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SBS에서 방영된 첫 TV토론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이 한동안 조정기를 거칠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이다. TV토론 역시도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더 잘한 걸로 보이는 ‘착시’가 있을 수밖에 없으나, 안철수 후보의 토론 실력과 태도는 그러한 착시를 고려하더라도 다소 문제적이었다.

안철수 후보의 문제는 자신이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책을 남에게 설명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는 거다. 안철수 후보의 정책 공약 중 이날 가장 큰 논란이 된 학제개편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교육 개혁의 거시적 모델과 학제개편이라는 구체적 정책 공약이 뒤섞여 서술됐다.

예를 들면 문재인 후보의 “다음 정부에서 학제개편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다음 정부에서 시작해서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답한 대목이다. 일반적 관점으로 볼 때 학제개편은 결국 특정 시점에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 점진적으로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는 언급을 했지만 또 학제개편이라는 정책의 특성상 어떤 방식으로 시범사업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점진적 개혁”,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합의”, “사회적 협의의 첫 모델” 등의 추상적 어휘 속에서 그런 대목에 대한 구체적 상을 잡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이 대목에 대한 반론은 유승민 후보의 주장을 참고할만하다. 유승민 후보는 안철수 후보의 학제개편 공약이 교육 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현재 학제 내에서도 공교육 혁신을 통해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거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론하려면 안철수 후보가 주장하는 교육 개혁의 목표와 학제개편의 논리적 연결고리를 정확히 설명해야 하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

몇 가지 준비된 논리를 암기식으로 반복한 것처럼 보인 것도 ‘마이너스’ 요소였다. 이를테면 “적폐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격에 대해 “촛불시위를 북한이 긍정적으로 보도하면 촛불 시위는 북한에 가까운 게 되는 거냐”고 답한 게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이 아니라 자유한국당 등 구 여권 세력이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하고 있다는 주장임을 재론했음에도 같은 논리를 반복한 것은 순발력 부족으로 비춰졌다.

안철수 후보는 박근혜 정부의 탄생에 공이 있는 사람이 캠프에 가 있지 않느냐고도 반문하였는데, 이는 김광두 서강대 교수 등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광두 교수의 경우 박근혜 캠프에 결합해 ‘창조경제’ 등의 공약을 만들었지만 이후 국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이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어떤 정체성 논쟁이라면 모를까, 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을 핵심으로 하는 ‘적폐 논쟁’에서 김광두 교수의 사례를 공세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 사실은 “현실 정치에서 보수세력이 나를 지지하는 것은 막을 수 없으나 비합리적 요구를 받아들이진 않겠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부수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았다.

SBS와 한국기자협회 공동으로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 타워에서 열린 '2017 국민의 선택,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왼쪽부터),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대적으로 돋보인 후보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였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자기 자신의 생각이 제대로 잘 정리돼 있고 정책적 쟁점을 분명히 소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대북정책이란 대목에서 거의 ‘묻지마’ 수준의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통치’에 필요한 기본 능력을 가장 잘 갖춘 후보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 보호가 대북정책 외의 아쉬운 점은 기자협회 소속 기자의 공영방송의 역할과 해직 언론인 등에 대한 추가 질문에 대해 답변한 부분이다. 유승민 후보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잘한 게 없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KBS를 정치권력이 좌지우지한 것은 똑같았다”면서 “KBS, MBC, YTN의 정치적 독립은 확실히 보장한다는 일관된 철학을 갖고 있다”고 답했는데 이는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부실한 답변이다.

물론 문재인, 심상정 후보를 제외하면 다른 후보들도 대안에 가까운 답변을 내놓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특히 유승민 후보를 문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2007년 4월 불거진 이른바 ‘강동순 녹취록’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강동순 당시 방송위원이 KBS 심의위원, 전 경인TV 대표 등과 동석한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방송에 대한 정파적 인식을 드러내며 ‘정권교체’를 위한 대책을 모의한 것이다. 유승민 후보가 “일관된 철학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당시 상황에 대한 자기평가가 새롭게 있어야 한다.

본래 진보정당의 강점을 잘 살린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토론 내용도 평가할만했다. 심상정 후보는 다소 저돌적인 태도로 다른 후보들과의 각을 세우며 정책적 차별화를 꾀했다. 전략적인 포지셔닝으로 해석되는 대목도 있었다. 문재인 후보와 법인세 인상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인 것이다.

심상정 후보는 문재인 후보가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에 소극적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문재인 후보의 정확한 입장은 대기업 비과세 및 감면제도 정비를 통한 실효세율 인상 노력 등 이후에도 재원이 부족하면 과세표준 500억 원 이상 기업에 대해 명목세율을 25%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소극적이라고 평가할 순 있겠지만 세율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또 아니다. 참여정부 수준인 25%로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에 명분이 있는 것은 옳지만 ‘증세’를 강하게 언급하면 반발이 있을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대목은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30%까지 인상을 주장한 이재명 성남시장과의 직접적 갈등 요소가 되기도 했다. 심상정 후보가 문재인 후보의 이 부분을 문제 삼은 것은 정책적 차별화를 넘어 이재명 성남시장 지지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걸로 풀이된다.

그간 ‘토론을 못 한다’는 선입견의 대상이 돼온 문재인 후보의 경우, 이러한 우려를 어느 정도 벗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홍준표 후보와의 설전 이외에 인상에 남을만한 대목이 없었다는 것은 문제인데, 시간을 압축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는지 몇 가지 대목을 제외한 대개의 쟁점을 상대의 입장을 확인하는 정도의 질문이 이뤄진 부분이 많았다.

답변을 피해가는 모습이 너무 뻔히 드러난 대목도 문제다. 예를 들면 유승민 후보와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문제에 대한 문답이다. 결국 요율을 인상하거나 세입으로 충당하거나인데 갑자기 저출산 고령화 해결이라는 원론을 말하며 비켜갔다. 1위 후보로서의 ‘몸조심’으로 이해하기엔 지나치다.

어쨌든 이번이 첫 번째 TV토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후 토론 일정에서 각 후보별 부족한 부분이 보완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지난 정부의 문제가 국정에 아무런 철학도 없고 통치의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직을 맡은 것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후보자들이 TV토론에 성실히 임하는 것은 물론, 유권자들도 TV토론에서 드러난 후보자들의 철학과 비전을 토대로 표심을 결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이미지에 좌우하는 투표를 해서는 과거의 문제를 반복하는 꼴이 될 수 있다. TV토론을 자신이 갖고 있는 이념과 정책 지향에 맞는 후보를 선택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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