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서 요즘 안철수를 엄청 띄우고 있대서 잠시 감상할 겸 모처럼 조선일보 나들이를 했다. 그곳에서 내 눈길을 잡아 끈 건 4월 1일자 사설 <안철수 浮上이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피식 웃고 말았다. 너무 속이 빤히 들여다보여서다.

사설은 다음 4문단으로 구성돼 있다.

문재인이 독주하던 대선 판도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지지율이 급등했다. 큰 변화다.
이는 문재인 독선과 패권적 행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철수·홍준표·유승민의 단일화가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가 될 것이다.

갤럽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이 아직도 큰 폭으로 1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조선일보가 안철수 지지율이 급등했다며 함박웃음을 짓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재인만 막을 수 있다면 그가 누구든 활용할 수 있고 또 활용해야 한다는 게 조선일보의 일관된 방침 아니던가.

"문씨에 맞서 싸우려면 문씨를 두려워하고 그의 노선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씨와 비슷해질 것이 아니라 문씨의 대척점에 서서 '문재인이 아닌 것' 즉 anything but Moon의 길로 가야 한다..." (김대중 고문, <'문재인 아닌 것'의 연합>, 2017.01.31)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오른쪽)가 31일 오후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영남권역 선출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뒤 안희정 충남지사와 개표 결과를 들으며 상반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한때 문재인 대항마로 안희정을 띄웠던 조선일보가, 민주당 경선에서 안희정 거품이 빠지자마자 대뜸 안철수 띄우기에 나선 것도 상기한 ABM정책의 일환일 터다. 이 ABM은, 사설에서 말한 대로, 안철수와 홍준표 유승민이 단일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 점에서 '문재인만 아니면 다 된다'는 ABM은 조선일보식 반문패권적 발상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일보의 문재인포비아를 이해한다 해서 그 잘못됨마저 눈 감을 수는 없는 노릇. 안철수 띄우기에 급급한 조선일보 사설의 문제점을 한두 가지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안철수·홍준표·유승민 등이 "대북 정체성 차이 등을 극복하고 손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면서도 "이들 간의 중도·보수 단일화가 성사돼 사실상의 1대1 구도를 만들 수 있느냐가 우선적인 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반문 단일화를 부추기는 사설의 행태는 뒷말이 앞말을 잡아먹는 조선일보식 일구이언의 묘기를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이틀 전에 작성한 사설과 비교해 보시라.

"특정인에 대한 거부감만으로 다른 세력이 모두 뭉치자는 것은 원칙과 정도가 아니다. 두 정당 이상의 선거 연대는 유권자들에게 정치·정책의 공통분모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 무조건 표만 합치자는 것은 야합에 가깝다. 유권자들이 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실현되더라도 큰 효과도 없을 것이다..." (사설, <중도·보수 단일화, 국민 감동시킬 수 있는가>. 2017.03.30)

둘째, 안철수 띄우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신문 사설의 영역을 넘어 안철수 캠프의 대선전략기획서 같은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대선 판도를 "'적폐청산 문재인' 대 '온건·협치 안철수'"로 끌고 가면 안철수 부상효과가 더 커질 것이라든지, 안철수·홍준표·유승민 간의 중도보수 단일화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국민의당 대선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9대 대선 후보자 선출 완전국민경선 서울·인천 권역 합동 연설회에서 정견 발표를 시작하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가 이처럼 안철수를 중심으로 하는 반문 단일화에 올인하려면 그 전에 '불편부당'이라는 사시부터 떼어내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공정성이야말로 신문의 신뢰를 결정짓는 바로미터"(사설, <신문보도의 ‘불공정성’ 문제>, 2001.02.06)라거나 "우리가 간단없이 채찍질해야 하는 것은 정확성이며 공정성이고 균형감각이며 정직성이다"(사설, <조선일보의 正道>, 2002.03.05)라고 헛소리를 지껄인 데 대해 조금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글을 맺기 전에 한 마디. 조선일보의 일방적인 희망과 바람을 적은 이런 글은 일기장에 써야 한다. 친박단체가 펴내는 지라시라면 몰라도 명색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메이저신문이라면서 사설과 일기장을 착각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아무리 문재인이 싫고 혐오스럽다 해도 신문의 격조차 깎아먹는 못난 짓은 스스로 삼가는 것이 옳다. 조선일보의 맹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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