVP였다. 8회에는 버나디나가 의도적으로 외야 높은 희생 플라이를 만들어내며 추가점을 뽑았다.

9회 1실점을 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버나디나의 이 희생 플라이가 결정적인 승리의 한 방이었다. 기아는 타선의 응집력과 폭발력으로 역전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불펜은 이번에도 엉망이었다. 박지훈이 1과 2/3이닝 동안 무실점을 잘 틀어막으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심동섭 역시 위기 상황에서 넥센을 잘 틀어 막아주기는 했지만 박지훈과 심동섭을 제외하고는 엉망이었다.

임창용은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고 볼넷을 내주자 감독이 직접 나와 교체를 했다. 심동섭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팀은 역전도 했다. 심동섭이 9회 아웃 카운트를 하나 잡은 상황에서 기아 벤치는 투수 교체를 했다. 1이닝만 투구하도록 한 셈이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심동섭을 더 밀어붙였어도 좋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기아 벤치는 마무리 역할을 해주고 있는 김윤동에게 다시 마무리를 맡겼다. 두 타자만 잡으면 세이브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1사에 주자도 없고 2점을 앞선 상황이었다. 편하게 승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14년 신시내티에서 활약하던 때의 로저 버나디나. [AP=연합뉴스]

두 경기 세이브를 올리며 새로운 역할에 잘 적응하는 듯했던 김윤동은 2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지 못했다. 안타 하나에 볼넷 2개를 연속으로 내주며 만루 상황을 만들고 말았으니 말이다. 실점까지 하며 만루 상황을 만들자 기아 벤치는 다시 한승혁을 올렸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한승혁은 김웅빈을 2루 땅볼로 잡아내며 위기를 벗어나고 세이브도 올렸다. 결과적으로 기아가 한 점차 짜릿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현재의 불펜 자원으로는 긴 승부를 하기 어렵다. 이들이 어느 순간 영점이 잡히고 효과적인 피칭을 할 수도 있겠지만 현 전력이 한 시즌 그대로 이어진다면 기아는 결코 우승할 수 없다.

대대적인 개혁이나 불펜 투수들의 각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기아가 5연승을 달리며 좋은 기운에 의해 불펜이 조금 묻히고 있기는 하지만 불펜의 불안은 강력한 뇌관이다. 이는 기아의 전력이 하강하는 순간 가속도를 붙이며 의외의 고전을 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버나디나는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시즌 초반 좀처럼 안타를 만들어내지 못하던 그가 조금씩 출루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른 발과 센스로 연신 도루를 한다. 또한 좋은 주루 플레이를 선사하기도 했다. 이런 공격적인 면만이 아니라 이번 경기에서도 강건으로 탁월한 수비 능력을 선사했다.

3회 고종욱의 안타에 박동원이 홈까지 파고드는 과정에서 버나디나의 레이저 송구는 엄청났다. 완벽하게 포수에게 원바운드로 이어진 이 송구는 동점을 막는 결정적 한 방이었다. 빠른 발로 수비 범위도 넓은 버나디나가 어깨도 좋다는 사실은 최고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8회 팀 플레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외야 희생플라이를 만들어내는 그는 올 시즌 상상 이상의 활약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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