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여 만에 만난 '10년 지기' B는 대학교를 관두고, 서울의 한 한의원에서 경리일을 맡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반가움의 표시로 군밤ㆍ치즈크러스트 피자ㆍ과자를 잔뜩 사줬다. 당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잘도 먹어댔다. 정직원으로서 '월급 100만원'인 친구가 사주는 음식을.

또 몇 년이 흘렀다. 나도 서울에서 직장을 잡게 됐다. 동시에 처음으로 사회에 내던져졌다. 그리고 알게 됐다. 월급 100만원의 의미를.

경제학자 우석훈과 월간 <말>지 기자 박권일은 <88만원 세대>에서 대한민국의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정의한다. IMF이후 10년간 급격하게 벌어지고 있는 '세대간 격차'를 외국의 변화와 비교하며, 이를 극복하지 못할시 우리 사회의 앞날이 어둡다고 경고한다. 현재 이 책은 발매 2개월 만에 4판째 찍어낼 정도로 반응이 좋다.

이쯤이면 '88만원 세대'가 뭐냐는 질문이 나오겠다. 당신, 혹시 20대인가? 그렇다면 이쪽으로 붙어라. 계산기 두들겨가며 당신과 나, 내 친구 B가 처한 현실 좀 들여다보자.

모든 세대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119만원이다. 여기에 20대의 평균 급여 비율 74%(0.74)를 곱해보시라. 아마도 계산기 창엔 '88.06'이란 숫자가 뜰 것이다. 88, 바로 비정규직인 20대의 평균 임금이다. 비정규직인 한 앞으로도 119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 죽! 을! 때! 까! 지! 88과 119사이. '88만원 세대'인 당신과 나, 이 시대의 수많은 B가 평생 동안 맴돌 숫자다.

우리가 어쩌다 이 꼴이 됐는지에 대해 책은 이렇게 말한다. 'IMF와 세계화와 같은 역사적ㆍ시대적 조건'과 함께 '세대간 착취의 결과'라고. 그래서일까. 인터넷 서점과 신문의 책 서평엔 "미안하다 20대야"라는, 윗세대들의 다소 생뚱맞은 사과(?)도 자주 보인다.

무한 경쟁 시대, IMF로 인한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변화. 우리 20대에겐, 이 모든 게 틈만 나면 매점에서 단팥빵 사먹던 '코찔찔이'때 일어났다. 철이 없던 나도, '경쟁'이란 단어는 항상 '반드시 이겨내야만 하는 것', '숙명과도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전 세대도 우리 세대만큼 '경쟁'이란 단어를 내면화해서 모든 것의 중심 가치로 삼아야 했을까?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끊임없이 내달려야 했을까?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책의 부제다. 하지만 미안하다. 책을 읽는 내내 이 몸은 "죽고 싶었다". 늘 느껴왔던, 우리 세대의 슬픈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지적은 송곳이 되어 가슴을 찔러댔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떡하란 말인가. 저자의 가르침대로 바리케이트(20대끼리의 연대)를 치고, 짱돌(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대한 공격)을 던질까? 스타벅스 가지 말고 20대 사장이 운영하는 커피점에 가는 식으로 연대하라고? 하지만 과연 20대 중 몇 명이나 이 말을 들어줄까? "20대의 적은 20대"라는 책의 지적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

아직은 모르겠다. 이 책이 꽤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차차 '바리케이트'와 '짱돌'에 대해 논의하면 될까? 우리는 언제쯤 이 '개미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88만원 세대'를 대표해 목놓아 외친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테테테테테테텔미! 플리즈."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