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SBS <SBS 인기가요>의 한장면이다.

일요일 오후 3시 30분. 가요프로그램을 보다가 상념에 빠졌다. 10년 만난 친구가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는 기분이다.

<SBS 인기가요>의 25일 출연진은 배슬기, 이루, 스톰, 체리필터, 이수영, 보이스원, M.C the Max, 은지원, VOS, 양동근, 빅뱅, 성시경,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박진영이었다.

이들 중 낯선 이름은 스톰밖에 없었다. 나머지 가수들은 알다 뿐이랴? 인생사를 줄줄이 꿰고 있다.

연습생 시절의 고생담부터 가수 데뷔 이후 실수담, 성공에 얽힌 뒷얘기, 그들의 친한 친구, 가족관계, 첫키스한 장소, 술버릇, 잠버릇, 멤버 중 친한 사이, 좋아하는 이성 스타일, 학창시절 일화, 기획사 사장님 이름, 요즘 고민, 앞으로의 목표 등을 대충 다 들어본 듯 하다. 이 정도면 자서전을 대신 써줄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딱 하나 모르는게 있다. 바로 그들의 노래다. 수도 없이 본 가수들이지만 노래를 몰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대표 히트곡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경우가 손으로 뽑을 만큼 적었다.

요즘 가수들이 사는 방식은 이러하다. 일단 오락프로그램에서 눈에 띄어야 한다. 솔로면 본인이 직접 뛰고, 그룹이면 예능 대표주자를 만든다. 웃기면 웃길수록 노래를 홍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지니 당연한 전략이다. 그렇게 인지도를 높이면서 신곡을 알린다.

시청자들은 가수들이 체육복입고 한두소절 부르는 것만 듣고 노래를 판단해야 해야 한다. 토크쇼 보며서 한창 웃다가 불쑥 듣는 노래로 도대체 무엇을 느끼겠는가?

갑자기 미안해졌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정식으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었다. 아이돌 그룹의 퍼포먼스를 제대로 즐기고, 발라드를 들으며 감상에 젖고 싶었다.

그리하여 TV편성표를 들여다봤다.

KBS <가요무대>, <뮤직뱅크>, <열린음악회>, <윤도현의 러브레터>, <콘서트 7080>, MBC <쇼!음악중심>, <가요큰잔치>, SBS <인기가요>, <음악공간>, EBS <공감>….

순위제도를 없애니 부활하니 하고 논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머쓱하다. 음악프로그램의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신인은 신인이라 갈곳이 없다. 한창 활동중인 젊은 가수들이 7080 무대에 오르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컴백한 박진영이 3사 오락프로그램만 돌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오락프로그램 출연 안하는 양동근 노래 들으려면 케이블을 찾는 게 빠르다.

같은 날 SBS <도전! 1000곡>에는 소녀시대와 바다새가 나와 노래를 불렀다. 그나마 어떤 세대가 나와 노래를 불러도 어색하지 않는 공간이다. 적어도 사생활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된다. 운이 좋으면 자신의 곡을 부를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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